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179495?sid=104
우기가 끝나가던 9월 어느 날, 에티오피아 중부 오로미아주 작은 마을 사데. 아브라함 물리스(30)는 두 살배기 아들 프롬사를 업고 한 시간을 걸어 하카물리스 케벨레(한국의 동·리에 해당)에 있는 젤로 보건소로 갔다. 아이는 한 달 전부터 잘 먹지 못하더니 기침과 설사를 반복했다. 얼굴과 몸은 나날이 부풀어 올랐다. 이대로 뒀다가는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브라함은 최근에 출산한 아내를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프롬사의 상태를 살펴보던 보건소 의사는 급성 영양실조라고 진단했다. 프롬사처럼 영양실조로 보건소를 찾는 아이들은 3년 전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젤로 보건소에서 만난 아비 모하메드 소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3년 전에는 급성 영양실조 진단을 받는 아이들이 한 주에 2명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하루에 2~3명꼴로 늘었다”고 밝혔다. 그는 “가뭄 때문에 먹을 음식이 줄면서 급성 영양실조 아동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는 기후변화로 3년 넘게 가뭄이 계속되면서 주민 약 800만명 이상이 식량위기를 겪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끼니를 거르고 있고, 생계수단인 가축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에티오피아를 비롯해 소말리아, 케냐 등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나라들에서 식량위기는 특히 심각하다. 유엔 집계에 따르면 8월 기준 이 지역 3700만명이 극심한 굶주림에 직면해 있다. 고질적인 분쟁과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까지 더해지면서 주민들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경향신문은 세계 식량의날(16일)을 앞두고 식량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대안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월드비전과 함께 에티오피아와 케냐를 찾았다.
프롬사는 조그마한 플라스틱 대야에 실려 저울에 올려졌다. 눈금은 8㎏을 가리켰다. 24개월 기준 아이의 정상 체중 3분의 2 정도다. 파리가 쉴 새 없이 프롬사에게 달라붙었지만 프롬사는 쫓아낼 기력도 없는지 입을 벌린 채 얕은 숨만 내쉬었다.
보건소에서는 급성 영양실조 진단이 끝나면 아이들에게 플럼피넛(땅콩과 영양분을 섞어 만든 고칼로리 급성 영양실조 치료식)을 처방해주고 집에 보낸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배를 곯고 있는 다른 형제들과 플럼피넛을 나눠 먹는 경우가 많아서 충분한 치료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비 소장은 “이달에만 아동 27명, 지난 3개월간 87명이 급성 영양실조로 보건소를 찾았고 그 숫자는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3년 전부터 에티오피아 중부 저지대와 남부 지역에는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았다. 옥수수와 테프(에티오피아 북동부 지역 주식인 납작빵 인제라의 재료), 수수까지 말라 비틀어졌다. 국민 전체 고용의 80%,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농업에 의존하는 에티오피아에 오랜 가뭄은 치명적이다.
오로미아주 멜카벨로 와레다(한국의 읍·면에 해당)의 저지대 지역인 비프투 네가야 카벨레에서 만난 무함마드 아리프는 “3년 전에는 우기(6월 중순부터 9월까지)에 2~3일 간격으로 비가 왔는데 이번에는 2~3개월 내내 비가 안 왔다”면서 “칠십 평생에 처음 겪는 가뭄”이라고 말했다. 좀처럼 마르지 않던 마을 우물까지 바닥을 보였다. 보통 5~6월에 옥수수·수수 씨앗을 뿌려 9~11월에 추수하는데 지난 3년간 아무것도 수확하지 못했다.
비가 적당히 내려 농사가 잘될 때는 0.5㏊ 남짓한 땅에서 1년에 500~700㎏을 거둬들였고 아들, 며느리, 손자 6명을 포함해 12명 식구를 먹여 살리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소까지 팔아 먹을 것을 사야만 했고, 아이들은 더 이상 우유를 먹지 못하게 됐다. 정부에서 가구당 최대 45㎏까지 밀가루를 지원하지만 6개월치에 불과해 늘 양이 모자란다. 아이들은 보통 하루 한 끼, 많으면 두 끼를 먹는다. 무함마드의 아들은 식량 살 돈을 벌기 위해 일용직에 뛰어들었다.
무하마드 알리(67) 가족의 형편도 비슷했다. 3년 전에는 0.375㏊ 면적의 밭에서 옥수수와 수수를 400㎏ 수확했는데 올해는 아무것도 거둬들이지 못했다. 하루 한 끼 식사도 어려워졌고 그전에는 손대지 않았던 잡초 사라투까지 소금물에 끓여 먹고 있다. 결국 아이 둘이 영양실조에 걸렸다. 셋째인 두 살배기 아들 이마무딘은 작년에 영양실조 판정을 받고 보건소에서 플럼피넛을 처방받았다. 둘째인 딸 나자테는 치료를 마쳤다고 했지만 영양실조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이마와 발등을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정상 체중 아이들과 달리 살이 올라오는 데 한참 걸렸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고도 1300m로 비프투 네가야 카벨레보다 100m 낮은 하카물리스에서는 물이 부족해지면서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곳에서 평생 농사를 짓고 있다는 타지르 아브라함(40)은 모래바람을 뚫고 소 한 마리를 끌고 왔다. 올해만 소 15마리가 죽고 한 마리만 남았다. 타지르는 “걸어서 3시간 걸리는 강까지 소를 끌고 가 물을 먹여야 하는데 소들이 힘이 없어 물을 마시다 빠져 죽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죽기도 한다”고 말했다. 소는 밭을 가는 데 쓰이고 가족들이 먹을 우유를 제공하며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는 주요 자산이다. 타지르는 다섯 살, 세 살, 두 살 아이 모두 영양실조에 걸렸고 학교에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