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은 규모 7.6 강진으로 1만 7000여명이 사망한 1999년 당시 정부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정치인으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경제 위기 속에서 2002년 조기 총선이 치러지자 직접 창당한 정의개발당(AKP)을 승리로 이끌며 주목받았다. 이후 2003년 총리직에 올랐고, 2014년부턴 대통령으로 집권 중이다.

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에르도안 자신이 24년 전과 같은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재난까지 덮친 가운데 에르도안은 오는 5월 14일 치러질 대선에서 연임에 도전한다"며 "아마도 가장 어려운 선거일 것"이라고 전했다. '지진'으로 집권한 지도자가 '지진'으로 정치인생의 도전을 맞았단 의미다.

당장 지진 피해 지역에선 정부의 대처가 너무 느리다는 아우성이 나온다. 구조 작업 속도가 더딘 데다 장비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토로다. 야권에선 이번 위기가 자연재해에 더해진 인재(人災)라며 비판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튀르키예는 세계에서 지진에 가장 취약한 곳으로 손꼽힘에도, 이런 재난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고 안전한 주택·인프라 구축도 되어있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1999년과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통상 자연재해 현장에서는 비정부기구(NGO)와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큰 도움이 되지만, 현재는 이를 기대할 수 없단 비판마저 나온다. 권위주의적인 에르도안 정부가 이들의 활동을 그간 옥죈 탓이다.

이런 가운데 에르도안 대통령이 7일 지진 피해를 본 10개 주(州)에 3개월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이 지역에서 인권 침해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단 우려가 속속 나오고 있다. 쿠데타 시도가 있던 2016년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이 '3개월 비상사태'를 선포해놓고 2년 동안 이를 유지한 전력이 있어서다. 당시 잡혀들어간 반정부 인사만 10만 명에 달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진 피해 지역(남동부)은 쿠르드 분리주의 단체와 갈등이 있는 곳이라 지진 대응을 핑계로 시민들의 기본권을 축소할 것이란 걱정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에르도안이 재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트롱맨'으로 불릴 만큼 '강한 지도자' 이미지로 승부수를 걸어왔던 그가 이번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단 전망이다. 특히 지진 대응 관련 규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비판론이 나오면 정치적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