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있던 그 날로부터 2년이 지난 세월호 2주기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세월호 얘기에 지쳤다는 분들도 있고, 정치 이용하지 말라, 진상 규명해야한다 등등 의견이 많죠.
모든 의견이 다 개인의 생각이기 때문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아픔을 매도하여 이용하는 사람들이죠.
그런 모든 것을 떠나 오늘은 그 아이들, 어른들 사망한 모든 희생자들 추모하는 날이었으면 합니다.
그와 함께 세월호 변호사라고 불리는 박주민 변호사를 소개할까 합니다.
닉네임을 "사람이먼저다"라고 한 이유는 사실 쓰레빠닷컴에 가입 안하고 눈팅만 1여년을 하다가,
어떤 참여를 해볼까해서 입니다.
정치 얘기를 하기에는 그 지식이 좀 얕은 편이라;;;;ㅎㅎ
(쓰레빠뉴스가 가장 많은 분들이 보는거 같아서 써보고 싶기도 했어요ㅎ)
본론으로 들어가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차장을 지냈던 박주민 변호사는 올해 1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1973년생으로 서울 출신인 박 변호사는 밀양 송전탑 피해 주민과 제주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당한 시민들을 대변해왔고,
최근 2년여 간은 세월호 유가족 법률 대리인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박 변호사는 2009년 야간집회금지 헌법 불합치 판결, 2011년 차벽 위헌판결을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들어 빈번해진 경찰의 차벽, 불법 채증, 인권침해에 적극 대응해온 시민권 전문 법률 전문가입니다.
그런 그가 얼마전 4월 13일 총선에서 당선이 됐지요.
4월 13일 20대 총선에서 서울 은평갑에 출마해 당선된 세월호 변호사 더민주 박주민 당선인은 14일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찾아 당선 후 첫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총선 개표 결과 박 당선인은 54.9%를 얻어 40.9%를 얻은 뉴라이트 출신 새누리당 최홍재 후보를 따돌리며 당선됐습니다.
최 후보는 박 당선인을 겨냥해 “세월호 점령군”이라는 막말 비난을 쏟아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전 박 당선인이 합동분향소에 등장하자마자 일제히 박수를 치며 그를 환영했습니다.
박 당선인을 에워싸고 서로 안아주며 격려하거나 연달아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박 당선인은 “평상시에는 사진 안 찍었냐”며 농담을 던졌습니다.
주위에서는 박 당선인을 향해 “이제 (국회) 의원님이야, 의원님”이라며 환호했습니다.
감격에 찬 목소리로 “거리의 변호사가 국회에 입성을 다 하네”라고 한 반응도 나왔습니다.
한 유가족은 새로 제작된 노란리본 배지를 박 당선인의 왼쪽 가슴에 달아주며 “우리가 만든 의원이야”라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합동분향소 내에 마련된 유가족 대기실에서도 박 당선인을 향한 뜨거운 격려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어떻게 예전(총선 출마 전)보다 얼굴이 더 상했냐. 이제 좀 쉬어라. 잠 좀 푹 자”라며 걱정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박주민 변호사를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그런 가운데 김광진 의원의 SNS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됩니다.
박주민 당선자의 선거기간 운전수가 세월호 김관홍 잠수사였다는 얘기와 인형탈을 쓴 선거운동원이 영석이 아버지라는 얘기.
영석이 아버지는 세월호 희생자 고 오영석 학생의 아버지 오병환씨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자진해서 그의 당선을 오랫동안 도아왔다는 겁니다.
인형탈 쓰신 세 분 모두 세월호 유가족입니다.
그리고 어제 커뮤니티에 퍼진 박주민 변호사 당선 비하인드 스토리가 오마이뉴스 발입니다.
