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빠



본문

동물원 푸바오, 사육농장 반달곰, 그리고 인간의 자리

  • 작성자: 0101
  • 비추천 0
  • 추천 0
  • 조회 91
  • 2024.02.25
친구네 밭 앞에서 우리는 한참 수다를 떨었다. 먼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유해 종’으로 지정된 고라니, 멧돼지를 사냥하는 소리다. 친구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책에서 본 바를 몇 마디 거들었다. 고라니나 산돼지, 오소리가 산 밑으로 내려오는 건 사람들이 자꾸만 산 위에 길을 내고 집을 짓고 골프장을 만들어서라고. 먹을 것이 없어서 아래로 내려오면, 관청에서 농작물을 지킨다며 고용한 사냥꾼들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그래서 다른 쪽으로 내려가면 또 다른 관청 사냥꾼이 지키고 있어서 산에 사는 동물들은 점점 갈 곳이 없고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고.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조금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도시에 사는 내가 농사짓는 친구들 앞에서 무슨 소리를 떠드는 거지.

....



“탈출한 곰은 세 살로 추정되며 온몸이 검은색이고 앞가슴에 반달 모양의 하트 무늬가 있습니다. 튀어나온 입과 넓은 이마, 큰 귀,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이 특징입니다. 이 곰을 목격하신 분은 즉시 경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의 글은 짧은 뉴스 멘트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그림은 곰이 농장을 나온 뒤 겪는 현실을 박진감 넘치는 구도와 강렬한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도하는 글과 곰의 입장에서 겪는 그림의 대조적 구성은 그림책 안에 비어있는 부분을 독자가 적극적으로 상상해서 채우도록 이끌고, 이는 곧 보는 이를 이야기 속으로 더 깊이 빨려들게 한다.

 

나는 이 평면 그림책에서 천둥 번개가 치는 밤의 빗소리와 속도, 그 비의 온도와 촉감, 달리는 곰의 헐떡거림, 순간 멈추었을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 먼 곳을 혼자 응시할 때 삼키는 곰의 침묵과 눈물 같은 것이 다 전해져서 놀라웠다.

 

또한 이 구성은 보는 이를 새로운 인상과 질문으로 이끈다. 예를 들어 곰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생겼는지 묘사하는 글에 따라오는 그림은 친구마저 잃고 지쳐 혼자 먼 산을 바라보는 곰의 뒷모습이다. 곰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장면에서는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하고 글이 따라온다. 이 어긋남에서 독자는 물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세계에서 진짜 공포에 떨고 있는 건 누구일까!

.....



인기 많은 판다곰 푸바오는 행복할까?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물은 아마 푸바오일 것이다. 푸바오는 한 놀이동산에 살고 있는 자이언트 판다곰인데, 중국에서 한국에 ‘임대’해 준 두 판다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자라는 모습까지 언론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말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푸바오가 나오는 영상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푸바오 인형이나 굿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푸바오가 나온 사진집은 지난해 온라인 서점 연말 결산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힐 만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푸바오는 올해 4월,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의 놀이동산을 떠나 중국으로 영영 떠난다고 하니 더 애틋해질 수밖에.

 

전시동물을 홍보하는 일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중국이 동물을 외교 수단으로 삼는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나 역시 푸바오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내 손보다 작은 몸짓으로 태어나 움찔거리던 모습부터 꼬물꼬물 엄마 젖을 찾아 먹고, 물고 깨물고 장난치다가 벌러덩 누워 낮잠 자는 영상은 아주 여러 번 보았다. 그 작은 곰이 몇 달 만에 내 몸보다 커지는 신비함에 놀라고, 처음으로 일어나서 네 발로 걷던 날, 나무에 오르던 날 사육사와 나눈 교감도 뭉클하게 기억한다.

 

이렇게 사랑받는 곰이라니, 푸바오는 행복할까? 우리는 푸바오의 몸짓과 표정, 생을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비인간동물과 교감하고 더 사랑하는 감각을 키워가고 있는 걸까?

 

이름을 찾아서 떠났던 ‘반달가슴곰-KM53’

 

『오삼으로부터』(윤주옥x결 지음, 니은기역, 2023)는 ‘오삼’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반달가슴곰-KM53’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삼이는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으로 2015년에 지리산에 방사되었던 반달가슴곰 중 한 명이다.

