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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때를 살고 있다.

  • 작성자: 로마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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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101176
  • 2016.03.02

 비지스의 홀리데이입니다. BGM으로 플레이 하시고 읽으시면 더 와 닿으실듯

모바일

https://youtu.be/dJmRdE3WBgE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이 사회는 너희처럼 큰소리치는 놈들이 망쳐 놓은 거다!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고, 돈 없는게 죄다! 나는 돈 없고 빽 없는 놈이라 이렇게 된 거다! 

도둑놈?범죄자는 바로 너희 같은 놈들인데.... 바로 너부터 죽여버리겠다!” 

사정없이 퍼붓는 폭언과 총부리를 거머쥔 지강헌의 눈빛은 살기로 싸늘하게 빛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북가좌동 골목의 현장에는 최재진과 인파, 경찰이 뒤섞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탈주범들의 어머니, 애인, 가족 등이 밖에서 자수를 애타게 호소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집 안쪽에서는 지강헌이 가장 좋아했다고 하는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핏 창문을 통해 탈주범들과 인질의 모습이 보였다. 지강헌과 안광술, 한의철, 강영일 등 네 명의 탈주범들은 눈에 핏발이 선 살기등등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권총과 칼로 인질인 고씨의 딸을 위협하며 경찰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인질로 잡힌 고씨의 딸은 두려움과 공포에 사색이 된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고 죽겠다! 영등포 교도소에서 죽지 못한 게 한이다 ‘有錢無罪, 無錢有罪’ 우리나라 법이 이렇다!”

탈주범 가운데 주범격인 지강헌이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있고, 내 할말 다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 세상에 마지막으로 시를 한편 남기겠다. 내 유언을 한마디로 줄이면 나는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었던 염세주의자이다!”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며 절규하는 그의 울부짖음 뒤로 <홀리데이>가 마치 장송곡처럼 흘러 나왔다.

 

 

 

 

지강헌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거리로 나선 지강헌에게 배운 것이라고는 도둑질밖에 없었다. 

도둑질로 생계를 유지하다 경찰에 붙잡혀 처벌을 받고 나면 어떻게든 바르게 살아보려 했지만 기술도, 자격도 없다 보니 변변한 직업 한번 가져본 적이 없고, 바른 길로 이끌어줄 어른도 주위에 없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시인’이 되고 싶었던 지강헌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를 포함해 시간이 있을 때마다 책을 읽었고, 시상이 떠오를 때면 습작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 지강헌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80년에 제정된 ‘사회보호법’이었다. 

 

상습 범죄자 등 ‘불순한’ 사회악으로부터 선량한 국민과 사회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법은 ‘유사한 죄로 2회 이상 실형을 받고 그 형기의 합계가 3년 이상인 자가 다시 유사한 죄를 저질렀을 경우’ 등 상습성이 인정될 때 장기간 보호 감호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당시는 서슬 퍼런 군사 독재 시절이었고, 지강헌 역시 삼청교육대와 사회보호법 등 범죄자와 불량배들을 겨냥한 철퇴에 대해서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그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1988년, 온 나라가 올림픽 개최의 감격과 흥분에 휩싸여 있던 그때, 남의 집에 들어가 5백56만원을 절취한 뒤 도주하다 붙잡힌 지강헌에게 내려진 형량은 징역 7년에 보호 감호 10년, 도합 17년이었다. 17년이라니! 지강헌은 눈앞이 캄캄하고 앞길이 막막했다. 당시에는 지강헌처럼 ‘사회보호법의 날벼락’을 맞는 재범자가 많았다.

 

지강헌 등 당시 사회보호법의 적용을 받은 범죄자들의 절망감을 더욱 증폭시킨 것은 같은 시기, 1988년에 터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부패 사건’이었다. 형이 대통령이던 시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전경환의 뇌물 수수와 각종 인사 개입, 횡령 등 범죄 행각에 대한 풍문과 폭로, 비판이 거세게 일던 끝에 전두환의 후임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한 뒤 새 정권의 부담을 덜기 위해 그를 사법 처리한 것이다.

