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유 쟁점을 국회가 제출한 9개에서 5개로 재정리한 것은 신속하게 심리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박 대통령 탄핵사유를 헌법 위반과 법률 위반으로 구분한 뒤 헌법 위반 부분을 핵심적으로 심리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탄핵심판에선 형사재판처럼 꼬치꼬치 증거·증인 등을 검증해야 하는 법률 위반 사안 판단까지 가지 않고 헌법 위반 사항만 확정해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헌재는 이날 국회가 제시한 탄핵사유 9개를 국회·대통령 측의 동의를 받아 비선조직에 따른 국민 주권 위배, 대통령의 권한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뇌물수수 등 형사범죄 5개로 재정리했다. ‘비선 조직에 따른 국민 주권 위배’ 부분에는 최순실씨의 국가 정책 개입과 대기업 강제모금, 연설문·공문서 유출 혐의가 포함된다. ‘대통령의 권한 남용’ 항목에는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경질, 세계일보 사장 해임, 최순실씨에 대한 각종 특혜 제공 등의 탄핵 사유가 들어가 있다.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에서는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 의혹이 다뤄진다.
법조계는 헌재의 이 같은 탄핵사유 단순화를 “헌법 위반 사항을 주요하게 판단하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5개 쟁점 중 ‘뇌물수수 등 형사범죄’ 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헌법 위반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헌법 위반 사항 중에도 법률 위반 사항과 연동되는 것이 있지만 탄핵심판에서 굳이 법률 위반 사항까지 입증할 필요는 없다. 헌법을 위반한 것만 확인해도 ‘인용(파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헌재가 헌법 위반 4가지 사항에서 ‘중대한 위반’ 여부를 확인하게 되면, ‘뇌물수수 등 형사범죄’라는 법률 위반 사항을 일일이 살펴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헌재는 모든 소추 사유를 심리해야 하지만, 모든 사유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향후 탄핵심판 본재판(변론기일)에서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기로 확정했다. 당초 국회 소추위원이 증인으로 신청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25명은 박 대통령 측이 동의하지 않아 일단 채택이 무산됐다. 나머지 증인에 대해서는 27일 열리는 2차 준비절차기일에서 논의하게 된다.
재판부는 박 대통령과 공범으로 지목된 최씨와 안 전 수석, 정 전 비서관 등의 수사기록 확보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법에 이들에 대한 수사기록을 요청하기로 했고, 법원이 이를 거부하면 소추위원단이 법원, 검찰, 특별검사 측을 직접 찾아가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소추위원이 현재 제시한 증거는 검찰 공소장, 국회 회의록, 언론보도 등에 불과하다. 그러나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이나 정 전 비서관의 휴대폰 녹음파일 등 수사기록을 넘겨받으면 박 대통령이 헌법에 반하는 행위를 했는지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특히 박 대통령이 연설문 수정에서 최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언제까지, 어떤 식으로 도움을 받았는지에 대한 자료를 내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