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노역하다 왼손 검지가 잘렸는데 일본인 감독관이 ‘웃기다’며 손가락을 공중으로 연신 던졌습니다. 그것에 대한 울분이 남아있습니다.”
김 할머니는 “일을 하면 돈도 준다고 그렇게 꼬셔서 데리고 가서 평생 골병들게 이렇게 만들어놓았다”면서 “일본에 사죄를 받으려 하는데 (지금은) 애먼 소리만 나오고 있다. 지금도 일본은 잘못했다고 말 안 하는 심보”라고 분노했다.
함께 자리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소학교) 교장선생이 일본에 가면 공부를 시켜준다고 했지만 미쓰비시에 가서 고생만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배가 고픈 게 힘들었다”며 “일본 여성들이 먹다 남긴 밥이라도 먹고 싶은데 굳이 그것을 짓이겨 밟고 갈 때가 제일 서러웠다”고 회상했다.
http://m.hankookilbo.com/News/Read/A2023030807580003145
김 할머니는 “일을 하면 돈도 준다고 그렇게 꼬셔서 데리고 가서 평생 골병들게 이렇게 만들어놓았다”면서 “일본에 사죄를 받으려 하는데 (지금은) 애먼 소리만 나오고 있다. 지금도 일본은 잘못했다고 말 안 하는 심보”라고 분노했다.
함께 자리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소학교) 교장선생이 일본에 가면 공부를 시켜준다고 했지만 미쓰비시에 가서 고생만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배가 고픈 게 힘들었다”며 “일본 여성들이 먹다 남긴 밥이라도 먹고 싶은데 굳이 그것을 짓이겨 밟고 갈 때가 제일 서러웠다”고 회상했다.
http://m.hankookilbo.com/News/Read/A2023030807580003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