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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문용옹주'를 아십니까? 그 [가짜옹주]의 불편한 진실은 무엇일까요?

  • 작성자: 김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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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2440
  • 2016.09.06

[늘어나는 검색어 '문용옹주']

요즘 가만히 우리황실사랑회(http://sihk.org)의 검색유입어를 살펴보니, 변화가 있는 것이 '문용옹주'라는 검색어가 상당히 늘어났다는 겁니다. 즉, 문용옹주라는 검색으로 황사회에 들어오시는 분이 많아졌다는 얘긴데, 이 즈음에서 이 소위 '문용옹주'라는 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흔히 고종황제의 숨겨진 딸로서, 현대에 와서 그 존재가 밝혀졌다며 무슨 비운의 옹주니 뭐니 하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용옹주라는 분이 실제적인 인물일까요? 물론 실제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황녀도 옹주도 아닌 평범한 노파에 불과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왜, 평범한 할머니가 갑자기 황제의 딸 '옹주'로 둔갑을 했을까요? 실제 옹주인 덕혜옹주와 같은 반열에 올라선 이유는? 바로 일부 출판사와 미디어의 얄팍한 상술과 말초적인 자극, 무식한 공권력의 역사지식, 본인 스스로의 정신병적인 행동 등등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거짓의 형상에 불과합니다.

 

위키백과에 '문용옹주'라고 쳐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뜹니다.

 

 이문용(李文鎔, 1900년~1987년 3월 28일[1])은 대한제국 고종의 딸로 어머니는 상궁 염씨이다. 본관은 전주.

서울 계동에 있는 민가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그녀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뜬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 임상궁과 같이 살았으며, 1916년 독립 운동가 김희진과 혼인한다. 그러나 남편은 1919년 익사를 했으며, 그의 아들도 이듬 해 뒤를 이어 폐렴으로 죽는다.

간첩혐의로 감옥에서 12년간 있었으며, 이 때 그녀가 황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대통령 박정희의 지시로 호적이 만들어져 법률적 복권은 이루어졌으나, 정식으로 옹주 칭호를 받은 적은 없다.

 

이 백과사전은 아예, 이문용이라는 인물을 고종황제의 딸로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상궁염씨라는 둥, 계동궁에서 살았고, 정식으로 옹주 칭호를 받은 적이 없다는 둥 하면서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위키백과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가 불특정다수라는 특징이 있어, 100% 진실로 믿기는 여러모로 어려운 사전입니다.

 

[왜, 갑자기 '문용옹주'일까? 신간서적 '황녀'는 또 무엇인가?]

요즘, 우리황실사랑회 회원이신 무향(권비영)님의 소설 '덕혜옹주'가 히트를 치면서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옹주니, 황제니, 황녀니 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어떤 출판사에서 이미 40여년 전에 발간되었던 '고서적(?)'하나를 '발굴(?)'해서 다시 책을 발간하니, 높아진 황실의 관심에 무임승차하여 돈 좀 벌어보자는 얄팍한 속셈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72년도에 신문에 연재되었다가 74년도 단편으로 발간된 적이 있었던 유주현이라는 작가가 쓴 '황녀'라는 책이 바로 그 책입니다. 요즘 신문에 광고를 하는 내용을 보니, "고종황제의 또다른 옹주 문용옹주...", "황실의 또다른 비극 문용옹주.." 어쩌구 저쩌구 하던데, 그 책 광고 밑에 써진 꼬리말은 더 가관입니다. "아..문용옹주님의 삶이 어쩌면 꼭 덕혜옹주님과 닮았을까요.." 하던데...드라마틱하게 묘사된 허구의 삶에 독자들이 우롱당하고 있는 겁니다.

