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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김정일의 첨예했던 갈등과 사망 의혹

  • 작성자: 그것이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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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100162
  • 2016.08.07

 

 

 

 

 

 

김정일은 1969년부터 대학 졸업을 앞 둔 젊은 젊은이들로 구성된 홍위병식 3대혁명소조를 전국에 조직하고 그 주된 활동을 지방관료들의 부정부패에 초점을 맞춥니다. 

 

3대혁명소조로 지방권력 비리와 연계된 중앙 간부들을 하나 둘 제거하면서 김정일의 권력은 점점 커져 1973년 당 조직 부 부장 겸 3대혁명소조 총책임자로 됩니다. 

 

김정일은 주체철학을 내세워 김일성 주의로 1973년부터 당 절대주의 정치를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김일성은 내각정치를 했고, 그 탓에 대부분 최 측근들이 내각에 분포돼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북한 노동당이란 구 소련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지역당 수준이어서 전후 인민경제 복구 권한을 가진 내각의 지위가 더 높았던 것입니다. 

 

사회안전성 소속이던 정치감찰조직을 국가보위 부로 독립시켜 당 조직지도부 직속에 둔 것도 바로 그 시기였습니다. 

 

김정일은 온 사회의 김일성 주의 실현은 조직력과 선전이 필수라며 당 조직 부와 당 선전 부를 급 부상시킵니다. 

 

때마침 1976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의 주범인 강청이 구금되면서 김정일의 당 제일주의 노선은 더더욱 탄력을 받아 북한은 졸지에 당적 영도에만 의존하는 절름발이 국가가 돼 버립니다. 

 

아버지가 효도만한 충성이 없다고 착각하는 사이 아들은 카세트 보고서를 시작으로 유일 비준시스템을 구축하게 됩니다. 

 

하여 1980년 초반에는 김일성 종합 대학 동창생들로 구성된 당 조직지도부 안에 인사권, 당 생활지도권, 검열 권, 수령경호 권, 제의서 종합 권을 가진 사실상의 김정일 유일지도체제를 구축하게 됩니다. 

 

1981년에는 빨치산 출신 자녀들을 아예 중앙당에 받지 말도록 당 조직지도부 내부 인사원칙까지 만들게 됩니다. 

 

그때부터 동지를 잃은 김일성은 권력도 잃어 말년에 인민에게 보여지는 대외 성 현지시찰과 외교권력 밖에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마저도 수령 경호 권을 가진 당 조직지도부에 꽉 막혀 근접경호가 아닌 근접감시 상황에서 가능한 권력이었습니다. 

 

북한이 1980년 10월에 열렸던 6차 당 대회 이후 2004년까지 20년 넘게 단 한 번도 당 대회가 열리지 않은 것도 

 

김정일이 김일성의 당 총 비서 권력인 정치국회의 소집 권한 자체를 무력화시킨 결과 당 총 비서 권력이 공황상태에 빠져서였습니다. 

 

그때부터 북한의 권력구조는 아버지가 명예직이고 아들이 실권이듯 공식지위의 순리보다 김정일의 신임도에 따라 대내적 권력이 인정되는 이중구조로 고착됐습니다. 

 

즉 아버지 세대의 고령의 인물들에게는 명예직의 공개직함을 주고, 인사권이나 정책결정과 같은 대내실권은 김정일의 동창생들에게 집중됩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하고 나서 뜬금없이 “혁명1세들에 대한 존경은 공산주의자들의 숭고한 도덕”이라는 논문을 노동신문을 통해 세상에 발표한 것도 

 

바로 김일성과 그 동지들인 혁명1세대들과의 권력투쟁에서 얻은 권력찬탈의 위선을 감추기 위해서였습니다.

 

 

 

 

"(김정일이) 달리는 야전 열차 안에서 심근경색으로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서거했다." 

 

19일 나온 북한의 김정일 사망 공식 발표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생활 습관 등에 비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에선 "북한이 말 못 할 속사정 때문에 김정일의 사망 장소나 시각을 조작했을 가능성"까지 제기할 정도다. 

