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khan.co.kr/view.html?art_id=202104170600065#c2b
■엄마는 게임 중
“부끄럽고 민망하다”며 인터뷰를 주저하던 ‘엄마들’은 게임 이야기를 시작하자 목소리에 묻어나는 신명을 감추지 못했다. 게임시장이 주목하지 않는 50대 여성들이 바라본 게임 속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 먹고 ‘게임은 무슨’ 했는데…새롭게 뭔가 배우고 만들게 되더라”
“엄마, 과금러였어?” 김혜선씨는 얼마 전 대학생 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과금러’는 게임에 돈을 쓰는 사람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다. ‘현질(온라인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입하는 것)’이 시작된 건 대세 게임 ‘쿠키런:킹덤’(쿠킹덤)을 하면서부터다. 다른 이용자와 교류하는 소셜 역할수행게임(RPG)은 김씨에게 낯선 장르였다. 김씨를 게임으로 초대한 건 딸이었다. “막상 (앱을) 깔고 보니 캐릭터가 귀여웠어요. 애한테 설명을 좀 해달라고 하니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며 게임 방법과 쿠키들 성격을 알려줬어요. 해보자 싶었죠.”
게임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폐허가 된 쿠키 왕국을 재건하기 위해 다섯 쿠키가 모험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쿠키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모험에 따른 전투는 ‘자동 전투’ 기능을 활용했다. 김씨는 “실행만 시키면 알아서 싸운다”고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왕국도 꾸미고, 열심히 모은 ‘별사탕’으로 쿠키를 성장시켰다. 딸의 권유로 3만원을 “투자”해 에스프레소맛 쿠키도 뽑았다. 애착 쿠키도 생겼다. “맨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양파맛 쿠키를 보면 딸 어렸을 때가 생각나요. 허브맛 쿠키는 말을 착하게 하고 목소리도 좋아서 제일 좋아요.”
게임 생활이 마냥 순탄한 건 아니었다. 지난달 초 업데이트 이후 ‘쓴맛’을 봤다. 새로 생긴 ‘길드 토벌전’은 이용자들이 연합해 팀을 이뤄 적을 토벌할 수 있도록 했다. 하루 3번 용과 싸울 수 있고, 성과에 따라 보상이 지급됐다. 문제는 길드의 ‘성과주의’였다. 능력치보다는 좋아하는 캐릭터로 구성된 김씨의 쿠키들은 팀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낮은 성과로 세 차례나 길드에서 쫓겨났다. “서운한데 어쩌겠어요. 젊은 친구들이 보기엔 많이 답답했을 거예요. 50대 아줌마라고 하면 봐줬을 수도 있지만, 실력이 기준이라면 퇴출돼도 할 말은 없죠.(웃음)”
여전히 게임은 “쑥스러운” 취미다. 하지만 김씨는 “나도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이 커졌다”면서 “게임에 시간과 돈을 쓰는 걸 마냥 나쁘게 보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뮤지컬에 돈 쓸 땐 30만원도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거든요. 게임은 1만원, 3만원만 있어도 재미와 기쁨을 줘요. 과소비만 하지 않는다면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장영숙씨는 동물 친구들과 자신만의 섬마을을 꾸며가고 있다.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모동숲) 이야기다. 입문 8개월차인 장씨도 딸을 통해 게임에 발을 들였다. 직장인 딸은 지난해 4월 한창 닌텐도 품귀 현상이 일었을 때 모동숲을 시작했다.
딸이 게임에 싫증을 느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자 게임기를 방치하는 날이 늘었다. 그 무렵 장씨는 ‘코로나 블루’가 극에 달했다. 운영하던 카페는 매장 내 취식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영업시간을 단축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번갈아 가며 재택근무를 하는 가족들과 다투는 날이 늘었다. 딸은 극약처방으로 게임을 권했다. “이거 하면 화가 가라앉을 거라면서 게임기를 쥐여줬어요. 처음엔 안 한다고 했죠. 남세스럽잖아요. 나이 먹고 게임은 무슨….”