 

『황녀』 제 1권. 고종황제가 환갑이 되던 해 태어나 더할 수 없이 귀하게 자란 덕혜 옹주.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던 또 한분의 옹주가 계셨다. 그녀의 이름은 이문용이다. 한국 역사소설계의 거두인 저자 유주현은 이문용 옹주의 삶을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밀도 있게 그려낸다. 이 책은 왕의 여자들이 벌이는 암투극의 희생양이 되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던 조선 황녀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해당출판사 도서광고 카피)

 

웃기지 않습니까? 왕의 여자들이 벌이는 암투극의 희생양이 된 사람이 바로 이문용 할머니랍니다. 유주현이란 작가의 '통찰력'이 도대체 얼마나 컸길래 100% 허구의 사실을 역사적인 사실인양 날조하고, 수십년 후에 돈에 눈이 먼 출판사가 책 광고에 혈안이 되어 광고카피 문구를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정보를 떠들어 대는 것을 보니. 지식을 다루는 업체로서의 양심이 한톨 만큼도 보이지 않습니다. 자! 이문용이 가짜인 이유를 본격적으로 밝혀 봅시다.

 

[이문용, 그녀는 정말 '옹주'인가?]

자..우리황실사랑회에서 소위 '문용옹주'라는 분에 대해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분이 혹자들이 고종황제의 숨겨진 옹주라 이야기하는 이문용할머니의 생전모습입니다. 위키백과에 나왔다시피, 아주 고단하고 어려운 삶을 사셨고, 빨치산으로 몰려 생명의 위협도 받으셨답니다(대다수의 증인들은 저 할머니가 진짜 빨치산의 일원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이 분이 고종황제와 상궁염씨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물증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니, 상궁염씨가 고종황제의 승은(承恩)을 입었다는 기록 조차 없습니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고종황제의 가계도는 정확하지도 않은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컨덴츠에서 그 자료를 그대로 베낌으로 거짓의 확대재생산이 이루어 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문용이 숨겨진 옹주일 수 없는 이유]

이문용이 태어났다는 해가 1900년입니다. 당시 어렵기는 했어도, 그렇다고 대한제국이 나라 구실을 못할 지경인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고종황제의 친정시대였고, 황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태어난 황제의 핏줄을 당시의 정사(正史)는 물론이고, 하물며 민간의 야사(野史)까지도 한 줄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소설'황녀'에서나 '문용옹주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시 영친왕(후일에 의민황태자)의 생모였던 귀비 엄씨의 질투로 민가에서 태어난 이문용아기가 궐에 들어올 수 없었고, 생모 염상궁은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아무리 귀비 엄씨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한들, 황제의 혈육을 어떻게 역사에서 말살해버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의친왕도  서슬퍼런 명성황후 시절에 상궁에게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황제의 혈육이므로 감히 황후 민씨도 그 목숨에 손을 대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친왕의 생모라해도 공식적으로는 정궁(正宮)이 아닌 후궁(後宮)이었던 황귀비 엄씨 때문에 황제의 딸이 핍박받고 여염집을 전전한다구요? 그리고 황제의 혈육을 낳은  상궁이 궐에서 보낸 사약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공식적이던 비공식적이던 역사기록이 한 줄도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정궁,후궁 등 많은  부인에게서 낳은 13명의 고종황제 혈육이 모두 알려져있고 공식기록이 있는데 왜 이문용만 빠졌다는 얘기입니까?

 

대한제국황실의 여인들은 현대까지 살아계셨던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방자여사라 부르는 '의민황태자비'는  1989년까지 생존해계셨고, 운현궁의 안주인이자, 얼짱왕자 이우황손의 부인인 박찬주여사(일본식작위'公妃')는 무려 1995년까지 생존해계셨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순종황제의 제2계비셨던 순정효황후 윤씨(속칭'윤대비')께서는 1966년까지 살아계셨고, 정말 고종황제의 후궁이셨던 귀인 이씨(광화당)는 1970년까지, 삼축당 김씨는 1972년까지 생존해 계셨습니다. 이 두 할머니 후궁들은 의친왕의 자녀분들이 광화당 할머니, 삼축당 할머니라 부르면서 따랐던 분들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정말 이문용 할머니가 고종황제의 숨겨진 딸이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면 어찌 찾아내서 그 핏줄을 확인하지 않았겠습니까?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황실을 핍박하던 이승만 정권이 지나고, 황실에 대해 예우를 갖추었던 박정희 정권 하에서 뭐가 무서워서 시아버지의 잃어버린 딸을, 지아비의 잃어버린 딸을 찾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이유야 여하튼 간에 의친왕의 수많은 자녀들에게도 혈육의 정을 보여주셨던 황실의 여인어른들께서, 고종황제의 혈육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이겠습니까? 

