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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악인은 맞지만 살펴봐야할 히틀러의 리더쉽

  • 작성자: 미스터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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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17536
  • 2015.10.03

 

 

- 카리스마 리더십 히틀러 -

대부분의사람들은 히틀러를 가리켜 독일의 독재자라 하기도 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의 핵심이라고도 말한다. 또한 수백만의 유태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살인자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이러한 말들은 모두가 히틀러란 인물에 대해서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일부분만을 말하는 것이다. 그에대해서 정확히 알고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판단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또한 배울 점에 대한 교훈도 얻지 못할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독일이 연합국의 발아래 짓밟히고 뒤이은 경제 공황으로 수천만의 독일인들이 일손을 놓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히틀러의연설은 진정으로 게르만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자신감속에서 나치의 붉은 깃발아래 독일인들을 뭉치게 했고 그의 명석함은 지지자들과 함께제3제국을 건설하고 빈틈없이 통치해 나갔다. 물론 히틀러의민족주의에 대한 잘못된 집착이 유럽을 피비린내 나는 수년간의 전쟁으로 내몰아 역사 앞에 커다란 범죄를 지었을 지라도 히틀러의 지도자로써의 자질은분명 한 시대를 풍미할 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이에 우리는 전형적인 카리스마 리더의 대표적 인물인 히틀러를통해 카리스마 리더십을 이해하고자 한다.

 

 

1. 히틀러의 리더십 분석

1) 히틀러의 리더십에 대한 전반적 이해

사회적 상황

그가 태어난오스트라아-헝가리 제국은 절대주의 국가로서 당시 민족문제로 고심하고 있었으며 독일인 귀족이 합스부르크왕가의 치하에서 권력을 독점하였고 관료, 군인, 대지주, 자본가, 교원, 지식인의대부분은 독일인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세력을 확장한 마자르인, 체고슬로바키아인, 폴란드인, 남슬라브인은 민족자치와 생활향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던 독일인 사이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특히 20세기초에는 독일인과 체코슬로바키아인 간에 격렬한 민족투쟁이 발생했다. 1914 8월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1918 11월 독일이 패배하였다. 이에 패전에따른 독일 군대의 해체, 유럽에서 독일 패권의 실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슬라브민족들의 독립 강화 상황이 일어났고 중 유럽으로부터 독일이 후퇴했으며 독일과 오스트리아의합병이 금지 되는 등의 사회적 혼란이 일고 있었다.

 

리더역할

- 지도자로써의 히틀러 -

역사 속의절대적 지도자들의 생활에 비해 히틀러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금욕적인 생활을 했고, 채식주의자였으며개인생활이 검소한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사치나 여성편력 또는 미식가로서의 기질은전혀 없었다. 오랫동안 결혼하지 않았지만 남성으로서는 정상적인 체질의 소유자였고 남성성과 동지애 전사적기질에 호소력까지 있어서 대중의 감정을 모으고 그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그의정치적 목적은 세계와 다시 싸우는 것이고 독일을 승리로 이끄는 것뿐이었다. 그는 기억력과 직관력이 뛰어났고, 사람 보는 눈이 있어서 우수한 인재를 적소에 배치하여 능력을 발휘시킬 줄 알았다. 그러나 특정 인물의 지나친 권력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2명 이상의인물에게 같은 일을 배당하여 충성 경쟁을 유발시켰다. 그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독일제국주의 극단적인 반영이었고그 자신은 세간의 평처럼 미친 사람도 성격 이상자도 아니었다.

 

조직의 구성원

- 대중적 지지

히틀러의점령정책은 매우 가혹했고 포로와 점령지 주민, 그리고 유대인을 강제노동에 동원하거나 강제수용소로 이송, 살해했다. 또한 독일 군은 점령지에서 물자를 무자비하게 탈취했고슬라브민족에게 자치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반나치 저항운동이 전 유럽에 걸쳐 전개되었지만 독일 내에서는히틀러의 이민족 억압 및 착취 정책에 대한 비난이 거의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독일의 주요지배계급은 전쟁 말기까지 히틀러의 전쟁수행에적극 협력했다. 구성원들은 히틀러의 리더십에 좋고 싫은 자신들의 의견을 중요시 한 것보다 자신의 과업의중요성을 높이 생각했고 이를 수행했다. 지도자를 지도자이게 할 수 있었던 구성원이었고 그들을 그렇게한 것도 히틀러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간단하게 독일 군대의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군대의 세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아채고 군대 본연의 힘과 자부심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 대가로 군대의 독립성과 자율성, 존엄과 양심까지 히틀러는 박탈해버렸지만 이 과정은 조금씩 단계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한 예로 뛰어난 리더십의지적인 활기와 창의력 말살시키기 위해 1920년 독일 참모대학을 폐쇄했으며 군대의 참모부서마저 없애버렸다.)

