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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2개월 강아지의 ‘경매장 가는 길’

  • 작성자: 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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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4287
  • 2016.09.02


출입구를 지키고 있던 남자가 물었다. “개 사러 왔어요?” 애견숍 이름을 대고 계단을 올라갔다.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다.



8월1일 오후 2시,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애견경매장. 허름한 3층 건물의 모든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 2층 실내의 문을 여니, 이어진 중앙통로 끝에 경매업자가 올라가는 단상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는 강아지 4~5마리가 한데 들어 있는 노란색 바구니가 천장까지 높이 쌓였다.

가로 6m, 세로 12m 정도 되는 홀에는 의자 70여 개가 중앙통로 양쪽으로 놓여 있었다.

자리가 나눠졌다. 앞자리에는 애견숍 사장ㆍ동물병원 수의사 등 강아지를 살 사람들이, 뒷자리에는 번식장에서 강아지를 데려와 ‘매물’로 올린 사람들이 앉는다.

옆 사람이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날 거래 목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판매자 이름과 강아지 품종이 한눈에 읽혔다.

‘1번 △△△:푸들, 말티(몰티즈)/ 2번 :시추, 말티, 핀(미니핀), 닥스(닥스훈트), 푸들/ 3번….’ 목록은 31번까지 이어졌다.

‘부산’ ‘오산’ ‘안산’ ‘초당’ ‘충남’ 등의 지역명이 들어간 번식장이 여럿 이름을 올렸다.

가격을 잘 쳐준다는 소문이 돌면 전국에서 강아지를 팔려는 사람이 한 경매장에 모여든다.



ⓒ시사IN 이명익 경기도에 위치한 한 애견 경매장에서 강아지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경매장은 판매가의 5% 정도를 수수료로 받고 번식업자와 소매상을 연결해준다.


경매가 시작되자 모두 경매대 위에 놓인 투명한 유리 상자를 주시했다.

강한 백열전구 조명이 그 안을 비추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흰색 몰티즈 강아지가 그곳으로 옮겨졌다.

이곳에 온 강아지들의 사연은 비슷했다. 새끼 강아지들은 번식장, 이른바 ‘강아지 공장’에서 왔다.

당일 아침 새끼는 어미와 떨어져 라면 박스에 담긴 채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이곳까지 온다.



강아지는 경매장에 도착하자마자 ‘이름’이 생긴다.

경매장에서는 강아지를 구분하기 위해 배에 검은 매직으로 번호를 쓴다.

경매장 직원이 접수가 끝난 강아지를 노란색 플라스틱 바구니로 옮긴다.

한 바구니에는 같은 번식장에서 온 강아지끼리 담긴다.

바구니는 판매 목록에 적힌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졌다.

층층이 쌓아 상하좌우가 다 막힌 바구니 속에는 변이 밑으로 흘러내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잘게 찢어 넣어준 신문지뿐이다.

경매가 끝날 때까지 강아지들에게 물이나 사료를 주지 않았다.



차례가 되면, 강아지는 노란 바구니에서 유리상자로 넘겨진다.

업자가 강아지를 들어 올려 생김새나 건강 상태를 확인하며 경매를 시작했다.

그는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모든 강아지를 만졌다.

“요크셔테리어 수컷입니다. 10만원 갑니다.” 입찰하는 사람이 없자 그는 다른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를 집어 들었다.

같은 날 한배에서 태어났는지 한 손에 잡히는 크기나 검은 바탕의 금색 털무늬가 같았다.

목덜미를 잡힌 강아지가 보채며 짖는 소리와 사람들이 낮게 웅성이는 소리가 서로 섞여 시끄러웠다.

헤드 마이크를 낀 업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SBS 화면 갈무리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애견 번식장은 대부분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것도 10만원부터 가봅니다. 수컷입니다. 10만, 12만, 13만, 14만… 왜 예쁜 애가 또 안 나가지? 14만 한 번 더 불러봅니다, 14만. 눈 아주 예쁘고요, 얼굴 괜찮아요.” 응하는 사람이 없자 업자는 양손으로 두 마리를 모아 쥐고 입을 다셨다. “두 마리에 15만(원) 드릴게요.”



망설이는 누군가의 표정을 읽은 그는 재빨리 그 사람의 머리맡 천장에 표시된 번호를 부르며 흥정에 나섰다. “49번 사모님, 이거 괜찮아요. 그럼 15만(원)이면 가져가실래요? 이거 한 마리에 15만원 넘어요. 아까운 찬스야. 평생 안 올 수도 있어 이런 기회가.”


결국 ‘49번 사모님’은 버튼을 눌렀다. 15만원에 낙찰된 검은 요크셔테리어 두 마리는 옆으로 넘겨졌다.

직원은 강아지를 흰색 일회용 종이상자에 담아 49번 자리로 가져다주었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 유찰되면 강아지는 번식장으로 되돌아간다.

팔리지 않으면 다시 노란 바구니에, 팔리면 흰 상자에 담긴다.

낙찰받은 사람은 직원이 가져다준 강아지를 상자에서 꺼내 꼼꼼히 검사한다.

귓속 냄새를 맡아보고, 눈곱이 껴 있지 않은지 확인하며, 입을 열어 교합 상태를 본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가며 모질과 발색을 살피고, 항문이 깨끗한지 살핀 뒤 다리를 잡아당겨 관절에 이상이 없는지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배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다. 기계적으로 익숙한 움직임이다.

이 중 하나라도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도로 종이상자에 강아지를 담아 ‘반품’ 처리를 한다.

반품된 강아지는 유찰된 강아지와 마찬가지로 다시 번식장으로 돌아간다.

