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5086356?sid=104
튀르키예를 강타한 대지진에 사망자가 연일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20년간 철권통치를 자랑하는 '스트롱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몰리고 있다. 오는 5월 치러질 대통령선거를 3개월 앞두고 여론 향방에 따라 그의 정치적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진 발생 사흘째인 8일(현지시간) 피해 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당국 대응과 관련해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재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고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문제는 다음 발언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부족한 점이 있지만 현재 상황은 명백하다"며 "이렇게 큰 재난에 준비돼 있기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원수가 지진으로 피해를 당한 국민의 마음을 감싸주기는커녕 책임 회피성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이와 관련해 CNN은 "강력한 지진으로 마을들이 무너져 내리며 대중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 발언이 나왔다"고 꼬집었다.
튀르키예 당국의 늑장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9일 현재 사망자는 1만5000명을 넘어섰다. 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악의 인명 피해다.
정부의 구조 작업이 더디고 인력과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신속한 구조가 어려운 상황이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지진 발생 사흘째에 현장을 찾으면서 여론은 악화되고 있다.
'지진세'에 대한 의혹도 불거졌다. 1999년 서부 대지진 이후 거둬들인 지진세에도 불구하고 이번과 같은 대지진에는 무용지물이었다는 비판이 핵심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세를 통해 지금까지 총 880억리라(약 5조9000억원)를 징수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국민들은 이 세금이 지진 대비에 사용됐는지 불분명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 시민은 CNN에 "관리들이 우리 돈을 삼킨다"고 주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일부 부정한 사람이 정부를 향해 허위 비방을 늘어놓고 있다"면서 "지금은 단결과 연대가 필요한 시기"라며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 차단에 나섰다.
비판 여론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로 튀르키예 정부가 트위터를 끊었던 정황도 포착됐다. 네트워크 감시업체 넷블록스는 튀르키예에서 트위터 접속이 차단됐다고 전했다. 일론 머스크 트위터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튀르키예 정부로부터 트위터 접속이 곧 가능해질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트위터 접속이 복구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굳힌 것은 1999년 대지진 영향이었다. 당시 규모 7.6 강진으로 1만7000여 명이 사망했으며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위기 속에서 치러진 2002년 총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이 창당한 정의개발당(AKP)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듬해인 2003년 총리직에 오른 이후 튀르키예 권력의 최정점에서 '21세기 술탄'으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지진으로 상황이 역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