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독재 맞서 6년 노상예배…‘민주화운동 큰 별’ 박형규 목사 타계
한국 민주화 운동사의 큰 별로 유신 독재에 맞선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불리던
박형규 목사가 18일 오후 5시30분 자택에서 지병으로 소천했다. 향년 93세.
평범한 목회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박 목사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4·19 혁명
이라고 한다.
당시 30대였던 박목사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근처 궁정동에서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 총소리와 함께 피 흘리는 학생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가장 혹독했던 시련은 그가 72년부터 목회를 맡은 서울제일교회 박해사건이었다.
83년 예배 방해로 시작해 장장 6년간 노상예배로 내몰렸던 그는 60시간에 걸친
감금에 살해 위협, 백주의 테러까지 당했다.
하지만 서울 오장동 제일교회 근처에서 신자들과 함께 모여 중부경찰서 앞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는 ‘정의와 평화를 위한 십자가 행진’을 하면서 노상예배는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그곳은 시대의 아픔을 나누는 광장이자 민주화운동의 현장이 되었다.
1973년 4월 유신체제를 비판한 ‘남산 야외음악당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
국가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징역 2년, 그 다음해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
(민청학련) 사건에선 국가내란음모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1975년에는 서울시경이 꾸며낸 ‘선교자금 횡령 및 배임 사건’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그 다음해에 다시 박 목사를 잡아넣은 독재 정권은 박 목사를 ‘기독교에 침투한
빨갱이’로 몰아 제거할 공작을 치밀하게 진행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불의한 시대에 성직자가 감옥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박 목사는 생전에
이야기했다.
[ 한겨레신문 기사 ]
※ 기사전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757397.html?_fr=m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