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utu.be/i1kUGej6YGU
[KBS 광주]
[기자]
부모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어린이날 선물에 한없이 기뻐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5월의 하늘, 누군가에게는 퍽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41년 전인 1980년 5월 광주에서 아이를 잃은 이들입니다.
[전재룡/故 전재수 형 : "형 내가 조금만 가서 애들하고 놀고 올게. 새 신발도 자랑해주고... 조금만 놀다 오라고 했는데 이제 그런 변이 생겼습니다."]
[박현옥/故 박현숙 언니 : "동생한테 배 하나 먹고 있어, 아버지한테 아빠 호강 시켜 줄게요. 그게 이제 다 마지막이 돼버린 거죠. 저희 집안은 동생의 죽음이 모든 한 가정을 깨뜨려 버린 거에요."]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지도 못한 사연은 더 기막힙니다.
계엄군을 피해 몸을 숨겼다가, 친구들과 함께 골목에 놀러 나갔다가 사라진 소년과 소녀가 여럿입니다.
다시 돌아온 5·18을 맞아 KBS는 5월에 사라져 버린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첫 이야기는 80년 5월 최후의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에서 찍힌 영상과 사진 속 한 어린아이에 얽힌 사연입니다.
잔혹한 진압의 현장에 왜 아이가 있었을까요?
아이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을까요?
풀리지 않는 그 날의 의문, 양창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헬기가 내려 앉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
5.18 도청 진압 작전이 끝난, 1980년 5월 27일 오전입니다.
광장 앞에는 체포된 시위대가 탄 버스가 있습니다.
버스 안을 들여다 보니 뜻밖의 모습이 보입니다.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것 같은 어린 아이입니다.
장발의 청년에게 안겨 있는 남자 아이는, 주변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한 얼굴입니다.
최근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된 영상에 촬영된 아이.
누구도 행방을 모르지만 곁에 있던 청년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20대 초반, 이제는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이동춘 목포과학대 교수입니다.
도청 앞에서 함께 체포된 고등학생들로부터 아이를 넘겨 받았다는 이 교수.
아이를 끌어 안고 헌병대까지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동춘/목포과학대 교수 : "저는 그 아이를 부여안고 그 군인들의 버스에 탑승했고, 이후 군 연병장에서 분류심사를 하면서 반드시 나는 분명히 헌병들한테 인계했던 아이였고..."]
열사들이 산화한 도청 앞에 어린 아이가 있었다.
누구도 믿지 않을 거란 생각에 40년 동안 마음에 묻어둔 기억은 영상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이동춘/목포과학대 교수 : "그 아이의 모습이 눈을 감으면 선하죠. 왜 생각이 안 나겠습니까. 어떻게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왜 궁금하지 않겠어요."]
외신 기자 '노먼 소프'가 촬영한 사진에도 아이의 모습은 어렴풋하게 등장합니다.
이 아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갔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11042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