독일 내에서는 1944 7 20일히틀러의 암살을 기도한 반란조직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들은 극소수의 사회주의자와 종교인을 제외하고는 히틀러보다 더 반동적이어서 구체제로의 복귀를희망했다. 즉 독일에서 히틀러 반대세력은 나치가 멸망하는 날까지 극히 적었다.

 

- 조력자들

히틀러는개인 참모를 소중히 생각했고 이들은 단순히 일을 돕는 사람이라기 보다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어린시절 가정이나 학교에서 인간관계가 깊지 못했던 걸을 가만 하면 이들의 존재는 히틀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릴적 히틀러의 사상 정립에 큰 영향을 끼친 페추박사, 홍보선전 전문가 괴벨스, 반 나치세력 색출을 담당한 히믈러, 유명한 독일의 사상가 하이데거, 훗날 파시즘이란 사상으로 게르만 왕국 재건을 위해 동맹을 맺게 되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이르기 까지 그들은히틀러와 사상과 뜻을 같이 했으며 철저한 파시스트였다.

 

 

2) 이론을 통한 리더십의 전반적 이해

- 카리스마적 리더십 -

우리는 히틀러를변혁적인 리더십으로 보지 않고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보았다. 분명 히틀러는 독일과 세계를 변화 시켰다. 그리고 독일 국민들과 그 추종자들에게 민족주의로 뭉친 미래의 꿈을 보여주었다.그리고 어떤 일을 맞건 문제해결에 있어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구성원들에게개인적 배려나 지적 자극이 없었다. 오히려 특정 인물의 지나친 권력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2명 이상의 인물에게 같은 일을 배당해 충성경쟁을 유발시키는 등의 행동으로 볼 때 아랫사람을 신뢰하고 독려하지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히틀러를 변혁적 리더십이 아닌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보았다.

(변혁적 리더십-조직 내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로서 조직구성원들의 태도나 행동을 변화에 동참하게 할 수 있도록 이끄는 리더십이다. 하급자들에게 영감을 심어주거나 개개인의 성취욕구를 고취시켜 주며 문제해결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개인적노력을 고양시키는 사람의 리더십을 말함)

 

상황적합성 이론

- 리더십 스타일의 유형 분류: 히틀러는 총통이 독일의 운명을 홀로 개척하는 존재이며, 진정한국가지도자로서 국민과 국가에 군림할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려 애썼고, 정치에서는 굳은 의지와 직과, 신념이 이성적 판단이나 책임보다 중요한요소라고 보았다. 또한 총통으로서 자신의 임무는 게르만족의 구원과 독일을 정점으로 세계질서를 짜는데있다고 확신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과업지향적 리더로서 집약할 수 있으며 LPC(the Least Preferred Co-worder)점수가 낮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 이론에서는 리더의 스타일을 분류를 LPC점수로 이루어 지는데점수의 정도에 따라 과업지향적 리더와 관계지향적 리더로 분류할 수 있다.

 

- 리더십의 상황유형

과업구조: 1차 세계대전의 패전은유태인들의 배반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되었고, 패전과 이로 인한 영토의 상실로 독일국민은 굴욕감에 치를떨었다. 그것이 국민들 가운데 민족주의 풍조와 국내의 배반자나 전승국에 대한 복수심을 낳게 되었고 거기에 30년대 세게 대공항의 여파가 가세함으로써 독일 사회 전체가 파국적 타격을 입었다. 따라서 히틀러는 19세기 말엽에 일반적으로 공통되어 있던 반 유태주의, 백색인종지상주의와 반민족주의 사상을 기초로 나치를 만들고 중산계급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중적 기초를 이루었다.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 하사관 출신의 히틀러는자신을 깔보는 군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독일군부의 견해를 존중한과 동시에 독일 내 모든 산업과 종사자들에게 다가올 전쟁은 민, , , 전후방이 따로없는 총력전이 될 것이라고 하며 분발을 촉구했다. 또한 그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용납하지 않았다.

