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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탱크 앞에서 상고 기각…김재규 나흘 뒤 처형 ..

  • 작성자: CJ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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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1964
  • 2016.12.06

미국 등 구명운동·광주항쟁 발발

초조해진 신군부, 대법원 협박

‘단순 살인’ 의견 무시 사형 확정

비협조적 판사들 보안사 연행도


한홍구 교수가 쓰는 사법부 - 회한과 오욕의 역사

17. 10·26 사건 재판 (하)


대법원 판결과 김재규 처형

박정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모두를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대법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11월 초에 열린 대법원 판사회의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재판에 계류 중인 미결수들을 당장 석방하자는 등 격론을 벌였지만, 정세가 유동적이니 사태를 좀 더 관망하자며 아무런 결론을 맺지 못한 채 끝났다. 그래도 사법부의 위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넘쳐났는데, 이런 기대도 잠깐뿐이었다. 이미 11월에 이영섭 대법원장이 계엄사령관 이희성과 우연히 만났을 때 이희성은 김재규 사건이 3월 며칠경에 대법원에 접수될 것이라고 일정을 통고했다. 1980년 3월 초 육군본부 법무감 박재명은 대법원장 이영섭을 찾아와 수일 내로 김재규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될 것이라며 한 달 내로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는 사이 현역 군인으로 군법회의에서 형이 확정된 김재규의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은 1980년 3월 6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형사3부(재판장 안병수, 주심 유태흥, 배석 양병호, 서윤홍)에 배당했다. 1971년 사법파동 당시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로서 후배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던 주심 유태흥은 접수 20일 쯤 지나 열린 심리에서 기각이 마땅하다는 의견을 냈다. 강산이 바뀔 10년 세월은 사람이 바뀌기에 충분한 모양이었다. 이 사건의 심리는 이례적으로 대법원 판사 전원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는데, 기각감이라는 주심의 의견에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벌써 방대한 기록을 다 보았느냐, 기록도 보지 않고 예단하는 것 아니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니 우리도 기록을 보아야겠다, 역사적인 재판이고 기록도 방대하니 시일을 두고 합의하는 것이 좋겠다, 군법회의에서 사건을 졸속처리했으니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내란 목적 살인이 아니라 단순 살인 아니냐 등등 의견이 분분하여 사건은 대법원 형사3부에서 결론을 보지 못하고 4월 10일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격론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여 표결에 부친 결과 8 대 6으로 상고 기각 결정을 보았다. 대법원이 합의를 종결한 것은 4월 28일이었지만, 소수의견이 강력히 제기되다 보니 판결문 작성에도 시간이 걸려 선고공판은 5월 20일로 잡혔다.

대법원의 판결이 늦어지자 집권을 노리던 신군부는 아우성을 쳤다. “재판이 늦어져 사회 혼란이 가중된다”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들리고, 대법원을 탱크로 밀어버리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분위기는 살벌했다. 미국과 재야에서 김재규 구명운동이 벌어지는 것은 신군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인권변호사들도 중앙정보부장을 변호하는 것에 좀 떨떠름해했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그들은 민주 회복을 향한 김재규의 진정성과 인품에 매료되었다. 그러던 사이 5·18 학살과 광주민중항쟁이 발발했다.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을 쏘아가며 막아보려 했던 유혈사태가 기어코 벌어진 것이다. 5월 20일 대법원 앞에 탱크가 버티고 선 상황에서 선고공판이 열렸고, 상고는 기각되었다. 그리고 나흘 뒤인 5월 24일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재심이 청구된 사건에 대해서는 사형 집행을 미루는 관례는 지켜지지 않았다. 변호인들도 입회할 수 없었다. 강신옥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직후 보안사에 연행되어 20일 남짓 고초를 겪었고, 다른 변호사들은 모두 피신했기 때문이다.

내란목적 살인인가, 단순 살인인가

10·26 사건 직후 정부는 김재규가 술자리에서 우발적으로 박정희를 쏘았다고 했고,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역시 김재규가 우발적으로 박정희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신군부는 그를 내란 목적 살인이라는 계획된 행위로 기소했는데, 실제 수사를 담당했던 합수부 수사1국장 백동림은 김재규가 박정희 살해에 성공한 후 중앙정보부로 가지 않고 육군본부로 갔다가 체포된 것만 보아도 이 사건은 계획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신군부는 자신들의 권력 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김재규가 내란을 획책했다고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내란을 일으킨 것은 김재규가 아니라 전두환 등 신군부였다.

