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도 애들 데리고 집에 가야죠. ‘밥 한 끼 먹이고 엄마 손잡고 집에 가자. 용서해주고 허락해주면 우리도 앞에 서고, 뒤에 서고, 옆에 서서 (아이들이) 엄마 손 놓지 않게 해줘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가 1074일만에 맹골수도를 떠나기 시작한 24일, 김제동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고, 말이 가끔씩 끊겨 알아듣기 쉽지 않았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잘 있다가도 막 북받쳐 터져나와요. 여행도 다니고 밥도 먹고 하다가 문득 이래도 되나? (그런 생각이) 가끔씩 들었어요. 근데 부모님들은 항상 그러실 거 아니에요. 이제 끝까지 밝혀야죠. 밝히는 게 치유의 시작이거든요.”
팽목항, 청와대 앞,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했던 김제동은 다음달 16일 사고 3주기에는 정부가 제대로 예를 갖춘 추도식을 열면 좋겠다고 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사람들 이름도 불러주고 의장대가 예도 갖춰주고 하면서 우리 마음을 함께 표현할 수 있는 3주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정부가, 우리가 사과하고 기억하면서 우리 마음속의 상처들, 무의식에 배어 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앞서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 지 열흘 뒤인 지난 20일 김제동을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평소 한달 평균 5000명, 많게는 2만명을 웃기고 울리며 마음을 읽어왔고, 지난 몇달의 탄핵현장에서 그 몇배의 시민을 만나왔다. 김제동은 쉽지만 분명한 언어로 국민이 권력자임을 일깨우고 자존감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모아진 시민의 힘이 탄핵을 이끌어갔다.
김제동은 광장의 외침이 멈추고 시민들의 ‘마이크’도 사라진 지금, 정치권의 상황이 그리 미더워 보이지는 않는 듯 했다. ‘전두환 표창’ 논란 등 ‘이전투구’ 양상의 선거전과 그리 새로워 보이지 않는 일부 캠프참여 인사들을 보면 정치권이 시민의 열망을 제대로 담아낼지 의문스러워 했다. “이래서는 시민들이 다시 뒷방으로 떠밀려난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사는 게 과연 나아지기는 할까’라는 허탈감이 들 것도 같아요.”
그래서 김제동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행해야 할 정책목록을 시민들이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목록에는 누가 대통령이 되건 최저시급 1만원을 시행하고, 남북문제 주도권을 우리 정부와 국민이 쥐도록 노력하고, 시민들이 국정에 상시 참여하는 방안 등이 담길 수 있다. “사드는 미국이 하라고 해도 국익에 맞지 않으면 배치하지 말아야 하고, 국익에 맞다면 중국이 반대해도 배치할 수 있어야 해요.” 김제동은 최근 청년정당 ‘우리미래’의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이런 주장들을 펼치고 있다.
광장에서 헌법의 가치를 설파해온 ‘헌법전도사’답게 김제동은 3시간 반의 인터뷰 도중 헌법 조문을 줄줄 뀄다. 헌재의 파면결정에 대해 “국민이 국가운영의 주체임을 명확히 한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 “헌법을 읽어보면 우리 국민이 보통‘갑’도 아닌 ‘수퍼갑’인 걸 알게 돼요. 헌재의 결정문은 어떤 문학작품 못지 않게 아름다워요.”
· 민주주의는 우리 삶의 목적이 아니에요. 우릴 행복하게, 함께 웃게 해줄 수단이죠.
■아이들 보면 ‘잘됐으면 좋겠다’ 싶다
- 대중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장벽이 아직도 높지 않나.
“그쪽 경력이 이제 10년쯤 되는데 지금은 많아져서 좋다. 본업에 충실하라고 하는데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이 누군지 봐야 한다. 우리 국민 취미가 국난극복 아닌가.(웃음) 정치인이 제 역할을 한다해도, 국민의 본업은 공동체에서 목소리를 내는 거다. 그게 얼마나 재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