 

관련 의문점을 정리해 본다.

 

 

 

◆ '야행성' 김정일, 영하 12도 아침에 열차를 탔나?

 

군 관계자는 "지난 17일 아침 평양 기온이 섭씨 영하 12도였다"며 "심근경색은 외부 기온에 민감한데 김정일 의료진이 정상이라면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김정일의 외부 활동을 말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특히 김정일은 주로 밤에 활동하고 낮 12시쯤에야 일어나는 '야행성'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영하 12도의 아침에 열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는 북한 발표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세훈 국정원장도 20일 국회에 출석, "17일 김정일이 어디로 가려고 했느냐"는 의원들 질문에 "(김정일) 차량(열차)이 움직인 흔적이 없다"는 말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져 이런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 수백명이 타는 전용 열차에서 비밀 유지가 됐나?

 

우리 정보 당국은 김정일 사망 사실을 그의 극소수 측근만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보 당국에 따르면 김정일은 현지 지도를 나갈 때 20량 정도의 전용 열차에 의료진·호위병사 등 수행원 수백명을 데리고 다닌다.

 

특히 20량 중 4량은 '병원 열차'다. 

 

북한 소식통은 "김정일이 열차에서 사망했다면 의료진이 총동원됐을 것이고, 갑자기 열차를 돌리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라며 

 

"그런 상황을 목격한 눈이 수백 개인데 50시간 넘게 비밀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이냐"고 했다. 

 

김정일이 탄 열차 이동에 앞서 경호 요원이 탄 선행 열차가 선로 안전 등을 점검하는 게 관행이다.

 

 

 

◆ 집에서 자다가 죽었나?

 

북한 매체가 보도한 김정일의 마지막 동선(動線)은 지난 15일 평양 대형마트였다. 

 

이후 열차를 타고 평양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김정일은 평양 관저나 집무실 등에서 휴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이달에만 공개 활동을 9차례나 했기 때문에 피로가 쌓였을 수 있다.

 

한 소식통은 "김정일이 침실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비서들이 심장 쇼크 사실을 몰랐거나 늦게 파악했을 수 있다"고 했다. 

 

원세훈 원장은 이날 "평양 자택에서 죽은 거 아니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첩보 수준의 얘기이고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 북한은 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 당국으로선 김정일이 북한 주민을 위해 마지막까지 열심히 일하다가 죽었다는 것을 홍보하는 데 '열차 안 사망'만큼 좋은 소재도 없을 것"이라며 

 

"그냥 집 안에서 편안하게 죽었다는 것과 일하다가 죽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라고 했다.

 

한 탈북자는 "김일성 때와 달리 김정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존경심은 바닥 수준"이라며 

 

"북한 정권 입장에선 김정일 사망 상황을 윤색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국책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만약 열차에서 사망한 게 아닌 것으로 드러날 때는 북한 당국이 감수해야 하는 신뢰 추락도 상당하다"며 

 

"북한이 사망 장소나 시각 등을 조작해서 얻는 이익보다 손해가 큰 거 아니냐"고 했다.

 

 

 

 

◆ 왜 사망 후 이틀이 지나서야 발표 했나

 

북한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17일 오전에 사망했다. 

 

그러나 북한 방송이 이를 공식화해 발표한 시점은 51시간 30분이 흐른 19일 정오였다. 

 

17일에는 오히려 평양에 새로 문을 연 대형마트에서 김 위원장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현지지도에 나선 모습을 방송에 내보냈다. 

 

이를 두고 일부 대북 전문가들은 "폐쇄적인 국가에서 이틀 만에 소식이 발표된 것은 빠른 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망 발표 시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 왜 이른 아침부터 열차에 올랐나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오전 8시 30분에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급병으로 서거했다"고 했다. 

 

발표대로라면 김 위원장은 적어도 한 시간 전에는 열차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뇌졸중 환자였다. 

