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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소녀 박숙이를 되찾고 싶다"(스압)

  • 작성자: 얼굴이치명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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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1457
  • 2016.12.07
  소녀는 그랬다. 산에 나물을 뜯으러 가면 남들보다 빨리 바구니를 채웠고, 바닷가에서는 씨알이 굵고 좋은 조개만 캤다. 소녀는 손재주가 참 좋았다.

  유난히 햇볕이 따사롭던 어느 봄날, 열여섯의 소녀는 고향집에 놀러온 한 살 터울의 이종사촌 언니와 함께 남해 바닷가에 조개를 캐러 길을 나섰다. 소쿠리를 가득 채울 기대감에 발걸음도 가볍다.

  그런 소녀들 앞에 난데없이 검은 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소녀들의 목에 칼을 겨누고는 막무가내로 차에 욱여넣었다. 차 안은 울음소리와 비명이 뒤섞인 아수라장이었다. 겁에 질린 소녀는 열댓 명의 다른 소녀들과 함께 이유도, 목적지도 모른 채 배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도착한 곳은 일본 나고야. 소녀는 바로 창고에 갇혔다. 옆에 같이 앉아있던 또래의 여자아이는 동네 아저씨가 간호사 시켜준다기에 따라왔단다. 소녀는 그렇다면 나도 간호사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엄습해오는 무서움을 달랬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사람들은 소녀를 또 어디론가 데려가더니 앳된 소녀의 얼굴에 짙은 화장을 시키고, 일본식 옷으로 갈아입힌다. 그렇게 어색한 차림의 소녀는 다시 배에 실려 만주로 갔다. 도착한 곳은 텐트를 개조한 곳이었는데 방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소녀는 여전히 이곳에 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룻밤이 지나자 예고 없이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박숙이’라는 이름 대신 ‘히로코’라 불렀다. 그들이 소녀에게서 빼앗은 건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소녀의 순결도 무참히 빼앗고 처참히 짓밟았다. 소녀는 온 힘을 다해 반항하고 저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매질뿐이었다. 몽둥이로 허리를 맞아 뼈가 부러지고, 어떤 군인은 말을 안 듣는다며 대검으로 소녀의 허벅지를 찔렀다.

  소녀는 하루에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대중없이 군인들을 상대했다. 소녀는 더 이상 여자도, 아니 인간도 아니었다. 오로지 군인들의 더러운 욕망의 배설창구였을 뿐이었다.

  맑았던 소녀의 눈동자는 점점 초점을 잃고, 삶의 의지는 차츰 빛이 바랬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던 세월이 자그마치 6년이나 흘렀다. 짐승 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해 손목을 그었다. 하지만 곧바로 들켜 매질만 당했다. 두 달이 넘게 곡기도 끊어봤다. 모진 목숨은 쉽게 사그라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살아도 사는 게 아니던 어느 날, 한 일본 병사가 “우리가 전쟁에 져 조선 놈들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소녀는 그제야 독립을 했구나 하고 짐작했다.

  일본의 패색이 짙던 어수선한 틈에 함께 위안소로 끌려왔던 사촌언니가 문 밖으로 나가다 일본군과 마주쳤다. 도망가는 줄로 오해한 군인은 언니에게 총을 쐈다. 언니는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소녀는 그 자리에 돌처럼 굳었다. 그러다 옆에 있던 여자가 “어쨌든 산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소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소녀는 쓰러진 언니에게 몰려든 사람들로 웅성거리는 틈에 뒷문으로 몰래 도망쳐 어느 집에 숨어들었다.

  하필이면 중국인 홀아비의 집이다. 그는 같이 안 살면 신고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울며 겨자 먹기로 2년 동안 그의 수발을 들었다. 그가 생활비로 던져주는 푼돈을 차곡차곡 모아 도망쳤다.

  우여곡절 끝에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떠나온 지 11년 만에 다시 밟았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고향 남해가 아닌 낯선 부산이었다. 고향인 남해로 돌아가려 했지만 워낙 어릴 때 떠나온 터라 어떻게 가야 할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부산역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갈 데 없으면 식모살이라도 할 테냐고 물어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가 그렇게 3년간 목욕탕 집 가정부로 살았다.