 

전경환은 공식적으로 그가 총재로 있던 새마을운동협회의 공금 73억6천만원을 횡령하고, 새마을신문사의 수익금에 대한 10억원의 탈세 그리고 4억1천7백만원을 수수하고 저지른 불법 이권 개입 등 일곱 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항간에는 전경환의 횡령 액수가 6백억원에 육박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런데 천문학적인 액수의 횡령과 탈세, 뇌물 수수 등의 중대 범죄를 저지른 전경환에게 내려진 형량은 징역 7년에 벌금 22억원과 추징금 9억원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곧 감형과 사면이 이루어지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전경환은 수감된 지 3년 만인 1991년 6월 가석방되었고, 이듬해 1월 대통령 특사로 사면 복권되었다. 이 사건은 철권 독재 통치로 국민의 숨통을 조이던 전두환 군사 정권이 권력을 이용해 자신과 측근, 가족들의 탐욕을 채우느라 국고를 축냈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는 신호탄이었다. 또한,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권력이나 돈이 있으면 쉽게 풀려난다는 속설이 입증되면서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다.

 

1988년 10월8일, 서울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 25명을 태운 법무부 호송 차량은 충남 공주교도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의례적인 재소자 이감이었다. 호송을 담당한 교도관들은 언제나처럼 이감 대상 재소자들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수갑을 채운 뒤 무기 소지 여부 확인 등 검색을 실시한 후 한 명씩 차례로 호송 차량에 탑승시키고 잠금 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교도관들이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평소 재소자 이감 때와는 다른 점이 둘 있었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인 재소자들 사이에 전경환 부패 사건과 그에 대한 가벼운 형량이 공통의 화제로 대두되면서 그보다 훨씬 가벼운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처벌은 훨씬 더 무겁게 받았다며 억울해하는 이들 사이의 교감과 연대 의식이 형성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또한, 형량에 덧붙여진 기나긴 보호 감호 기간을 버텨낼 자신이 없어 모든 것을 걸고 필사의 탈주를 준비해온 재소자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강헌 등 탈주를 준비하던 이들은 교도소 식당이나 작업장 등에서 주은 쇠붙이 등을 오랜 시간 갈고 손질해 머리카락 안에 감출 수 있을 정도로 가는 특수 도구를 만들어 감방 안에 보관 중이던 간장통과 콜라 병 안에 감춰두고 있었고, 공주교도소로 이감되는 기회를 노렸다.

 

순조롭게 도로를 달리던 호송 차량에서 갑작스런 소동이 일어났다. 호송 교도관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지강헌 등 일부 죄수들이 몰래 숨겨둔 도구를 이용해 수갑을 풀고 다른 죄수들의 수갑도 풀어준 뒤 서로 눈빛을 맞춰 교도관을 공격하고 집단 탈주를 감행한 것이었다.

 

결박이 풀린 죄수들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호송 차량은 멈출 수밖에 없었고, 이중 삼중으로 잠긴 출입문마저 열렸다. 자유와 감금의 갈림길, 25명 중 12명은 ‘위태롭고 불안한 자유’를 향해 탈주를 감행했지만 나머지 13명은 ‘안정되고 안전한 감금’을 택했다.

 

호송 차량에서 탈주한 12명 중 7명은 추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거나 고향집을 찾던 중에 붙잡히거나 자수를 하면서 길지 않은 자유에 종지부를 찍었다. 조기에 체포되지 않은 다섯 명 중 지강헌 등 네 명은 교도관에게서 탈취한 권총을 들고 서울 시내 가정집 여러 곳을 돌며 절도와 강도를 일삼다가 탈주 일주일 만인 10월15일 밤 9시40분쯤에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있는 고 아무개씨 집에 침입해 고씨 가족을 인질로 잡게 된다.

 

지강헌 일당의 집단 강도 및 인질극에 동참하지 않은 김길호는 홀로 도주해 숨어지내다 탈주한 지 1년 9개월 만인 1990년 7월1일 경찰에 검거되었다.

 

인질극을 벌인 4인조는 가장 나이가 많은 지강헌(35세)을 중심으로 20대 청년인 안광술(22세), 강영일(21세), 한의철(20세)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시 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잘 알려져 있던 ‘흉악 탈주범’들이 침입해 공포에 사로잡혔던 고씨 가족은 침착하게 순응하며 긴장을 완화시켰다.

