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정조의 사후 특정 파당이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 가는 바람에 100년 가까이를 퇴보하였습니다.
19세기초반까지만 해도 중국과도 교류하였고, 그를 통해 서방의 최신 문물이 소개되던 차였죠.
하지만 병자호란 이후 정착한 소중화 사상의 여파로 사상계가 이상론에만 집착하게 되었고, 19세기에는 세도 정치로 학계 차원의 변화를 실사회에 반영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농민까지 들고 이러나 변화를 촉구하게 되었고, 그것이 동학 농민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정계는 개혁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파당을 통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정치욕이 더 컸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등에 업느냐가 그들의 이슈였죠.
미국을 등에 업고 개혁을 실시하여 정권을 잡을 것이냐, 러시아냐, 중국이냐, 일본이냐, 그것이 문제였던 그들이었습니다.
어짜피 누구를 등에 엎으나 그들에겐 마찬가지였으며 정권을 누가 잡느냐가 오직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을 등에 업은 세력에 의해 개화를 실시하였고, 그결과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정권 유지를 전제로 나라를 팔리는 것도 상관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이 시대에 누가 또 그런 사고로 국회에 앉아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