리더의 권력: 국가 수반으로 히틀러는대외정책과 군사전략에 독일이 배출한 역사상 그 어떤 외교관이나 탁월한 장군들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가 권을 잡은 30년대부터 45년 패망할 때까지 히틀러의 명령 한 마디에 전 독일이움직였다. 또한 히틀러의 견해는 국내정책과 전쟁계획을 수립하는데 의심의 여지없이 반영되었고 권위에 대하도전은 용납되지 않았다. 이것은 리더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경로-목표 이론

- 리더십 스타일의 유형 분류: 리더의 노력이 성과로 이루어지고 이러한 성과는 보상으로 나아가는 기대감과 유인성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되는 이론으로 리더의 주요기능을 부하들의과업성과에 대한 유의성을 높이고 과업성과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모든 상황적 조건을 조성함으로써 과업달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것으로 본다. 이 이론에서 설명하는 리더행동의 유형분류에서 히틀러는 주도적이며, 성취지향적리더임을 알 수 있다.

주도적 리더: 구조주도적 측면을 강조하는리더로써 부하들의 과업을 계획하고 구체화하여 그들을 적극적으로 지시, 조정해 나가는 리더십 스타일로이는 히틀러의 견해가 국내정책과 전쟁계획을 수립하는데 의심의 여지없이 반영되었고 권위에 대하 도전은 용납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성취지향적 리더: 높은 수준의 목표설정과 의욕적인 목표달성행동을 강조하면서부하들의 능력을 믿고 그들로부터 의욕적인 성취동기행동을 기대하는 리더십 스타일로 그는 당수로 수상 직에 오른 이래 대통령 사망 후 대통령직을 계승하고여세를 몰아 총통 직에 오른다. 이때부터 모든 정당은 해산되고 군통수권을 포함한 모든 권력은 히틀러를정점으로 한 나치당으로 집중된다.

히틀러의 효과적 리더십: 부하들이 자기의 능력을크게 지각하고 과업달성에 자신감을 가질수록 리더의 주도적 행동을 거부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히틀러는 종종 대중들 앞에서 신의 섭리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국민들을 우매하게 만들고 자신을 숭배자로부각시킴으로써 리더의 주도적 행동을 거부할 가능성을 차단했다.

과업환경적 요인: 부하의 과업 성격이비구조적일수록 주도적 리더가 적합하며 과업비용과 부하와의 일치성 문제에서, 상호간의 마찰이 있을 경우에도주도적 리더행동이 더 만족스럽다. 조직체 요소인 방침, 규율, 절차, 시간적 압박, 불확실성등은 과업환경에 영향을 주는데 전쟁과 같은 비상상황이나 시간적 압박이 클 때는 처음부터 치밀히 계획, 실행하는히틀러의 주도적 리더행동이 효과적인 리더십이었다.

 

수명주기 이론

-부하들의 성숙도에 따른효과적인 리더십 행복 분석으로 히틀러는 지시적 리더로서 과업지향성이 높고 관계지향성이 낮은 리더로써 일방적 의사전달과 리더중심의 의사결정이 내려진다. 이것은 부하들이 갖는 성숙수준이 가장 낮을 때 효과적인 것인데 당시 전쟁상황과 같은 비상시에는 히틀러의 리더십인주도적 리더행동이 효과적이라고 보여진다.

 

히틀러가 갖는 리더십의 특징

분명한 목표와 비전, 뚜렷한 사명감을 소유

히틀러는반 유태주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확고한 그의 세계관이었다. 그 당시 반 유태주의의 주장에 익숙해왔고 민족주의에 충만해 있는 독일국민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전주제였다. 그는 언제나 구체적인 유태인이라는하나의 형태에 모든 비난을 집중시켰고 그것은 효과적인 선전이 되었다. 또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게르만의힘을 하나로 뭉칠 사람은 오직 자신이고 자신만이 이 시대의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인류의 메시아로 묘사함으로써 신적인 지도자의모습을 독일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은 약육강식의 역사에서 세계를 제패할 유일한 민족임을내세웠고 이런 분위기를 타고 좀더 우월한 우리민족이 영토 적으로 좀더 넓게 살아야 하고 부족한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그들을 지배해야 한다는 민족우월주의라는사명감을 가지고 그걸 이뤄내기 위해 진취적으로 나갔다.

높은 자신감과 기풍을 소유

어린 시절병 악한데도 죽지 않았던 히틀러는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16바바리아연대의 경우 3600명 가운데 611이 생존하고 히틀러가속한 중대는 250명중 42명만이 생존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된다. 이런 정신적 영향으로 그는 자신이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고 그러한 자신감은 자기자신을메시아에 대비하여 동등한 관계라고 묘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신을 신으로 묘사함으로써 무 오류와 절대진리의 신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독일국민에게 각인 시켰고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히틀러는 자신감이 넘쳐 흘러다.