ⓒ연합뉴스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 회원들이 대전의 한 애견 경매장 앞에서 ‘애견 경매장 폐쇄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최대한 빨리 강아지를 ‘밀어내야’ 이득



강아지들은 보통 번식-경매-판매 과정을 거친다.

수많은 번식장에서 나온 강아지들이 전국 16~20곳 경매장을 거쳐 애견숍으로 팔려나간다.

경매장은 반려동물 유통과정의 핵심 고리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수요가 늘자, 판로를 확보해야 하는 번식업자와 번식장을 돌며 ‘물량’을 조달해야 하는 애견숍 운영자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형성됐다.

경매장을 거치는 강아지는 한 해 25만~30만 마리에 이른다.



그런데 경매장을 거치는 강아지 대부분은 미신고된 번식장에서 온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5년 말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번식장 1000여 군데 중 신고된 곳은 187군데에 불과하다.

신고를 하지 않고 번식장을 운영할 경우 부과되는 벌금은 100만원 이하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에 법률조언을 했던 배의철 변호사는 “불법으로 인한 프리미엄이 불법으로 인한 페널티보다 큰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수익에 비해 부과되는 벌금이 적은데 생산업자가 법을 준수하려 하나. 오히려 이러한 법 규정이 불법의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현행법상 경매장은 동물 판매업으로 등록되어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경매장이 불법 번식장의 강아지를 팔아주는 유통경로라는 점이다.

경매장이라는 유통망이 확보된 불법 번식장은 굳이 시설 개선에 힘쓸 필요가 없다.

최소의 비용으로 번식장을 운영하고, 최대한 빨리 강아지를 ‘밀어내기’ 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매장은 생후 2개월 미만의 강아지를 유통시킨다.

현행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43조에 따르면 거래할 수 있는 개와 고양이의 월령은 2개월 이상이다.

2개월을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동물의 면역력 때문이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 소속 장승준 수의사는 “어미와 떨어진 2개월 미만의 강아지는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쉽게 질병에 노출된다.

 파보, 코로나 장염, 홍역 같은 치사율이 높은 질병에 걸리기 쉽고, 걸리지 않더라도 평생 잔병치레를 할 수도 있다.

 특히 좁은 공간(경매장)에 여러 마리가 모이면, 서로의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라고 말한다.

2개월 미만 거래금지 규정을 어기더라도 제재는 약하다. 1차 위반 시 경고, 2차 위반 시 영업정지 7일, 3차 위반 시 영업정지 15일이다.



동물자유연대 김영환 선임간사는 “궁극적으로는 분양받으려는 사람이 직접 번식장에 가서 강아지를 데려오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분양자는 번식업자가 어떤 환경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지를, 반대로 번식업자는 분양자가 강아지를 끝까지 책임지고 키울 만한 사람인지를 서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불법 번식장에서 일어나는 동물 학대와 분양 후에 일어나는 무책임한 유기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동물보호단체의 바람과 달리 ‘반려동물 경매업’을 더 키울 방침이다.

지난해 말 정부는 ‘2016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반려동물 산업의 발전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월부터 기획재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반려동물 관련 산업 육성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동물보호법은 반려동물 관련 산업을 동물 장묘업ㆍ판매업ㆍ수입업ㆍ생산업으로 구분하는데, 여기에 경매업을 추가하고 온라인 판매도 허용할 방침이다.

개와 고양이ㆍ기니피그ㆍ햄스터뿐 아니라 조류와 파충류ㆍ어류 등도 반려동물에 포함할 방침이다.



평생 번식만 하다 죽는 ‘모견’과 ‘종견’

지난 7월7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면서 “가족처럼 반려동물에게 돈을 쓰는 새로운 트렌드를 잘 활용하면 먹이, 옷, 장난감 같은 기존 제조업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의 출산에서부터 미용, 훈련, 건강관리와 동물 장묘까지 새로운 서비스와 시장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반려동물 산업을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동물보호단체가 일제히 반발했다. 경매업은 ‘동물 판매업’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굳이 ‘동물 경매업’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보장해준다면 열악한 환경 속의 강아지를 대량 유통하는 구조적 학대가 더욱 공고해지기 때문이다.

현행법 규정부터 촘촘히 손질하고, 경매장이 이를 준수하도록 감독하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지난 8월1일 취재진이 참석한 경매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강아지를 사간 사람들은 24시간 안에 ‘환불’할 생각이 없으면 계좌로 돈을 지불한다.

경매장의 수익은 거래 수수료다. 한 마리가 팔릴 때마다 판매가의 5~5.5%를 수수료로 받는다.

평균 30만원 가격의 강아지가 경매장 규모에 따라 50~500마리씩 거래된다.



이날 어린 강아지뿐만 아니라 성견도 거래되었다.

성견은 번식장에서 교배용으로 쓰일 종견(수컷)과 모견(암컷)이 대부분이었다.

교배 능력이 떨어지면 경매장에 ‘매물’로 나온다. 다양한 품종으로 번식시키고 싶어서 성견을 사는 경우도 있다.

경매에 올라온 종견과 모견은 이런 식으로 여러 번식장을 떠돌며 교배와 출산을 반복하다 생을 마감한다.

이날 경매업자는 한 몰티즈 모견을 들어 보이며 아직 나이가 괜찮다고 힘주어 강조했지만, 결국 유찰됐다.



경매가 끝날 무렵, ‘49번 사모님’ 자리 옆에는 열 상자가 쌓였다.

강아지들이 종이상자에 뚫린 작은 숨구멍으로 자꾸 앞발을 내밀었다.

경매가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차에 하얀 상자를 싣고 경매장을 떠났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308&aid=0000019435&date=20160902&type=1&rankingSeq=2&rankingSection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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