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야당 대표들이 나와서 토론하는걸 봤습니다. 참 뭐라고 할말이 없드라구요.
그러던 중 조선시대 붕당에 대한 생각이 나서 몇자 적어 볼까 합니다.
붕당은 조선시대 학맥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형성된 집단을 말합니다. 현재로 따지면 여/야당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붕당을 크게 나누면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집니다. 여기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나누어지죠.
그렇게 계속 분쟁이 지속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른후에 북인은 퇴출되고, 남인만 남습니다. 광해군을 폐단하는데 서인이 큰힘을 보탰고, 명분론을 중시한 서인이 서서히 기반을 다집니다.
인조, 효종, 현종의 예송논쟁전까지 서인이 주도세력으로 현재의 여당의 파워를 가졌고, 야당성향인 남인이 공존했습니다. 예전 동인의 북인이 독점으로 인한 폭망을 교훈 삼아 서인은 남인들과 함께 상호 비판적 공존체제를 유지하니다.
하지만 예송논쟁이 시작되면서 두 집단의 공존도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 예송논쟁을 설명하자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예송이란 예학에서 시비를 가리는 것을 뜻하고, 예학이란 유교적 관혼상제의 행사진행에 관한 학문입니다. 즉 예송논쟁은 상 중에 상복을 입는 기간에 대한 논쟁입니다.
더 깊게 들어가면 너무 역사학적 이야기라 중간 생략을 하고, 차남 효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자의 대비가 입을 상복의 기간 때문에 서인과 남인의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인은 명분론을 따지는 집단이다 보니 현 왕이 짱이다. 그러니 대비는 1년만 입자. 남인은 주리론을 따지는집단이다 보니 원래 왕이 될 장남이다. 그러니 3년을 입어야 된다. 란 논리입니다.
이 결과 1차 예송논쟁은 서인이 승리하여 1년만 입습니다. 2차 예송논쟁때에는 의외로 남인이 승리합니다. 그렇게 주도세력이 남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두 집단은 서로 물고 뜯고 난리를 계속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영조가 왕위에 등극합니다. 영조는 전 왕인 경종이 후손이 없어서 왕이 된 왕입니다. 이때 나온게 소론과 노론의 당쟁싸움입니다. 워낙 치열한 이 싸움으로 영조는 항상 목숨에 위협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붕당정치의 패에 대한 논하며 우리가 늘 알던 탕평책을 운영합니다. 그렇게 붕당정치의 막을 내리기 시작한거죠.
아무리 짧게 적어도 조선시대 붕당정치는 어렵고 복잡합니다. 그러더 중 인터넷 서핑으로 재미있는걸 발견했습니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붕당정치를 쏙 들어오게 할수 있는 전개도(???) 정도가 되겠네요. ^^
여/야당이 그저 반대를 위한 정당이 되어버린 지금. 과거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란걸 알길 바라는 마음에서 올렸습니다. ^^
정확한 붕당정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충 들어 맞는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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