굳은 신념과 열정을 소유

히틀러는정치에서 굳은 의지와 직관, 신념이 이성적 판단이나 책임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고 강철 같은 의지와열렬한 믿음이 자신을 1인자로 올려준 일등공신이라고 보았다. 일찍이그는 자신의 임무는 세계의 질서를 다시 짜는데 있다고 확신했고 청사진을 제시했고 분발을 촉구하였다. 한야심가의 몽상처럼 여겨졌던 히틀러의 청사진은 그의 정치체제가 공고해지고 경제가 회복될수록 현실화되는 것처럼 보여지기 시작했고 차츰차츰 히틀러의계획이 진행되고 전세계에 독일 재무장을 선언하면서 오스트리아를 독일과 강제합병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독일 땅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승리를 계속 쟁취하자 패전 후 주눅 들어 있던 독일국민들은 환호했고 히틀러의 신화는이제 누구도 넘볼 수 없게 되었다.

탁월한 지배능력 소유

세계 열강지도자중 제3제국 총통인 히틀러만큼 전쟁에 깊이 개입하고 한 국가를 좌지우지한 인물은 없었다. 그의 명령 한마디에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며 그 누구도 의심의 여지없이 반영되었고 그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조금도용납되지 않았다. 히틀러는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으며 총통은 독일의 운명을 홀로 개척하는 존재이며진정한 국가지도자로서 국민과 국가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려 했다. 즉 카리스마적 리더의중요한 속성인 신적인 존재, 열망의 존재로 인식시키려 했다.

전술에 관한 높은 지식과 결단력 소유

히틀러는전쟁기간 동안 오랫동안의 집중력으로 수많은 군사서적들을 탐독했고 전쟁 사 이론과 군사기술적인 세부사항에 대한 놀라운 기억력으로 주변사람들을 깜짝놀라게 했다. 리더아운 기질을 서적을 통해 그는 습득했던 것이다. 또그러한 군사 기술적인 세부사항들은 적의 심리에 대한 고도의 이해력과 결합력에 의해 실전에 사용되었다. 기습적인전략과 전략적 대응을 예측하는 것, 생각지도 못한 전략들의 시도, 스투카급강하 폭격기에 끔찍한 효과를 내는 사이렌을 부착하자는 생각 등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를 자기 시대의가장 폭넓고 다양한 지식을 갖춘 군사 기술 전문가의 한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의초반의 승리는 책을 통해 길러진 지식과 결단력이 이루어 낸 것이다.

과업 달성에 대한 치밀함 소유

수상에 오른히틀러는 먼저 민주적인 공화국을 폭력에 기초한 독재국가로 만들어 버렸고 어떤 형태의 저항도 잔인하게 억압했다. 동맹자들을제거하고 자신의 정당 외의 모든 정당을 불허했으며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대통령 제도를 없애고 자신을 수상 겸 총통이라고 불렀다. 1933년부터 동유럽 정복을 계획하고 군대를 양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쟁의 정복사업은 시작하고 있었다. 모든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모든 독일민족국가들의 통합, 독일인을 위한생활공간 확보, 그리고 천년 제국의 건설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모든 것들은 그의 청사진을 이루기 위한 단계적이고 체계화된 계획이었다.

 

3) 리더십을 통한 히틀러의 업적

국내

히틀러는외교계, 경제계, 군부 요인들의 협력을 얻어 외교상의 성공을거두었고 경제의 재건과 번영을 이루었으며 군비를 확장하여 독일을 유럽에서 최강국으로 발전시켜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국내 업적은경제 부흥, 독재 정권확립, 유대인 박해로 요약된다. 더욱이 그는 실업문제에 있어서 독일 노동 전선이라는 강제 조직을 창립하여 실업률을 억제시키는 최초의 법률을 제정하였다. 국가는부채를 고려하지 않고 일자리를 조달하였고 자급자족의 경제, 물가와 임금을 동결하는데 기술적으로나 방법적으로성공했다. 1933년 실업자 수는 히틀러 집권 전의 약 1/3 수준인 400만으로 떨어졌다.