 

“나는 더 먼 길을 떠나게 되었어. 내 이름을 찾아서. 내가 부를 이름들을 찾아서.”



고 드디어 지난달에는 엄마의 고백을 들었다.

 

“이상해. 집에 고양이가 없으니까 허전하고 이상해. 삼일 같이 있었는데 이렇게 허전하니?”

 

푸바오와 반달가슴곰과 유해 종으로 지정되어 자꾸만 총에 맞는 고라니와 내 반려고양이 순이 사이에서 도시에 사는 나는 어떤 연결을 이어갈 수 있을까. 피상적인 말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실제적으로, 비인간동물들과 나 사이에 어떻게 공존이 가능한지 답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나는 엄마가 새롭게 알게 된 감각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네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감각 말이다. 나만 이 지구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구역에 동거하는 생명체로서 너도 나도 침범자로 여기지 않는 감각. 네가 이 산과 땅에 없는 것이 이상하다는 감각! 내가 너의 세계를 파괴한다면 나 역시 파괴될 수도 있다는 수용이 필요한 것 아닐까.


http://m.ildaro.com/9838

추천 0 비추천 0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close]

댓글목록

이슈빠



이슈빠 게시판 게시물 목록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조회 쓰레빠 슬리퍼
291 ‘손흥민의 손’ 다친 이유, 이강인과 몸싸움… 오늘만유머 02.14 92 0 0
290 “아 엄마 휴학시켜달라고”… 한림대 의대, … Z4가이 02.16 92 0 0
289 지하철역서 어깨 부딪힌 70대 노인 찌른 2… 김무식 02.16 92 0 0
288 방콕도 미세먼지 점령당했다…재택근무 명령 [… global 02.19 92 0 0
287 bhc, 값싼 브라질산 닭고기로 슬쩍 바꾸고… 숄크로 02.19 92 0 0
286 태권도장에 엄마·아들 시신…집에는 아빠 숨져… marketer 02.20 92 0 0
285 '정신줄 놓았나'... 클린스만 재택근무 이… 캡틴 02.21 92 0 0
284 이장우, '팜유즈' 바디프로필 4월 곧 오는… sflkasjd 02.22 92 0 0
283 "동생들 밥 챙길 생각에"…자전거 훔친 고교… 하건 02.25 92 0 0
282 미국, 경제·기술주 다 좋은데…기술 인력 줄… 국밥 03.03 92 0 0
281 빙하 조각서 겨우 잠든 북극곰… '최고의 야… 러키 02.08 91 0 0
280 "바이든 기억력, 중대한 한계 도달" 美특검… marketer 02.09 91 0 0
279 의대 열풍에 신입생도 ‘고령화’…25세 이상… 후시딘 02.09 91 0 0
278 여자친구 7시간 감금하고 전 남친 살해 시도… 무근본 02.12 91 0 0
277 정몽규 회장, 내일 축구협회 임원회의 불참 … 연동 02.12 91 0 0
276 中 매체의 황당한 손흥민 저격…“탁구로도 결… gami 02.14 91 0 0
275 전력강화위 "감독 경질 100% 동의"…클린… 보스턴콜리지 02.15 91 0 0
274 블루 아카이브 “이디야 커피 마시고 굿즈 받… 로우가 02.17 91 0 0
273 '서진이네2' 고민시 막내인턴 합류? "원활… 협객 02.20 91 0 0
272 '해킹'이라던 황의조 형수, 범행 자백 반… 뭣이중헌디 02.21 91 0 0
271 '내남결' 감독 "후반 빌런 보아 캐스팅한 … 협객 02.21 91 0 0
270 손흥민·이강인 화해에 '축협' 반응 나왔다…… 몇가지질문 02.22 91 0 0
269 부산 엘시티 99층서 뛰어내린 뒤 사라진 남… Lens 02.22 91 0 0
268 "유튜브 1300원" 디지털 망명 잡아낸다…… 얼리버드 02.24 91 0 0
267 "아빠 나 잡혀 있어"…우는 딸 전화에 '반… WhyWhyWhy 02.24 91 0 0

 

 

컨텐츠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