 

그런 데다 당시 평양의 기온이 영하 12도로 떨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발표한 사망 시간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 17일 · 야전열차 사망이 분명한가

 

북한은 김 위원장의 사망 시각을 17일, 장소는 '달리는' 야전열차였다고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 군과 국가정보원이 직접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원세훈 국정원장은 20일 "(17일 오전 당시) 김정일 전용 열차는 평양 룡성역에 서 있었다"며 대기열차 사망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는 타살 의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또 "첩보 수준"이라고 전제했지만 사망 시각에 대해서도 16일 사망설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 밖에도 관저 사망 의혹이 나오는 등 사망 시점과 당시 환경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 왜 부검 사실을 곧바로 알렸나

 

중국 신화통신은 19일 김 위원장의 사망 보도 이후 하루 전 그의 부검이 있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북한도 그 보도 직후 병리해부사실을 당일에 곧바로 공지했다. 

 

이를 두고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일부에선 절대 권력자를 부검한 사실 자체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또 이를 대대적으로 공개한 데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이 김 위원장의 사인(死因)을 두고 각종 설이 난무할 우려에 대비, 부검 사실을 먼저 밝혀 음모론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의료계에는 김 위원장의 사망 시간을 늦게 발표한 것에 대해 심근 경색의 특성상 법의학적으로 사망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내기 어려워서 시간이 더 걸렸을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경우 바로 시신을 부검하면 오히려 사인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것이 의료계 측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북한 매체의 발표에서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 강행군을 이어가다가 열차에서 순직했다는 대목에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008년 가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김 위원장의 건강관리가 북한 당국의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북한 당국이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을 전혀 눈치를 못챘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망한 이후 북한 조선중앙TV는 사망 소식을 발표하면서 "병리해부검사에서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었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시신을 부검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망 원인에 대한 각종 설이 난무할 소지가 많다는 점을 스스로 보여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김정일 사망 원인 김일성, 김정일 사망 공통점

 

김정일 사망, 심장마비로 김정일 사망. 

 

69세로 사망한 김정일 위원장은 사망 원인이 급성 심근경색에 의한 것으로 추정, 김정일 사망 추정 시간은 오전 8시30분. 

 

특이한 점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와 비슷하다는 것. 

 

1994년 82세로 사망한 김일성 주석은 동맥경화로 치료를 받던 중 계속된 과로로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의 사망 시간은 새벽 2시쯤으로 전해진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모두 급성심근경색으로 사인이 같고, 급성심근경색 질환이 가장 많이 발병하는 새벽과 아침 시간에 사망한 점도 비슷하다.

 

12월19일 북한은 특별방송으로 김정일 위원장 사망 소식을 전했다. 

 

북한 방송 보도는 "김정일 위원장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하여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애석하게 열차에서 서거하셨다"고 사망 소식을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위원장의 부검결과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중증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됐다"고 밝혔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구급치료 대책이 이뤄졌으나 결국 사망했다고 밝혔다.

 

유명 병원 내과 교수는 "김정일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등의 요인에 가족력까지 있어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위험도가 무척 높은 상황이었다"면서 

 

"급격한 기온저하, 국제·경제·사회적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도 사망 원인을 높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이들 가족이 모두 유사한 질환을 가졌을 가족력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전에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뇌졸중 역시 심근경색 등과 연관이 있다. 

 

김정일이 심근경색 등으로 쓰러진 원인은 무리한 일정도 한몫 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최근 대외활동을 무리한 일정으로 강행해 왔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정권을 물려받았으나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수많은 건강 이상설과 사망설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2009년부터 다시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며 건강이상설을 무마하려 애썼다.

 

또한,

 

중국은 김정일의 김정은 세습을 인정하지 않아 김정일을 끝까지 괴롭혔다. 

 

김정일 개인적으로는 중국이 동맹국이 아니라 적으로 돌변한 악마의 모습으로까지 비춰졌을 일이다. 

 

중국은 김정일 부자를 사실상 사지로 내모는 ‘열중 쉬어’ 자세로 북한을 응시만 했다.

 

김정일은 이런 가운데 주적으로 설정한 미국과의 양자접촉(독대)을 끝없이 원해왔다. 