국외

국외 정치적으로히틀러는 강력하게 처신하여 전쟁을 치르지 않고 조약 위반과 강한 압박으로 놀라운 결과를 일구어 냈다. 동유럽약소국가는 물론 1차 대전 당시 엄청난 피의 희생으로도 성공하지 못했던 파리로의 진군도 6주 만에 이루었고 프랑스에 이어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스, 등이 단 몇 주 만에 항복했다. 그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많은 영토와 영향력을 발휘했다.

히틀러는전쟁의 형식과 도구, 무기와 장비를 신뢰하여 인간의 힘보다 무기의 성능이 승리를 좌우한다고 믿었다. 이에 전쟁 동안에 개발된 무기와 화학, 공학, 물리학의 진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2. 히틀러의 리더십 평가

1) 성공적 리더십 가능요인

시대적 요인

1929년 미국의 경제공항으로 미국의 자본에 의존하여 소생하던 독일 경제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극도의 혼란상태로 나라의 존립이어려운 사회적 배경 속에서 극복방안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나라를 재건하는 사업에 남아도는 인력을 군대나 공장으로 보내 실업난을 해결하려 노력했다. 이는 언변의 달인이자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소유자인 그가 모든 국민이 공황을 극복하고 질서를 회복하고자 바라던때에 맞추어 일어나서 호응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극도로 혼란한 상황에서 획일화된 정책이었지만 그런혼란을 규격화와 질서로 철저한 기준에 의한 통치 방법은 당시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던 국민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것이다.

성격적 요인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왕. 수상, 리더들은 후방에서 공격을 지도했다. 그래서 정보가 도달하는 데는 몇 시간이 지난 후였고 명령은 결정적인 순간이 지난 후에야 도달 되기 일 수였다. 따라서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는 전령의 임무가 중요하게 여겨졌고 군대 생활을 누구보다 모범적이게 충성하던히틀러는 이 임무를 근면하고, 용감하고 지칠 줄 모르고 잘 수행했다.전쟁 후에 제대한 그는 반 유태주의와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독일노동당에 입당하여 그 순간부터 정당 활동가로서 정력적이고 단호하며목표의식이 투철하게 일했다. 선전부장 히틀러는 우직한 당수를 감동시킬 정도의 근면함을 보여주었다.

뛰어난 언변

후방의 배반으로전쟁에 패했다고 생각한 군대는 이제 민족주의 성향의 고취에 앞장서려 했고 이런 목적으로 대중 연설가로 히틀러가 발탁되어 그의 언변을 입증해 주었다.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거기서 영감을 넣어 바그너 식의 주제의 발달을 즐겼고 모터가 추진되듯이 전진했다. 그에게 있어 연설은 마약과도 같은 희열과 만족감을 주었고 계속 새로이 갈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재능만을 신뢰하지 않고 세밀하게 전문적인 수단도 연구했다. 또한군중의 성격을 원래 여성적이라고 보아서 감정에 호소하여 전 독일인의 결집시키고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더욱이그는 교묘한 마취 술의 언변으로 청중과 연설자를 동일시하여 그가 치욕을 느낄 때면 청중도 치욕에 떨게 하는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천부적인 웅변술은 소수정당이었던 독일 노동당’, 소위 나치당을 2년 사이에 대 정당으로 발전시켰고 그의 연설은끊임없이 대중을 사로잡았으며 또한 당시 독일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과합세하여 독일 내에서 무시하지 못할 거물로서 성장하게 했다.

히틀러의 매력

방어의 여유를주지 않기 위해, 충격의 효과를 최대로 하기 위해 히틀러는 깜짝 쇼를 즐겼다. 순발력이 뛰어났으며 사람들이 초조와 불안에 지칠 때까지 결단을 늦추기도 하는 인물이었다. 추진력이 대단했으며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의의견을 2시간 이상을 논리 정연하게 피력할만한 능통한 능력이 있었고 가장 가까운 심복이나 애인에게까지언제나 최고결정권을 가진 한층 높은 자리에 있어서 그의 힘과 의지와 결단력, 권위를 상징하였다.

 

2) 실패한 리더십 가능 요인

- 패망의 원인 히틀러의 리더십-

히틀러는많은 책으로 이루어진 생각들로 행동의 원칙을 삼았고 자신의 단언을 확증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여기에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이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밀로 나갔다.이러한 지식들은 그의 명령을 효과적이게 하기보다 오히려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선이 어려워상황에 있을 때 불안한 그의 심정을 표현하듯 본부를 자주 옮겼는데 이에 중요한 정보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신경 쓰지 못한 체 정보가 버려지기일쑤였다. 참모들이 히틀러의 전략에 대해 객관성과 일관성이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을 때 그는 자신에 대한반발이라고 생각했고 명령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것은 적군의 저항 때문이 아니라 참모들의 무능과 불복종 탓으로 돌렸다.

