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회장 검은색 세단에 연두색 번호판?
8000만원 이상 차량으로 한정해 수입차 주력모델 모두 '예외'
오너 가족 스포츠카에 연두색 번호판…'금수저 상징' 될 수도
‘법인 차량의 사적 유용’을 막기 위한 ‘연두색 번호판’이 내년 1월 도입된다. 사장 아들이 회사 명의의 스포츠카를 개인적으로 타고 다니는 식의 법인차 유용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지만, 시행 과정에서의 여러 부작용 우려와 함께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지난 2일 행정예고한 ‘업무용 승용차 연두색 번호판 부착’ 관련 고시 개정안과 관련, 시행 초기 혼란, 형평성 논란, 역효과 우려 등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연두색 번호판 부착 자체도 문제의 소지가 많고, 차량 가격 8000만원 이상으로 대상을 한정한 부분과, 개인사업차 차량은 예외로 한다는 조항도 논란의 대상이다.
단속카메라, 주차장은 어떻게?
어떤 정책이건 시행 초기에는 혼란이 있게 마련이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색상의 번호판을 도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거 친환경차 전용 하늘색 번호판을 도입할 당시 과속단속카메라 등 각종 무인단속 시스템에 제대로 인식이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 주차장 진출입시 차량 인식에 사용되는 카메라도 마찬가지여서 혼란이 심했다.
연두색 번호판이 새로 등장해도 같은 일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무인단속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이후에도 연두색 번호판이 정확히 인식 되는지 여부를 검증해 여러 차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일이다.
민영 주차장은 개인 사업자들이 관련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한동안 연두색 번호판 차량에 주차장 입구가 막혀 있는 상황이 종종 발생할 수 있다.
대기업 회장님은 연두색, 고깃집 사장님은 일반 번호판?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 경영진에게는 기사가 딸린 고급 세단이 법인차로 제공된다. 회사 전체의 이해관계가 달린 중요 일정을 수행하는 이에게 이동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차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하지만, 이런 차에는 여지없이 연두색 번호판을 달아야 한다. 대부분이 검은색 세단인데, 연두색 번호판 조합은 영 어색하다.
반면, 개인사업자는 고급 세단을 업무용 차량으로 등록해 세금 감면을 받으면서도 연두색 번호판을 달지 않아도 된다.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수입차 성장세 멈출까?
연두색 번호판을 달아야 하는 법인차는 차량 가격 8000만원 이상으로 한정된다. 국산차로는 ‘사장님 차’인 제네시스 G90 정도가 해당되며, 나머지는 모두 수입차다.
8000만원 이상 수입차 중 법인차 판매량은 연간 6만대 내외다. 국내 연간 수입차 판매량(2022년 28만대)의 20% 수준이다. 여기서 개인사업자 차량을 제외하면 비중은 더 떨어진다.
브랜드별로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등 초호화 브랜드부터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포르쉐 등 슈퍼카 브랜드,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볼보, 렉서스, 링컨, 재규어, 캐딜락 등 럭셔리 브랜드가 영향을 받는다.
초호화 브랜드와 슈퍼카 브랜드는 법인차라면 거의 전 라인업이 연두색 번호판 신세를 면할 수 없지만, 대수로는 벤츠와 BMW, 아우디 등 판매량이 많은 브랜드가 연두색 번호판도 더 많이 달게 된다.
다만 이들 브랜드의 주력 모델들은 모두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렉서스 ES 등 국내 시장에서 인기가 많은 럭셔리 중형 세단은 최상위 트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8000만원 아래로 가격이 형성돼 있다. 벤츠 GLC와 BMW X4 등 주력 SUV 모델들도 마찬가지다.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부착이 수입차 시장에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성장세 자체를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이슈는 아니다.
‘내 것 같은 아빠 회사 스포츠카’ 사라질까?
연두색 번호판 도입의 가장 큰 목적은,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초고가 스포츠카를 법인차로 등록해 오너 가족이 자기 차처럼 몰고 다니는 것을 막는 것이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가장 큰 배경은 ‘과시성’이고, 과시는 유행을 탄다. 기업 오너를 부친으로 둔 젊은층 사이에서 연두색 번호판이 ‘굴욕’으로 인식된다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게 되는 것이지만 오히려 더 큰 ‘과시용 아이템’이 된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연두색 번호판이 기업 경영진의 검은색 세단에는 이질적일지 몰라도 화려한 색상의 스포츠카에는 오히려 잘 어울릴 수도 있다.
청담동을 누비는 형형색색의 스포츠카에 연두색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게 오히려 ‘금수저’임을 과시하는 수단이 된다면, 정부는 쓸 데 없이 혈세 낭비와 사회적 혼란만 초래하게 되는 셈이다.
‘예외’ 넣으면서 보편타당성 결여…추가 보완 필요
전문가들은 연두색 번호판 도입 초기 여러 측면에서 혼란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예외조항을 둔 것이나 예외의 기준점 설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정책의 취지에 맞는 효과가 제대로 나타났으면 좋겠지만, 정착까지는 문제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책은 보편타당성과 합리성이 있어야 되는데, 예외조항 등의 측면에서 그런 부분이 결여됐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법인차의 용도가 확실하고 제도적으로 함부로 남용을 못하게 돼 있는 대기업 경영진에게는 연두색 번호판이 망신거리가 되는 반면, 청담동 젊은 오너 자제들에게는 금수저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면서 “8000만원 이하 차량에 대한 면제는 아마도 장기렌트나 리스 업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고급 수입차 주력 모델들까지 모두 예외로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http://v.daum.net/v/20231106122352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