 

그 덕에 탈주 인질범들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 마치 친구나 친척 집에 온 듯 편안하게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고 밀린 잠을 자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 이들의 태도가 바뀔지 모르고 궁지에 몰린 탈주범들이 가족을 해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 아버지 고씨가 다음 날인 16일 새벽 4시, 자신을 감시하던 인질범이 잠에 빠져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집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뒤 인근 파출소로 달려가 신고했다.

 

이미 최고도의 비상경계령하에 대기 중이던 경찰 1천여 명이 곧바로 출동해 북가좌동 주택가 좁은 골목을 완전히 에워쌌다. 아버지 고씨가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 인질범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새벽 4시40분, 아버지를 제외한 고씨 가족 전체를 인질로 잡은 집 안의 지강헌 일당과 집을 완전히 에워싼 1천여 명의 집 밖 경찰들 사이에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 시작되었다.

 

1988년 당시만 해도 한국 경찰에는 ‘인질 협상’ 전문가도 없었고 매뉴얼도 없었다. 경험 많은 베테랑 형사와 계급 높은 고위 경찰 간부가 오직 상식과 감정에 의존해 지강헌 일당의 투항을 종용하고 설득하거나 호소하는 ‘일방적 협상 시도’와 지강헌 일당의 저항과 반발, 돌발 행동이 이어지는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후 지강헌 일당은 마치 테러리스트처럼 자신들의 주장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해달라는 요구를 하게 되고, 경찰은 그 요구를 수용했다. 몰려든 방송사의 카메라와 마이크는 사상 초유의 ‘인질극 생중계’를 하게 되었고 갑자기 ‘거물’ 취급을 받게 된 인질범들은 공명심과 과시욕이 고조된 가운데 탈주극을 벌이게 된 원인인 억울함과 절망감이 뒤섞이면서 정제되지 않은 말을 마구 쏟아냈다.


 

모바일

https://youtu.be/dAsu2eOAnq8

 

그 가운데 지강헌이 자신의 삶에 대해 늘어놓은 독백, 특히 ‘시인’을 꿈꿨다는 이야기 등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강영일이 동생에게 전해달라며 쓴 편지에 언급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어구가 이 사건 전체를 대표하는 표현이 되면서 유행어가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오늘날까지,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은 죄를 저질러도 벌을 받지 않고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은 작은 실수와 잘못에도 벌받고 전과자가 되는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우리 사법 제도를 풍자하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10월16일 정오(12시)쯤이 되었을 때 지강헌은 일행 중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강영일에게 ‘밖에 나가서 경찰이 약속한 도주용 승합차가 준비되었는지 확인해보라’고 지시했다. 밖에 나온 강영일이 승합차가 준비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지강헌은 땅바닥을 향해 총을 쏘며 강영일에게 자수를 권유했다.

 

끝까지 함께하겠다며 자수하기를 거부하던 강영일은 결국 지강헌의 뜻을 받아들여 자수하게 되고, 네 명의 일당 중 유일하게 살아남는 사람이 된다. 그 사이 안광술과 한의철은 지강헌에게서 총을 가져간 뒤 차례로 자살했다.

 

인질극을 벌이는 동안 인질인 고씨 가족을 해치지 않았던 지강헌 일당을 신뢰하고 이들에게 연민을 느꼈던 고씨의 딸은 비극을 막기 위해 경찰의 강제 진압을 만류하며 시간을 끌고 인질범들을 달래고 설득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두 공범이 자살한 뒤 자포자기 심정이 된 지강헌은 경찰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미국 팝그룹 비지스의 노래 <홀리데이>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이 전달해준 <홀리데이> 노래를 크게 틀고 독백을 하던 지강헌은 깨진 유리창 조각을 들고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고, 그 순간 경찰특공대가 전격적으로 진입해 총으로 지강헌의 다리를 쏴 자살을 저지했다.

 

하지만 무릎을 관통한 총알이 복부마저 관통해 지강헌은 과다 출혈에 이은 쇼크에 빠지게 된다. 대기 중이던 응급 구조 차량으로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지강헌은 결국 과다 출혈로 숨지게 된다.

