돈주고 새치기인가, 시간과 돈의 정당한 거래인가
“아이에게 돈이 많은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상황을 안 보여주고 싶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놀이공원에서 줄을 서지 않고 빠르게 입장할 수 있는 이른바 ‘패스권’이 대표적인 예다. 놀이기구 탑승 대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놀이공원 이용객에게 인기 있던 이 제도는 최근 한 방송을 통해 조명되면서 ‘새치기 구매’ 논란에 휩싸였다. 돈으로 서비스를 사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다는 논리와 돈으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뺏는다는 점에서 도덕성 결여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월드,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 오션월드 등 주요 놀이공원과 워터파크 등에선 추가 요금을 지불하면 어트랙션(놀이기구) 탑승 대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름은 ‘매직패스 프리미엄’ ‘Q패스’ ‘해피패스’ 등으로 다양하지만 방식은 비슷하다. 놀이기구의 일부 좌석을 패스권 소지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개방해 일반 대기 고객보다 빠르게 입장하도록 운영되고 있다. 이에 먼저 줄을 서고 있는 대기 고객보다 먼저 입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5만원에 2시간 대기 면제…김동현 “아이에게 보여주기 싫어”
최근 온라인에서 논란을 촉발시킨 건 지난 2일 방송된 한 지상파의 토크쇼 프로그램이었다. ‘돈과 권력’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놀이공원 ‘매직패스’에 대해 다뤘다. 방송에서 뇌과학자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뇌과학과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들이 정당한가”라며 화두를 던졌다.
이에 아이돌그룹 NCT의 도영은 “일본에 놀러갔을 때 5만~6만원 정도를 내면 패스트 패스를 살 수 있었다. ‘5만원에 2시간을 살 수 있다면 돈을 쓰는 게 맞겠다’고 생각해 패스트 트랙을 샀다”며 경험담을 밝혔고, 격투기 선수 김동현는 “열심히 살게 만드는 시스템”이라며 그의 경험에 공감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아이들이 어릴 때 그걸 보고 어떤 가치를 배우게 되는가. 먼저 선 사람들이 서비스를 받는 건 당연한 건데, 이 경우에는 돈을 더 낸 사람이 새치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라며 “’우리 사회는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구나’를 아이들이 배우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게 정당한지를 한 번 생각해보자”고 했다.
김동현은 “부모로서 아이한테 이런 상황을 보여주기가 싫다. 안 갈 것 같다. 나이가 있으시거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먼저 들어가실 수 있게 양보하는 건 사회를 살면서 가르쳐줄 가치인데, 돈이 많은 사람이 먼저 들어간다는 건 안 보여주고 싶다”고 털어놨다.
◇”자본주의 사회서 당연” vs “아이들 박탈감 느껴” 의견 팽팽
방송 후 온라인에선 커뮤니티마다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패스권’에 찬성하는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서비스를 사는 건 당연하다”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비싼 돈 주고 지정좌석을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돈으로 사는 게 불편하다면 그게 세미-공산주의”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반대하는 쪽에선 “자녀와 2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나중에 온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면 아이들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차라리 놀이기구에 전용석을 만들면 내 자리, 내 순서 뺏겼다는 박탈감은 들지 않을 것” “돈으로 시간은 살 수 있지만 줄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뺏는 게 문제” 등의 의견을 냈다.
전문가들은 놀이공원의 이 같은 제도가 경제학적 관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돈으로 시간을 사는 행위는 일상 생활에서 수시로 발생한다. 근로와 금융 등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돈으로 시간을 사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추가 요금을 내고 먼저 입장할 수 있는 제도는 자본주의 관점에서 문제될 게 없다”면서도 “다만 이 제도로 인해 이용객 다수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패스권 발행량 수를 제한하거나 패스권 전용석을 만드는 등의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월드는 기존 종합이용권을 구매하면 하루 3회까지 제공하던 ‘매직패스’를 지난해 9월 폐지하고 ‘매직패스 프리미엄’ 제도를 새롭게 시행 중이다. ‘매직패스 프리미엄’은 일일 한정수량으로 판매되며 구매수량도 1인 4매로 제한된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매직패스 프리미엄 구매 고객끼리 별도의 줄을 서기 때문에 일반 고객들보다 대기 시간이 짧다”며 “다만 탑승 기구별로 매직패스 프리미엄 탑승 비율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반 고객보다 무조건 우선 탑승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객별 탑승 비율은 기구마다 다르지만 일반 고객의 탑승 비율이 매직패스 프리미엄 고객의 탑승 비율보다 더 많다고 덧붙였다.
http://v.daum.net/v/20230404162303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