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으로 널리 알려진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성서와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고백한 비밀스러운 편지가 최초로 공개된다.
뉴욕 경매회사 '본햄스(Bonhams)'에 따르면 다윈의 성서와 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담긴 편지글이 오는 21일 경매에 붙여질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개인적인, 특히 종교적인 물음에는 함구하던 다윈이었기에 그의 개인적 종교 신념이 담긴 편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다윈은 1856년 진화론을 쓰기 시작하였다. 완성되기 전에 앨프리드 월리스로부터 자기의 학설과 똑같은 취지의 논문이 온 것을 보고 놀랐으나, 친구인 후커와 라이엘의 배려로 1858년에 린네 학회 총회에서 월리스의 논문과 함께 발표하였다.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하여 생물 진화의 사실을 제시하고, '자연선택설'을 수립하였다.
그에 의하면 어떤 형태의 생물이 오랜 세월동안 환경에 맞추어서 서서히 모습을 변화해간다는 것이었다. 그의 발언 중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는 부분은 당시 유럽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기독교가 그때까지 유럽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이었고 다윈의 견해들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는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냐 아니냐를 놓고 영국 사회 각계 인사들이 모여 논쟁을 벌였다. 이 토론회에 다윈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찰스 라이엘, 앨프리드 월리스, 토머스 헉슬리 등이 나왔고, 기독교 측으로는 영국 성공회 주교인 윌버포스가 나왔다. 논쟁은 생중계되었고, 논쟁 후반에 윌버포스가 진화론 지지 진영을 향해 그대의 할아버지쪽 선조가 원숭이냐, 할머니쪽 선조가 원숭이냐 라는 질문을 던졌고, 헉슬리는 부도덕한 인간을 할아버지라 하느니 정직한 원숭이를 할아버지라 하겠다고 응수하여 논쟁은 종결되었다.
이후 진화론의 찬반을 놓고 격렬한 논쟁의 장이 되었다. 그의 발표는 생물학자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 신학자들의 맹렬한 반대를 받았다. 그 후 약 10년 동안 확고한 기반을 닦게 되어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차츰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현대 생물학은 변이에 관한 그의 견해의 대부분을 부정하고 있으나, 생존 경쟁설은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동물학·식물학 및 인류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많은 저서를 남겼다. 저서로 <가축과 재배 식물의 변이> <인간의 유래> 등이 있다.
>다윈의 진화론 부정론
3분안에 설명하는 진화론이 과학적이지 않은 이유
모바일: https://youtu.be/q4g_WuWPu0s
진화론을 믿는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들이다. 그 중 일부 과학자는 진화 과정에서 신이 개입했다고 믿지만, 신의 개입을 믿지 않는 자들은 신은 존재하지만 세상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모든 것은 자연 법칙의 결과일 뿐이라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진화론이 순전히 데이터만을 가지고 설명되므로 진화론이 더 적합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입장들은 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 중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진화론 지지 과학자들은 생명은 어떤 다른 높은 존재의 간섭이나 개입 없이 전적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진화론은 자연과학으로 정의된다.
무신론이 사실이 되려면, 우주와 생명이 창조자 외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전에도 진화론과 같은 형식의 논리가 있었지만, 진화 과정에 대한 평이한 모델을 제시했던 것은 다윈이 처음이었다. 다윈은 한 때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했지만, 자신에게 일어났던 몇 비극적인 일들로 말미암아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을 저버렸다. 즉 진화론은 무신론자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다윈은 하나님의 존재를 반증하려는 목적은 없었지만, 진화론의 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즉 진화론은 무신론을 강조한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의 목적은 생명의 근원을 설명하는 데에 있지 않다고 하면서 신에 대한 존재를 거부한다. 즉 무신론적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진화론이 존재하게 된 이유라는 것이다.
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포기하거나,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가 젊었을 때 발표했던 이론들의 운명에 대해서 관심을 표현하였고, 종교적 모임에 소수의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을 찬성했다는 것이다. 주장되는 다윈의 철회/전향(recantation/conversion)은 다른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읽거나, 스스로 만들어서 가지게 된 장식(embellishments)이라는 것이다. 무어는 그러한 행위를 ‘거룩한 위조(holy fabrication)‘ 라고 부르고 있다.
아무튼 이번 다윈의 편지 공개로 기독교계는 물론 그를 아는 이들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윈은 아버지의 제안으로 캠브리지 그리스도의 대학에서 신학을 연구했다. 그가 함구함으로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을 주장했음에도 기독교 신앙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어왔다.
독실한 맥도모트가 자신이 다윈의 책을 읽고도 신약성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싶다며 "'신약성서를 믿느냐'는 질문에 '예 혹은 아니오'로 답해 달라"고 다윈에게 요청했다. 다윈의 의견을 신학 관련 지면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아직까지 다윈의 기독교 신앙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맥도모트가 그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1859년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을 출판한 이래 끊임없이 논란이 돼왔던 다윈의 종교관은 이번 편지 공개로 종지부를 찍게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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