 

체면을 내던지고 이른바 ‘통미봉남’을 올곧게 추진할 정도로 북한은 미국과 단 둘이 마주 앉으려 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할 당시에도 북한은 중국과의 수뇌부 교류가 단절될 정도로 극도의 갈등상태에 있었다. 

 

1992년 있은 한·중 수교가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 당시 김일성은 김정일의 최근 행보와 똑같이 미국과 끈질기게 접촉하면서까지 개혁·개방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밀어붙였다.

 

당시 김일성은 미국 전대통령 지미카터를 통해 징검다리를 놓으려 했다. 

 

아울러 한국의 김영삼 전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단 하루 앞두고 사망했다. 

 

중국은 이런 독자행동을 하는 김일성에게 오랑캐와 상대하느냐며 크게 못마땅해 했고, 결국 김일성과 중국 지도부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마찰음을 냈다. 

 

김일성 사후 외교가에서는 그의 죽음에 석연찮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이 논란이 됐었다.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는 이처럼 중국과 극도의 냉각관계가 고조됐을 때 사망하는 ‘필연 같은 우연’으로 생을 마감했다. 

 

중국은 북한이 이른바 ‘캥버루 베이비’(의존구조)를 벗어나고자 할 때 북한 지도부에 예외없이 극도의 냉철한 행보를 취해왔다.

 

부자가 죽이고 죽인다는 스토리에는 언제가 중국이 자리하고 있다.

 


 

 

출처

 http://news.tf.co.kr/read/ptoday/99521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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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27 비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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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네스탑님의 댓글

  • 쓰레빠  네스탑
  • SNS 보내기
  • 김진명이 저 음모론을 기반으로 만든 소설이 <신의 죽음>
0

전설의뉴스님의 댓글

  • 쓰레빠  전설의뉴스
  • SNS 보내기
  • 군대있을때 정훈장교가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암살당했을거라고.. 너무나도 의심쩍은 상황들이 많았다고 했었는데ㅋ
0

아이엔지님의 댓글

  • 쓰레빠  아이엔지
  • SNS 보내기
  • 꽤 설득력이 있네요
0

hansmail님의 댓글

  • 쓰레빠  hansmail
  • SNS 보내기
  • 잘 봤슴돠~~
0

Comet님의 댓글

  • 쓰레빠  Co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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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은이가 지아비 보고 배웠구만
0

꿈매니아님의 댓글

  • 쓰레빠  꿈매니아
  • SNS 보내기
  • 김일성 죽던날 우리모두 전쟁이 나는줄 알았었죠.
0

pjs51375님의 댓글

  • 쓰레빠  pjs51375
  • SNS 보내기
  • 그애비에 그아들~
1

물개님의 댓글

  • 쓰레빠  물개
  • SNS 보내기
  • 군 장악했던 김정일이랑 별장 진입한 특수부대 빼고 다 사망
0

ABCDE님의 댓글

  • 쓰레빠  ABCDE
  • SNS 보내기
  • 내림 정권의 폐해
0

다그닥따그닥님의 댓글

  • 쓰레빠  다그닥따그닥
  • SNS 보내기
  • 이 안죽여도 자연스럽게 자기한테 패권이 넘어오는 상황에 굳이 의심스럽게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영향력 대문에?
0

장도리님의 댓글

  • 쓰레빠  장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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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ㄴ북한사람들이 김일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면 아예 이해가 안가는건 아님
0

임한나님의 댓글

  • 쓰레빠  임한나
  • SNS 보내기
  • 가장 큰 이익을 취한자를 의심하라
1

manoofin님의 댓글

  • 쓰레빠  manoofin
  • SNS 보내기
  • 당시에 저걸 삐라로 북에 좀 뿌리지ㅋ
0

아리가또데쓰님의 댓글

  • 쓰레빠  아리가또데쓰
  • SNS 보내기
  • 김일성 때는 정말 남북관계가 의외로 좋아질뻔했는데 완전 황당이었죠
0

폭행몬스터님의 댓글

  • 쓰레빠  폭행몬스터
  • SNS 보내기
  • 당시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설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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