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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타이타닉 침몰 그 무서운 음모론 2탄

  • 작성자: 미스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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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1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폴 워버그, 넬슨 알드리히, 프랭크 밴더립,

J.P 모건사의 헨리 데이비슨, 찰스 노튼, 벤자민 스트롱>

 

그들은 당시 유럽은행을 장악한 데 이어 예수회에 소속된 유대인 자본가들이

민간자본으로 미연방준비은행을 설립해 누구의 간섭도 없이 무한한 자금을

공급받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계획에 당시 최초의 백만장자이자 세계제일의

거부로 불리던 존 제이콥 아스트로의 자손인 존 제이콥 아스트로 IV,

역시 백만장자인 철강업자 벤자민 구겐하임, 뉴욕의 유명한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던 이사도라 스트라우스와 같은 돈과 영향력 모두를 가진

몇몇 극렬한 반대에 부딪힌 상태였습니다.

 

<왼쪽부터 구겐하임, 아스트로, 스트라우스 부부>

 

이때 화이트 스타라인사를 소유하고 있던 J. P 모건은 타이타닉호에

이들 유대인 거부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출항식에 초대했으며,

(당시 이들이 보유했던 재산의 가치가 지금의 10조를 넘어간다고 합니다)

같이 승선하기로 했던 J. P. 모건과 예수회 소속 자본가들은 갑작스레 승선을 취소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수년간 예수회였던 J. P. 모건을 위해 일함과 함께 예수회를 돕는

세속 동조자이자 성직자는 아니었으나 예수회의 임시 보좌주교였던

에드워드 스미스가 배의 선장을 맡게 됩니다.

 

이후 탑승하고 있던 당시 휴가 중인 아일랜드의 가장 막강한 예수회원이자

로마 예수회 고위층과 직접 선이 닿는 프란시스 부라우니 신부가 갑판에서

스미스 선장에게 예수회의 명령을 하달하고는 다음날 아일랜드 퀸스타운

해변에 마지막 정박을 한 타이타닉호에서 뉴욕까지 여행할 수 있는 뱃삯을

내겠다고 제안한 부유한 미국인의 호의를 거절하고는 하선하기에 이릅니다.

 

 <프란시스 브라우니 신부와 타이타닉호에서 그가 찍은 맨 우측의 스미스 선장>

 

한편, 달도 없는 밤을 쌍안경도 없이 망루에서 육안으로 관측했던 망지기들을 모를 리 없던

스미스 선장은 그날 받았던 다섯 건의 빙산 경고를 무시한 채 마치 순교를 결심한 듯

지뢰밭과 같은 빙산지대를 당시 타이타닉호의 전속력이었던 22노트로 전진시킵니다.

 

결국, 24년간을 항해했던 바닷길에서 마치 지뢰밭에서 뛰는 것과 같은 항해술을

보여주며 거대한 빙산과 충돌하기에 이르고 구명정을 내려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명령을 기다리는 조수들에게 화이트 스타라인의 최고참 답지 않게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모습을 보인 끝에야 구명정을 내리도록 지시합니다.

 

또, 근처를 지나가는 화물선들게 조난을 알리기 위해 붉은색의 조명탄을

쏘아 올려야 했지만, 당시 타이타닉호에 있던 세 개의 조명탄은 모두 백색이었으며

할 수 없이 쏜 이 조명탄은 마치 타이타닉호의 첫 항해를 자축하는 기념으로

밖에는 안 보이는 상황이 연출되고 맙니다.

 

그리고 예수회의 바람대로 그들의 계획을 탐탐 치 않게 여겼던 거부들 모두와

심지어 당시 탑승해있던 일반시민과 교인들까지도 타이타닉호와 함께

깊은 곳으로 가라앉게 되었고 록펠러 금융제국의 넬슨 알드리히가

상원의원의 의장직을 맡던 1913년 법안이 통과되며 정치권과 재무장관,

그리고 대통령을 포함한 그 어떤 이의 간섭과 명령도 받지 않는

초 국가단체이자 개인회사인 연방준비은행이 탄생하게 됩니다.

 

<미국 내 통용되는 지폐 발권은행인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그렇다면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 음모론은 어느 정도의 견고한 진실을 포함하고 있을까요?

 

어쨌든 이후 미국 경제공황의 확산을 저지하는 자금력을 보여주는 J. P. 모건, 석유왕이 되는 록펠러,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이 되는 로스차일드가는 계속해서 부흥의 길을 걷게 됩니다.

