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50만명이 학살된 1965년 인도네시아 공산당 탄압에 영국 정보기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서버>는 최근 공개된 영국 외교부 문서를 통해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고 17일 보도했다. 1965년부터 이듬해까지 진행된 인도네시아 군부와 민간에 의한 학살로 적게 잡아 50만명, 많게는 30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국은 1963년 자국의 옛 식민지들을 묶은 말레이시아연방이 출범할 때 인도네시아를 이끌던 수카르노가 신식민주의라며 반발하자 그에 대한 비밀공작에 착수했다.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말레이연방의 탄생은 영국 제국주의가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라고 봤다. 인도네시아는 국경에서 말레이시아 쪽과 소규모 충돌을 일으켰고, 영국은 말레이연방을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선전 공작에는 소련 등 공산 진영에 대응하는 선전과 공작을 담당하는 영국 외무부 산하 정보조사국이 나섰다. 인도네시아 주재 영국대사 앤드루 길크리스트의 제안으로 당시 말레이연방에 속해 있던 싱가포르에 만들어진 선전 공작 조직 ‘남아시아 모니터링단’은 수카르노 정권에 대한 흑색선전에 착수했고, 수카르노를 지지하는 인도네시아 공산당도 핵심 표적이 됐다. 영국 요원들은 인도네시아인 망명자들과 말레이인들을 동원해 선전물을 만들어 인도네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배포했다. 선전물은 영국 본국에서 검토해 승인했지만, 영국이 배후에 있다는 점을 숨기려고 홍콩, 도쿄, 마닐라를 발송처로 삼았다.
영국의 공작은 1965년 9월 장성 6명을 살해한 인도네시아군 좌파 장교들의 쿠데타 시도로 결정적 기회를 맞았다.
수하르토가 이끄는 군부가 이를 진압하면서 권력을 장악해가기 시작했다.
영국 정보조사국의 선전 활동은 인도네시아 공산당과 그 지지자들에 대한 “영원한 제거”를 선동하고 나섰다.
정보조사국은 선전물 특별판을 발행하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도 “공산주의라는 암을 국가라는 몸에서 제거하자”며 공산주의자 척결을 촉구했다.
수하르토의 군대와 반공 선전에 고무된 민간 조직 등은 그해 10월부터 인도네시아 전역에 걸쳐 공산당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그에 동조한다고 간주되는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영국 정보조사국 선전물은 좌파 장교들의 쿠데타 시도 때 여성 공산당원 100명이 한 장성의 성기를 도려내고 살해했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기도 했다.
대학살을 통해 기반을 다진 수하르토는 2년 뒤 인도네시아의 2대 대통령에 올라 32년간의 독재를 시작한다.
매우 광범위하고 끔찍한 학살에 대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조차 “20세기 최악의 집단학살들 중 하나”로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했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비유하기도 했다.
영국 버밍엄대의 스콧 루카스 교수는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냉전 시기에 영국 정보조사국과 흑색선전이 영국의 대외 정책과 해외 공작에 얼마나 중심적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고 <옵서버>에 말했다.
http://n.news.naver.com/article/028/0002564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