  그러다 문득 소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화방사’라는 절에 다녀오겠다고 말한 걸 떠올렸다. 화방사로 가는 길을 묻고 물어 먼 길을 돌아 다시 고향집으로 왔다.

  소녀가 집을 떠났을 당시의 나이만큼이나 타지를 떠돌다 다시 돌아왔지만, 고향집에는 부모님이 안 계셨다. 모여 살던 사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얼마 남지 않은 친척들은 소녀가 이미 저 세상 사람이다 싶어 제사까지 지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동안 어찌 살았냐는 질문에는 차마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없어 부산에서 10년 동안 식모를 살았노라고 답했다.

  혈혈단신이 된 소녀는 더 이상 고향 마을에 남아 살 염치가 없다. 소녀는 결국 한 달여 만에 그렇게 그리고 그리던 고향집을 떠나 남해읍 오동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어느 날 이웃 할아버지가 “젊은 각시가 애를 두고 도망갔다”며 아이를 좀 봐 달라 부탁을 하기에 그러겠다고 선뜻 대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 소녀는 운명이라 여기고 아이를 자신의 양딸로 삼았다. 그런데다 남해읍의 한 술집에서 일하던 처녀가 아들을 낳아 소녀에게 맡기고는 도망을 갔다. 6·25 때 피란을 가던 중 대구의 한 고아원을 지나는데 한 순경이 한 여자아이를 떠밀며 “아이를 제발 업고 가달라”며 읍소한 탓에 그 아이도 거뒀다. 소녀는 그렇게 가슴으로 낳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메인이미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박숙이 할머니가 남해노인전문병원에서 소녀시절 겪었던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 증언을 마친 후 사진을 찍어려 하자 소녀처럼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엄마는 아이들이 배를 곯지 않도록 죽기 살기로 일을 했다. 길쌈도 하고 중국 한약방에서 눈동냥으로 배운 기술로 마을사람들에게 침을 놓아주고 부항을 떠주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했다. 억척 아줌마로 산 덕분일까. 아이들은 건강하고 나무랄 데 없이 잘 자라줬다. 자식들은 결혼해 떡두꺼비 같은 손주들도 품에 안겨줬다. 그렇게 소녀는 할머니가 됐다.


  긴 세월 동안 할머니는 위안부였다는 걸 가슴속에 깊이 묻어뒀다.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준 자식들이 손가락질을 받을까 두려워서였다.

  손주들이 장성해 품을 떠나니 할머니는 여든여섯의 노인이 됐다. 언론에서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나이 든 소녀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연일 내보냈다. 눈도 귀도 차츰 어두워지던 할머니는 ‘히로코’에게 억울하게 빼앗겼던 열여섯부터 스물두 살의 ‘박숙이’를 되찾고 싶었다.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할머니는 2011년 여성가족부에 남해 출신의 최초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해 등록을 마쳤다. 이듬해부터 할머니는 강단에 섰다. 더 이상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비밀 따위는 없었다. 이제는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당당함이 마음 한편을 채웠다.

  하지만 잔혹한 세월 동안 겪은 고통은 세월이 갈수록 심각한 후유증을 안겼다. 급격히 건강이 나빠진 할머니는 몇년 전부터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할머니가 있는 남해노인전문병원을 찾았을 때, 허리가 아파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는 할머니는,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느냐 묻자 “공부를 열심히 하고 강해져서 일본이고, 미국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서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았지만 나라 잃은 설움이 제일 아프다”며 “일본놈들에게 끌려갈 때 주변에 조선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라 아무 말도 못했다”고 말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왜놈들 다 물에 잠겨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지난 6일, 박숙이 할머니는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다. 박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39명으로 줄었다.

  박숙이 할머니의 소원은 단 하나, 일본의 진정한 사죄였다. 그래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다고 했었다.

  우리는 서둘러야 한다. 남은 39명의 할머니들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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