 

 

독일 잠수함 관련 음모론

 

 

 

 

침몰 후 첫 구명정이 내려가면서 절망에 빠지게 되는 스미스 선장과 선원들에게 불과

10km 떨어진 곳에서 배의 불빛을 발견해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조명신호와 구조신호를

보내지만 아무런 답신도 없는 선박은 희망의 불빛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으며,

구명정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근처를 지나는 배의 탐조등을 봤다고 주장을 하며

당시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던 캘리포니안호였을 거라는 이야기에 16km 내에 정체불명의

배가 새벽 2시까지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캘리포니안호의 삼등 항해사 그로브스와

갑판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특히, 캘리포니안호의 로드 선장은 죽을 때까지 당시 이 정체불명의

배를 타이타닉호가 아니었으며 타이타닉호와 자신의 배 사이에

또 다른 배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당시 캘리포니안호의 선장이었던 로드>

 

또, 청문회에서 질문받은 타이타닉호의 일부 선원들과 승객들이 빙산에 부딪힌 후

배 내부에서 폭발음이 들렸으며 어떤 항해사는 네 방의 포성을 들었다는 증언을 합니다.

 

그렇다면 제1차 세계대전을 목전에 두었던 당시, U보트의 디자인을 완성한 독일 해군이

북대서양으로 U보트를 정찰하게 했으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와을

구조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들 스스로 침몰상황 자체를 만든 것은 아닐까요?

 

한편, 타이타닉호 침몰 3년 후인 1915년 독일의 U보트는 어뢰를 발사해 영국의

루시타니아호를 격침했음이 확실함에도 사실을 부인하기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음모론은 단순히 당시 혼란 속에서 사실을 확대해서

받아들였던 일부 승객과 선원들의 착각이었거나, 이 일 때문에 업무태만을

이유로 선장의 자리를 잃게 되는 로드 선장의 책임회피성 발언이었을까요? 

 

 

J. P. 모건과 화이트 스타라인, 그리고 올림픽호

 

 

 

 

 

<화이트 스타라인사의 사장이었던 브루스 이즈메(좌)와 실질적인 오너였던 J. P. 모건(우)>

 

타이타닉호의 건조 전 화이트 스타라인사의 메인은 당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올림피호였습니다.

 

올림픽호는 타이타닉호의 자매선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며 타이타닉호를

포함해 화이트 스타라인사의 3대 호화선으로 불리지만, 1911년 6월 첫 출항

직후의 사고와 9월 순양함 호크와 충돌로 말미암은 손상으로 11월 말까지 운행이

불가능해지는가 하면 1912년 2월 복귀와 동시에 해상에서 장애물과 충돌해

추진기가 떨어져 나가며 8개월 동안 있었던 많은 사고로 보험을 받을 수 없음은

물론 막대한 수리비가 들어가게 생겼으며 설상가상으로 이틀 후에는 승객 1명이

낙하해 행방불명되는 사건으로 화이트 스타라인의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립니다.

 

또, 몇 번의 사고로 당시의 조선기술 때문에 내구성이 현격히 떨어지며

완성으로부터 1년도 채 안 돼 무보험 상태는 물론 배상 책임까지

겪으며 화이트 스타라인의 경영 부진에 일등공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화이트 스타라인의 소유주였던 J. P. 모건은, 똑같다고 할 정도로

비슷한 외관의 두 배를 이용해 고액의 보험금을 받을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좌측의 타이타닉호와 우측의 올림피호>

 

그리하여 당시 불침선으로 불리며 3년간의 건조기간이 걸린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출항 직전 올림픽호와 나란히 수리를 받게 되었으며, 이때 도장 부분이 서로 바뀌게 되면서

완성 당시 피로연이 있었던 타이타닉호의 창의 수와 출항했을 때의 창의 수가 다른 것,

그리고 출항 직후부터 기울고 있었던 바꿔치기 된 타이타닉호를 눈치챈 것은 극소수뿐이었습니다.

 

 

 

<타이타닉호와 올림픽호의 투샷>

 

그리고 1911년 6월, 9월, 1912년 2월 사고를 당했던 당시 올림픽호의 사고책임자였던

선장이자 알코올중독이라는 소문이 있던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항해를 남겨두었던

스미스 선장을 당당히 초호화 여객선의 첫 항해 선장으로 임명합니다.

 

당연히 승선예정이었던 모건은 병을 핑계로 타이타닉호에 승선하지 않았으며,

그의 지인들도 모두 승선 직전 취소로 배에 타지 않았습니다.

(당시 모건은 타이타닉호에 승선하는 대신 이집트 여행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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