양병호, 민문기, 임항준, 서윤홍, 김윤행, 정태원 등 대법원판사들이 낸 소수의견의 요지는 10·26 사건 이후 새 헌법을 채택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행위 시의 체제와 재판 시의 체제가 달라졌기 때문에 내란죄로 처벌할 수 없고, 자연인 박정희를 살해한 행위가 국헌 문란 목적의 살인행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또 내란죄가 성립하려면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치기에 충분한 폭동을 일으킬 만한 다수인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이 사건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다수의견 쪽에 섰던 이일규 전 대법원장은 필자와의 면담에서 “이론적으로는 소수의견이 옳았다”며 “일반 살인이든 내란 목적 살인이든 어느 쪽으로 해도 사형은 틀림없는데 내란 목적이냐 뭐냐 따져서 시일을 보낼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에 소수의견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란 목적 살인이냐, 일반 살인이냐는 김재규의 박정희 살해 동기와 관련하여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소수의견 낸 대법원 판사들 학살

14인의 대법원 판사 중 6명이나 신군부의 압력에 맞서 소수의견을 냈다는 것은 대단히 뜻깊은 일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등 신군부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양병호, 민문기, 임항준, 서윤홍, 김윤행 대법원 판사는 모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재판을 앞둔 8월 초 ‘의원면직’ 형식으로 대법원을 떠나야 했다. 이 중 가장 고초를 겪은 분은 양병호 판사였다. 항소심이 끝난 직후인 1980년 1월, 보안사의 2인자를 자처한 이학봉은 대법원 판사 중 임용 서열 2위로 김재규 재판을 배당받을 것이 확실시되던 양병호 판사를 찾아가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양병호는 이를 무시하고 과감히 소수의견을 냈다. 광주항쟁을 진압한 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출범시킨 신군부는 이른바 ‘사회정화’를 내걸고 2급 이상 공무원에 대한 숙정을 시작하면서 소수의견을 낸 대법원 판사들을 정화 대상에 포함시키려 했다. 정말 ‘정화’되어야 할 자들이 ‘정화’라는 칼을 휘두른 것이다. 김헌무 등 국보위에 파견나가 있던 판사들이 실무선에서 완강히 저항한 결과 일단 7월 중순의 고비는 넘겼지만, 그들의 운명은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재판이 다가오면서 신군부 내에서는 이들을 그대로 둔 채 재판을 시작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시 제기되었다. 먼저 보안사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소수의견을 주도한 양병호가 사표를 종용받았다. 양병호가 사표 제출을 거부하자 보안사는 8월 초 악명 높은 서빙고분실로 그를 연행했다. 며칠 후 법원행정처장 서일교는 이영섭 대법원장에게 대법원장께서 수리해 주셔야만 양병호가 풀려날 수 있다면서 ‘친필’ 사표를 내밀었다. 사표를 수리하자 한 시간 정도 만에 양병호 판사가 대법원장실에 나타났다. 양병호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면서 커피를 마셨지만, 커피가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슴과 와이셔츠를 적시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며칠 후 민문기, 임항준, 김윤행, 서윤홍 등 대법원 판사 4명도 사표를 제출하여 8월 9일자로 수리되었다. 김재규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지 않은 채 소수의견에 가담했던 정태원 판사는 이때 사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1981년 4월 5공화국 헌법에 의해 대법원이 재구성될 때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양병호 등은 변호사 개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들을 모시던 비서관, 운전기사 등도 ‘정화’ 바람에 목이 달아났다.

오욕의 극한

소수의견을 낸 대법원 판사들의 사표가 수리되고 얼마 후 전두환이 ‘새 시대의 영도자’를 자임하며 대통령이 되었다. 이영섭 대법원장이 취임 인사를 가자 전두환은 “김재규 사건을 대법원에서 그렇게 늦게 처리하는 바람에 광주사태 같은 예상치 못한 국가적 소요사태가 일어났다”며 힐난했다. 그는 대포 한 방으로 대법원을 날려버리자는 장군들을 자신이 말렸다면서 국사범에 소수의견이 가당키나 하냐고 퍼부었다. <법조야사>에 따르면 1980년 연말 전두환이 청와대 부근 안가에서 주최한 송년회에서 이영섭 대법원장이 전두환에게 술을 권하자 전두환은 갑자기 이영섭의 팔을 꽉 잡고 “그때 대법관들 집 다 알아두었소”라고 한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이일규 전 대법원장에 따르면 중앙정보부장 시절 전두환은 사람을 보내 이영섭 대법원장에게 김재규 사건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면서 한번 만나자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법원장은 당연히 중앙정보부장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고, 전두환은 이영섭이 자기를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다가 시일이 흘러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1981년 1월 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상고심에서 전원 일치로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하여 김대중의 사형을 확정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김대중을 무기로 감형했다. 악역은 대법원이 맡고 선심은 전두환이 쓴 꼴이었다. 이영섭은 신군부의 압력으로 입이 돌아갈 정도로 마음고생을 하다가, 5공화국 헌법이 발효되면서 대법원장에서 물러났다. 형식적으로나마 “수고하셨다”는 말도, 후임 인선에 대한 논의도 없이 불쑥 후임자가 결정되었다는 통고를 받았다고 한다. 후임은 10·26 사건의 주심으로 맹활약한 유태흥이었다. 이영섭은 1981년 4월 15일 퇴임식 직전 손수 쓴 짧은 이임사에서 사법부(司法府)를 한자로 司法部라고 썼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일개 부처 정도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이영섭은 1961년 대법원 판사가 된 이래 20년 간 복무한 대법원을 이렇게 말하고 떠났다. “사법부의 정상의 직을 맡을 때는 포부와 이상도 컸었지만, 오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것이었습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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