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차등의결권 도입’ 불 붙인 민주당…‘혁신성장’ 앞세워 ‘공정경제’ 뒷전으로?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혁신성장을 촉진하겠다며 4월 총선 공약으로 내건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도입’을 두고 시민사회와 학계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에게 1주당 의결권 10개 한도의 주식 발행을 허용해 경영권 우려 없이 투자를 유치하도록 한다는 취지인데, 대주주로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한다는 ‘공정경제’ 기조와 어긋난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민주당은 4월 총선의 2호 공약으로 ‘벤처 4대강국 실현’을 제시하며 차등의결권 도입 방침을 밝혔다. 주주 동의를 받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가 대규모 투자유치 목적으로 유효기간 최대 10년의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해찬 대표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의 엔젤(천사)이 되겠다는 다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지난해 경기 활성화를 위한 ‘벤처투자 확대’ 명목으로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해왔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금도 과도한 수준인 경영진으로의 권한 집중과 경영진의 사익추구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벤처기업 활성화를 명목으로 규제의 무분별한 완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차등의결권 도입이 소수주주 권한 강화 등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뼈대로 하는 공정경제 기조를 약화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재벌 총수일가가 벤처기업을 설립해 기업가치를 키우고, 이를 발판으로 그룹 모회사까지 지배하는 수순을 밟을 수 있다”며 차등의결권이 재벌의 우회적인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차등의결권 도입은 기업지배구조 정책 기조와 반대 방향”이라며 “어느 순간 경제민주화는 사라지고 혁신성장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비판했다.
재계 등에서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도 차등의결권 제도가 존재한다며 도입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한상 고려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과는 다른) 해당 국가들의 투자자 보호 제도와 기업지배구조를 생각해보라”며 “(민주당은) 경제민주화 공약 중 무엇이 시행됐는지 자문자답해보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차등의결권 도입을 통해 달성하려는 벤처기업의 ‘경영권 방어’ 목표는 현행 제도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경실련은 “비상장 벤처기업은 주주간 계약·초다수의결제·자사주제도·기업경영권 우호세력 등 다양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는 것처럼 포장해 차등의결권 도입을 밀어붙이는 것은 재벌의 숙원사업을 해결해주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매우 높다”고 비판했다.
국회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전문위원은 민주당 최운열 의원이 2018년 발의한 차등의결권 도입 법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무능한 경영진까지 과도하게 보호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차등의결권 제도가 벤처기업의 기업공개(IPO)를 촉진해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며 제도의 영향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