‘남는 시간’ 앞에 장사 없었다. 딸의 도움을 받아 게임기 조작법을 익혔다. “세상 좋아진 걸 느꼈다”고 말했다. 바다에 던져놓은 낚시찌를 물고기 그림자가 건드릴 때마다 손끝에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엔 감전된 줄 알고 게임기를 던졌어요.” 장씨가 웃으며 말했다. 바지락을 캐서 미끼를 만들고, 미끼를 던져 물고기가 나타나면 낚싯대로 낚았다. 이 별것 아닌 과정에 밤새는 줄 몰랐다. 물고기와 곤충을 잡아 판 돈으로 대출금을 갚아 집도 키웠다. 장씨는 “내 집 마련의 꿈을 게임에서 이뤘다”며 웃었다. “나이가 들수록 쪼그라드는 기분이 있잖아요. 이룬 것도 없는 것 같고 일도 잘 안 풀리니까. 근데 게임에서라도 자꾸 뭘 배우고,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장씨는 “게임 속에서 존중받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10마리 동물 주민은 장씨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생일날엔 파티를 열고 선물을 줬다.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우편함에서 동물 주민이 보낸 편지를 열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주민들은 틈만 나면 달려와 질문을 던진다. ‘말투를 고쳐야 할까?’ ‘그 물건 나한테 팔지 않을래?’ 어떤 답을 해도 동물 친구들은 ‘만족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누구도 싫은 소리를 안 해요. ‘잘했다’ ‘멋지다’ 이렇게 칭찬만 받기도 어렵잖아요. ‘너희가 사람보다 낫다’고 혼잣말 할 때도 있어요.(웃음)”
성취감·존중받는 기분·배우는 기쁨…. 경향신문과 만난 50대 여성 게이머들이 공통으로 찾아낸 게임의 가치다. 게임을 통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의 모습도 다양했다.
■엄마는 게임 중
“부끄럽고 민망하다”며 인터뷰를 주저하던 ‘엄마들’은 게임 이야기를 시작하자 목소리에 묻어나는 신명을 감추지 못했다. 게임시장이 주목하지 않는 50대 여성들이 바라본 게임 속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 먹고 ‘게임은 무슨’ 했는데…새롭게 뭔가 배우고 만들게 되더라”
“엄마, 과금러였어?” 김혜선씨는 얼마 전 대학생 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과금러’는 게임에 돈을 쓰는 사람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다. ‘현질(온라인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입하는 것)’이 시작된 건 대세 게임 ‘쿠키런:킹덤’(쿠킹덤)을 하면서부터다. 다른 이용자와 교류하는 소셜 역할수행게임(RPG)은 김씨에게 낯선 장르였다. 김씨를 게임으로 초대한 건 딸이었다. “막상 (앱을) 깔고 보니 캐릭터가 귀여웠어요. 애한테 설명을 좀 해달라고 하니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며 게임 방법과 쿠키들 성격을 알려줬어요. 해보자 싶었죠.”
게임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폐허가 된 쿠키 왕국을 재건하기 위해 다섯 쿠키가 모험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쿠키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모험에 따른 전투는 ‘자동 전투’ 기능을 활용했다. 김씨는 “실행만 시키면 알아서 싸운다”고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왕국도 꾸미고, 열심히 모은 ‘별사탕’으로 쿠키를 성장시켰다. 딸의 권유로 3만원을 “투자”해 에스프레소맛 쿠키도 뽑았다. 애착 쿠키도 생겼다. “맨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양파맛 쿠키를 보면 딸 어렸을 때가 생각나요. 허브맛 쿠키는 말을 착하게 하고 목소리도 좋아서 제일 좋아요.”