 

만에 하나 궁중 여인들의 암투에 의해 황제의 옹주가 버려졌다는 말이 사실이더라도, 순헌황귀비 엄씨가 세상을 떠난 것이 1911년이고, 고종황제께서 붕어하신 것이 1919년인데, 황제께서 '자유롭던(?)' 8년 동안, 자기 따님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뭐라 변명하겠습니까? 설마 고종황제께서 옹주의 존재를 몰랐다던가, 일제가 옹주를 못데려오게 막았다던가 하는 궤변 따위는 하지 않으시겠지요?

 

역사와 대한 황실에 대한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이런 어이없는 허구와 거짓말에 혀만 찰 것입니다.

 

[옹주로 둔갑한 이문용]

그렇다면 왜 이문용 할머니가 문용옹주로 둔갑한 것일까요?

일단 이문용씨 본인이 자기가 고종황제의 숨겨진 딸이라고 주장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해방후, 빨치산 활동을 비롯한 6.25전쟁 당시 철원지역의 여성동맹위원장 등 좌익활동을 해서 번번히 붙잡혀 들어갔던 이문용 할머니는 '고문'으로 인한 괴로움 등으로 인해서인지, 갑자기 본인이 고종황제의 사생아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형량을 다 마치고 출소한 이후에도 주변에다가 본인이 옹주라는 둥, 우리아버지가 고종이라는둥 하면서 살게 되는데,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정신이 돌은 할망구 취급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소설가 유주현이라는 사람에게 띄어 자신의 주장을 소설로 만들어 어떤 잡지에 연재하게 되었는데, 이때가 1972년이었습니다. 원래 만들어진 이야기는 엄청나게 드라마틱하기 마련입니다. 이 연재소설은 대대적으로 히트하게 되었고, 단행본 출간은 물론, 1974년에 이르러서는 MBC에서 드라마로 제작 방영하기에 이르릅니다. 소설과 드라마의 제목인 '황녀(皇女)'는 이문용할머니의 고유명사가 되어 버렸고, 당시 역사상식의 부재와 황실 정보에 대한 미흡 등의 이유로 인하여, 확실한 사실의 검증없이 언론은 이문용할머니를 고종황제의 숨겨진 큰따님으로 규정해버리고 보도를 합니다.  드라마 '황녀'도 히트해버리니,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할머니를 전주시에서 '초빙(?)'하여 경기전에 방 한칸을 내주어 살게 하고, 보조금도 지급하고, 없던 주민등록증도 발급해면서 황녀 대우를 했더랍니다. 수십년에 걸친 본인의 거짓말이 무식한 주변 사람들에 의해 인정받게 되니, 이 할머니께서 하시는 거짓말은 더더욱 거침없어지고, 무서운 것이 없이 내뱉어집니다.

 

[이문용 옹주설에 대한 황족들의 반응]