 

이렇게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끝난 직후 가장 큰 사건이었던 지강헌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도 그가 주장했고 외쳤던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의 범죄 그리고 인질극이 절대 잘한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저말은 아마 후세에도 잊혀지지 않는 발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칼럼 및 기사는 커뮤니티 쓰레빠닷컴에서 선정된 회원들이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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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달고나님의 댓글

  • 쓰레빠  달고나
  • SNS 보내기
  • 이제와서 명언으로 기억되지만 당지 저 사람 자체는 흉악범이죠.
0

덕배님의 댓글

  • 쓰레빠  덕배
  • SNS 보내기
  • 그당시도 명언이었음.
    지금도 흉악범이고
0

indocoffee님의 댓글

  • 쓰레빠  indocoffee
  • SNS 보내기
  •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0

cloudy님의 댓글

  • 쓰레빠  cloudy
  • SNS 보내기
  • 우리나라 범죄자 중 가장 유명한 말을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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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알고싶다님의 댓글

  • 쓰레빠  그것이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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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까지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공감되는 말로 쓰인다는 말이 우리나라 법이 얼마나 가진자에게 치중하고 있는 지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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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빠님의 댓글

  • 쓰레빠  스레빠
  • SNS 보내기
  • 미래가 희망적이고, 현실이 그럭저럭 살만하면 흘러간 과거따위는 돌아보지 않는다.
    계속 과거를 상기하고 과거의 말에 동감하는 이뉴는 현실이 그럭저럭도 안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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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님의 댓글

  • 쓰레빠  근대화
  • SNS 보내기
  • 사회는 그대로.... 국민은 목소리가 커져, 투표는 똑바로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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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e님의 댓글

  • 쓰레빠  달팽e
  • SNS 보내기
  • 잘 봤습니다. 명언(???)을 남겼지만 미화되서는 안될 인물이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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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비우자님의 댓글

  • 쓰레빠  마음을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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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보호법은 사실 지금 필요한거 아닌가요? 재범자에게 가중처벌을 내리는... 물론 저 당시에는 독재를 위해 사용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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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님의 댓글

  • 쓰레빠  불휘
  • SNS 보내기
  • 얼마저 응팔 다시보기로 보다가 지강헌 사건이 나왔는데 이런 사건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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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타령님의 댓글

  • 쓰레빠  우주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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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려서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하루종일 생방송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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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남주님의 댓글

  • 쓰레빠  쾌남주
  • SNS 보내기
  •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자나 재벌가들은 처벌을 덜 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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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내쉬탈얌님의 댓글

  • 쓰레빠  딱내쉬탈얌
  • SNS 보내기
  • 어젠가? 라면 훔치다가 걸린 사람이 국가기밀 판 인간보다, 마약한 인간보다 형이 더 긴 갑오브쓰레빠를 본터라 더 와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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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일님의 댓글

  • 쓰레빠  나종일
  • SNS 보내기
  • 지강헌이 내가 아는 여자애 삼촌 이라고 영화개봉전에  가족회의 하면서 너의 삼촌이 저사람이라고 알려줬다네요..
     대마빨다가 잡혀간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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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intta님의 댓글

  • 쓰레빠  jjintta
  • SNS 보내기
  • 그래도 인질들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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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낭자님의 댓글

  • 쓰레빠  훨훨낭자
  • SNS 보내기
  • 좀 이해가 안가는게 어떻게 애비란 사람이 가족들을 버리고 혼자 신고하러 갔을까요? 신고하러 갔다고 가족들을 다 죽이면 어쩌려고... 너무 큰 도박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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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뽕박봉님의 댓글

  • 쓰레빠  박뽕박봉
  • SNS 보내기
  •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놓고 읽으니 음악이 참 암울하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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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룽다님의 댓글

  • 쓰레빠  키다리룽다
  • SNS 보내기
  • 홀리데이는 인정사정볼것 없다에서도 잘 어울리던데... 뜬금포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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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뤼님의 댓글

  • 쓰레빠  껄뤼
  • SNS 보내기
  • 잘 봤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지강헌 사건이란건 알았는데 이런건지는 처음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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