'세월호 변호사', '거리의 변호사' 박주민(더불어민주당 서울 은평갑) 당선인의 4·13 총선 당선 뒷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선거일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전략공천 돼 쉽지 않은 상황이었죠. 하지만 큰 표차로 당선돼 세간을 놀라게 했습니다. 유가족들을 비롯해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도움이 컸다고 합니다. 박주민 당선인은 15일 오전 오마이TV '팟짱'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분들이 자원봉사자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도 드러내지 않으셨어요.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인형 탈을 쓰신 영석 아버님도... 아버님인지 몰랐어요. 쉬는 시간에 누가 제 어깨를 두드리시길래 인사를 드렸죠. 그리고 (인형 탈을) 벗으니까 영석 아버님이셨죠. 많은 감동을 받았죠. 경민이 어머님도 도라에몽 탈을 쓰시고..." 2년 전 세월호 희생자를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김관홍 잠수사도 "뭐 좀 도울 일이 없느냐"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박주민 후보가 이동할 때 쓰는 차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운전했다고 합니다. 박주민 당선인의 선거를 도운 최일곤 전 국회 보좌관이 쓴 총선 뒷이야기를 전제합니다. 모든 선거운동이 끝나고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리던 4월 13일 오전 2시경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편집자말] |
1. 그를 처음 만난 건 2년전 여름이다. 박주민... 이름만 들어봤던 사람이다. 처음 봤을 때 변호사라고는 생각되지
며칠 뒤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변호사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서야 그가 박주민 변호사인 걸 알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인 얼마 전에야 그가 명문대 출신의 잘나가던 로펌 변호사였다는 걸 알았다.
2. 2년 전 여름, 세월호 국정조사가 여야의 대립으로 증인심문도 못하고 막을 내리자 특별법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의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며 시간이 흐르던 중... 특별법이 졸속으로 합의되었다는
"안 그래도 힘든 유가족들은 세상을 바꾸려고 저렇게 힘들게 싸우는데, 당신네들! 너무하는거 아닙니까?"
나는 할 말이 없어 그냥 "미안합니다" 했다.
매일 그는 유가족의 곁을 지켰다. 날이 갈수록 초췌해지는 것은 그때 그곳에 있던 분들 모두가 같았다.
며칠이 지나도 그날 화가 나서 내게 따지던 그의 목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3. 그래서였을까?
얼마 전 출마하려는데 좀 도와달라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그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나의 기우였다. 그는 잘 해오고 있다.
은평에 오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가게문을 닫고 선거일까지 돕겠다고
심심치 않게 늦은 시간에 사무실 전화벨이 울린다. 원래 늦은 시간 캠프로 걸려오는
해외에서 후원금을 냈는데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후원회 통장에는 1만 원, 2만 원, 3만 원,
더 가슴이 아픈 것은 매일 조용히 캠프에 나와 묵묵히 일하는 유가족들을 볼 때였다.
영석이 엄마는 아침 일찍 나와 밀걸레 질을 하며 청소를 했다.
영석이 아버지는 투표독려 운동을 하기 위해 아침부터 길거리에 서 있었다.
박주민은 자신을 위해 인형탈을 쓰고 춤을 추는 영석이 아버지를 보면서 가슴 아파했다.
그런 영석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박주민을 보면서 나도 가슴이 아팠다.
자원봉사를 온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내가 여기서 거론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후보 어깨가 구부정하다며 한마디씩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사실 그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난 아침부터 잔소리를 해야 했다. 하기 싫은 일이지만 해야 했다.
6. 나는 그가 정치권에 들어온 이후 매일 상처 받았다는 걸 안다.
그런 박주민과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치유되는 것 같았다.
오늘 밤, 그 결과가 어떻든 나는 박주민과 그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행복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세월호 지킴이로 불립니다.
자신의 법률적 지식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데 아낌없이 쓰는 사람입니다.
그는 늘 정의를 위해 싸워왔고 고통받는 서민의 친구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국회에서 보여줄 모습이 기대가 됩니다.
세월호가 인양되면, 그 실제 현장을 보게되면, 다시 한번 눈물로 가슴이 채워질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사그러들고 유가족들에게 부정적인 여론마저 형성되는 상황에서 아픈 가슴, 추모하는 마음은 이어졌으면 합니다.
"나 하나 들어간다고 정치가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최소한 국민의 눈물을 외면하는 정치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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