문제는 당시에 엄연히 생존해계셨던 의민황태자(영친왕)비 이씨(소위 '이방자 여사'이하 '방자비')와 운현궁의 박찬주 여사(이우황손의 부인)의 반응이었습니다. 당시 방자비는 낙선재에 거주하면서 대한황실의 공식입장을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문용할머니의 황녀 여부에 대해 세간의 논란이 일자, 방자비는 낙선재 대변인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李)할머니가 황녀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고 부인하고, "황실의 족보에도 기록되지 않은 황제의 딸이 어디있겠느냐" 며 터무니 없다는 반응을 보였을뿐만 아니라, 드라마 황녀가 방영되자, "고종황제에게는 그런 딸이 없었다. 황실에 누가 되지 않게 해달라"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MBC측에 두 차례나 전달한 바 있습니다. 또한 특종감으로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이문용할머니와 방자비와의 단독면담을  방자비는 계속 거절하였고,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낙선재의 관람객 자격으로 내방한 문용 할머니와 목례 정도의 인사만 나누었습니다. 아울러 운현궁의 박찬주 여사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식적으로 문용할머니의 존재를 부인한 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멀쩡히 생존해 있었던  순정효황후 윤씨(윤대비)를 마지막까지 모셨던 '마지막 상궁' 성옥염씨도 '헛소문'이라고 일축하며 '당시 임금님과 하룻밤만 자도 당호(堂號)가 붙는 세상인데, 임신까지 했었다면 같은 상궁끼리 모를 일이 없고, 대비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며 펄쩍 뛰기까지 했습니다. 아울러 방자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던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측의 공식입장도 "고종황제의 친딸도 황녀도 아니다"라고 밝혀 황녀 주장이 진실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모든 생존 황족도, 황실에서 일하던 상궁들도, 관련단체도 모두 부인하는데, 고종황제의  조카라는 이면용이라는 인물이 '고종황제의 용안과 너무 닮았다'라는 이유로 이문용을 고종황제의 딸이라고 인정해서, 그 증언만을 들은 언론들이 사실인양 몰고 나가 말초적으로 기사를 작성하여 황녀 주장이 오늘에 이르른 것입니다.

 

[가짜는 가짜를 알아본다던가!]

얼마전까지 의친왕의 2남 이우황손의 숨겨진 아들행세를 행세를 하면서 여황제를 옹립한 '대한제국황족회'의 사무총장인가를 하던 이초남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문용할머니 생존시절에 전주까지 다니면서 이문용할머니를 만나곤 했다는데, 공상역사소설 "일월XX도"라는 허접한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초남증언] 제가 38세 무렵일 것입니다. 종약원에 갔더니 전주의 경기전을 찾아가 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거기에 이문용 옹주가 계시는데, 할머님이 되시는 분이시니 찾아가 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경기전을 찾아가 인사를 올리고 제 사연을 말씀드리니까, 네 아버지(이우 황손)가 일본으로 가기 전에 약혼을 했지, 그 여자가 문화유씨였지라고 얘기하시면서, 나도 많은 고생을 했는데, 네가 큰 고생을 했구나 하며 여러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면용(광무제 6촌)할아버지를 찾아가라고 했습니다...(중략)..광무황제의 생신을 제대로 정확히 아는 유일한 사람이 이문용 옹주입니다. 그것은 이문용 옹주가 임상궁에게서 들어 똑바로 아는 것입니다. 임상궁은 아관파천때에 엄귀비와 함께 광무황제를 모신 측근상궁입니다. 광무황제는 엄귀비에게서 영왕을 낳고서, 몇 년간 시간이 흘러 임상궁에게서 이문용 옹주를 낳았기에 임상궁은 황실의 핵심비밀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무황제의 수결(手決)의 의미도 이문용 옹주가 정확하게 알고 계셔서 저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의미는 일단은 비밀로 해 주십시오. 안교수만 알고 계시고 공표는 맑아주십시오. 그 까닭은 일본인들이 우리의 나라를 침략하면서 우리 황제 폐하의 수결을 위조하여 문서를 만들었다는데, 아무리 비슷하게 위조를 해도 그 수결의 숨겨진 뜻은 일본인들이 모를 것입니다. 훗날 역사적 쟁점으로 수결문제가 떠오를 때에 일본인들이 그 뜻은 결코 모를 것입니다. 그러니까 꼭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이문용옹주는 지금까지 살아계시다면 궁중수예의 인간문화재가 확실합니다. 제가 황실의 근친인 이현향 여사께서 궁중수예에 조예가 깊어 인간문화재를 만들어 드렸는데. 이문용 옹주는 이현향 여사가 감시 쫓아갈 수 없을 정도의 수준입니다...(중략)..아마도 임상궁이 바로 궁중에서 궁중수예를 다룬 분이었고, 임상궁에게서 배운 것이니까 우리나라 최고의 정통 황실 수예일 것입니다.