게임 생활이 마냥 순탄한 건 아니었다. 지난달 초 업데이트 이후 ‘쓴맛’을 봤다. 새로 생긴 ‘길드 토벌전’은 이용자들이 연합해 팀을 이뤄 적을 토벌할 수 있도록 했다. 하루 3번 용과 싸울 수 있고, 성과에 따라 보상이 지급됐다. 문제는 길드의 ‘성과주의’였다. 능력치보다는 좋아하는 캐릭터로 구성된 김씨의 쿠키들은 팀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낮은 성과로 세 차례나 길드에서 쫓겨났다. “서운한데 어쩌겠어요. 젊은 친구들이 보기엔 많이 답답했을 거예요. 50대 아줌마라고 하면 봐줬을 수도 있지만, 실력이 기준이라면 퇴출돼도 할 말은 없죠.(웃음)”
여전히 게임은 “쑥스러운” 취미다. 하지만 김씨는 “나도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이 커졌다”면서 “게임에 시간과 돈을 쓰는 걸 마냥 나쁘게 보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뮤지컬에 돈 쓸 땐 30만원도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거든요. 게임은 1만원, 3만원만 있어도 재미와 기쁨을 줘요. 과소비만 하지 않는다면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장영숙씨는 동물 친구들과 자신만의 섬마을을 꾸며가고 있다.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모동숲) 이야기다. 입문 8개월차인 장씨도 딸을 통해 게임에 발을 들였다. 직장인 딸은 지난해 4월 한창 닌텐도 품귀 현상이 일었을 때 모동숲을 시작했다.
딸이 게임에 싫증을 느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자 게임기를 방치하는 날이 늘었다. 그 무렵 장씨는 ‘코로나 블루’가 극에 달했다. 운영하던 카페는 매장 내 취식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영업시간을 단축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번갈아 가며 재택근무를 하는 가족들과 다투는 날이 늘었다. 딸은 극약처방으로 게임을 권했다. “이거 하면 화가 가라앉을 거라면서 게임기를 쥐여줬어요. 처음엔 안 한다고 했죠. 남세스럽잖아요. 나이 먹고 게임은 무슨….”
‘남는 시간’ 앞에 장사 없었다. 딸의 도움을 받아 게임기 조작법을 익혔다. “세상 좋아진 걸 느꼈다”고 말했다. 바다에 던져놓은 낚시찌를 물고기 그림자가 건드릴 때마다 손끝에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엔 감전된 줄 알고 게임기를 던졌어요.” 장씨가 웃으며 말했다. 바지락을 캐서 미끼를 만들고, 미끼를 던져 물고기가 나타나면 낚싯대로 낚았다. 이 별것 아닌 과정에 밤새는 줄 몰랐다. 물고기와 곤충을 잡아 판 돈으로 대출금을 갚아 집도 키웠다. 장씨는 “내 집 마련의 꿈을 게임에서 이뤘다”며 웃었다. “나이가 들수록 쪼그라드는 기분이 있잖아요. 이룬 것도 없는 것 같고 일도 잘 안 풀리니까. 근데 게임에서라도 자꾸 뭘 배우고,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장씨는 “게임 속에서 존중받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10마리 동물 주민은 장씨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생일날엔 파티를 열고 선물을 줬다.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우편함에서 동물 주민이 보낸 편지를 열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주민들은 틈만 나면 달려와 질문을 던진다. ‘말투를 고쳐야 할까?’ ‘그 물건 나한테 팔지 않을래?’ 어떤 답을 해도 동물 친구들은 ‘만족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누구도 싫은 소리를 안 해요. ‘잘했다’ ‘멋지다’ 이렇게 칭찬만 받기도 어렵잖아요. ‘너희가 사람보다 낫다’고 혼잣말 할 때도 있어요.(웃음)”
성취감·존중받는 기분·배우는 기쁨…. 경향신문과 만난 50대 여성 게이머들이 공통으로 찾아낸 게임의 가치다. 게임을 통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의 모습도 다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