 

 이문용 옹주는 궁중에서만 먹는 최고의 술을 만드는 비법도 알고 계셨습니다...(후략)..[안천:일월XX도 5권]

 

이쯤되면 이거는 증언이 아니라, '개그'가 됩니다. 어렸을 적 궁에서 쫓겨 나와 단 한번도 궁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문용할머니가 무슨 수로 황실의 수예를 배웠으며, 술담그는 법을 익혔다는 겁니까? 그리고 고종황제께서 붕어하시고 난 다음, 이리 저리 거지처럼 살았다더니, 다른 황족들은 아무도 몰랐던 '이우 황손의 약혼자가 문화유씨(이초남씨의 생모, 이초남씨와 안천씨는 이 문화유씨라는 인물이 이우 황손의 정식약혼자이며, 박찬주여사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결혼한 상대라고 주장. 더욱이 문화유씨, 즉 유정순이라는 이 분이 말떼를 몰고 만주벌판의 독립군을 찾아가 독립자금을 전달하는 등 유관순 열사에 비해 전혀 뒤쳐지지 않는 독립운동가라고 주장. 그러나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진실이라고 주장)'라고 얘기하였다네요. 어이가 없습니다. 뿐이겠습니까? 고종황제 사인의 의미를 이문용 옹주만이 알고 있다고 하고, 이문용의 생모가 염상궁으로서 옹주를 낳자마자 죽었다더니, 뜬금없이 이초남씨는 옹주의 생모가 임상궁이라면서 죽지않고 문용옹주에게 궁중자수와 최고의 술담그는 비법을 전수했다고 횡설수설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짜옹주였던 이문용씨를 역시 같은 가짜인 자신의 출생비밀에 엮어 맞추려니까 이렇게 횡설수설하면서 앞 뒤 안맞는 헛소리를 하는 겁니다.

 

[이문용이 옹주라면 박쥐도 새다!]

자! 결론 냅시다.

성인이 될때까지 자라신 고종황제의 따님은 바로 덕혜옹주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가 흔히 헷갈려 하는 소위 '문용옹주'의 이문용 할머니는 본인 스스로가 황녀라고 했고, 어떤 소설가가 그걸 소설로 근사하게 썼고, 방송국에서 드라마로 방영하여, 밑도 끝도 없이 현대에 와서 '황녀'가 되었을 뿐,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고종황제의 따님이 아닙니다. 어떤 역사기록도 없고, 최근까지 생존해있던 황족들 역시, 철저하게 부인하여 왔습니다. 이문용 할머니가 황녀가 된다면, 이초남씨든 전혜원씨든 스스로 황족이라고 우기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황족'이 될 수 있습니다. 이유도 필요없습니다. 역사적인 기록증명도 필요없습니다. DNA검사? 그런거 필요없습니다. 그냥 본인들이 황족이라고 우기면 되기 때문입니다.

 

문용옹주라는 말은 이세상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아무리 몰락한 황실이라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다 옹주가 되고, 황녀로 대접받아서야 쓰겠습니까? 문용옹주는 문용옹주도 아니요, 그냥 이문용 할머니에 불과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성씨가 이씨(李氏)인지 조차도 불분명합니다. 주민등록증도 없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냥 본인이 이씨라니까 이씨인겁니다. 적어도 우리황실사랑회(http://sihk.org) 동지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헷갈리기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역사적 몰상식으로 헛소리를 하면 그 진실을 꼭 바로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문용 할머니가 옹주라면 "박쥐가 새입니다."

소설 '덕혜옹주'의 인기에 빌붙어서 한몫 챙겨보자는 심산의 소설'황녀'... 하루빨리 그런 책이 안 보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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