그는 전투에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군의 급습이 시작되었을 때 히틀러는 전선에서 2000킬로미터나 떨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므로 그 결과 위기 상황에 적절한 대응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발생한 위기를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으면서도의사결정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세밀한 부분까지도 작전을 감독하려고 했다. 그가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게된 동기는 바로 그의 총통원칙이었다. 그는 총통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이것은 기술적 진보로 가능했고 이것이 오히려 불행을 안겨준 셈이다. 반면 연합군 분별 있는 개입즉 책임의 분담으로 철저하게 분담하였다. 예를 들어 처칠은 전투의 과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전선에 위기가 고조되면 간섭하지 않았다. 기술이 진보하여 보고를 받게 되어도 치열한 전선의 상황을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까지 전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평가들은만약 히틀러의 전쟁이 승리로 끝났다면 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세계의 영웅이 되었을 것이고 우리는역사시간에 나의 투쟁을 배워야 하는 결과를 초래했을지도모른다.

 

3) 히틀러와 처칠 비교

사상 최강의군사력으로 무장한 나치 독일이 영국 침략에 나서 런던 시가지를 공습하자 당시 총리였던 처칠은 시가를 문 채 태연히 거리를 활보했다고 한다. 떨고 있는 런던 시민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영국인들에게필요한 것은 무기나 탄약이 아니라 자신감과 사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두 라이벌인히틀러와 처칠은 상반된 리더십을 통해 진정한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리더십은 권위적인 리더십인 히틀러와 영감을 주는 리더십인 치칠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두 사람은 태생과교육환경, 성격까지 정반대였다.

처칠은 부유한귀족집안 출신의 부모의 후광으로 순탄하게 정치에 입문했지만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시골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혼자 힘을 권력의정점까지 올랐다. 또한 두 사람은 독일제국 건설, 대영제국건설이라는 비전을 공통으로 제시했지만 실상을 달랐다. 히틀러는 교묘하게 조성한 초인의 이미지와 카리스마를바탕으로 질투와 불만이라는 사악한 감정을 촉발시켜 국민들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처칠은 문명화된 가치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자신감과 용기, 희망을 갖도록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처칠은토론을 즐기며 조언을 받아들일 줄 알았지만 히틀러는 참모들을 억압했고 전황이 불리해지자 야전사령관의 지휘권을 일일이 간섭하며 사기를 떨어뜨렸다.

 

또 처질은오랜 친구이자 동료를 식품 부 차관에 기용했지만 그가 추문에 연루되자 가차없이 퇴진시킨 반면 히틀러는 능력이나 도덕성보다는 자신에 대한 충성심만으로사람을 판단했다. 처칠의 위대함은 자신에게 거역할 줄 아는 부하를 기용해 그들의 조언을 따랐던 점에서찾을 수 있는데 참모총장을 중용, 생산적 긴장관계를 통해 자신의 단점을 메웠다. 그러나 히틀러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자신의 충복에겐 관대했다. 히틀러는장악하려 들었고 처칠은 배분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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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주는마음개뿔님의 댓글

  • 쓰레빠  주는마음개뿔
  • SNS 보내기
  • 워낙 쓰레기짓을 해서 그렇지 리더쉽은 인정합니다.
0

머야머야머야님의 댓글

  • 쓰레빠  머야머야머야
  • SNS 보내기
  • 사실 독일인도 아닌데 독일을 통제하고 유럽까지 먹었으니 옛날이었으면 징기스칸이 되지 않았을까요?
0

되야지엄마님의 댓글

  • 쓰레빠  되야지엄마
  • SNS 보내기
  • 그래도 나쁜놈은 나쁜놈
0

플라타넝스님의 댓글

  • 쓰레빠  플라타넝스
  • SNS 보내기
  • 인종차별이 가장컸죠. 그리고 시대를 잘못 타고 났지오. 영토확장을 하던 시기가 아니었으니...
0

MoonRiver님의 댓글

  • 쓰레빠  MoonRiver
  • SNS 보내기
  • 색다른 시각이네요. 잘 봤습니다.
0

레전드에러님의 댓글

  • 쓰레빠  레전드에러
  • SNS 보내기
  • 결과론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중을 휘어잡긴 했으나 그 과정과 결과고 좋지 못한 리더십이었죠.
0

작두탄무당님의 댓글

  • 쓰레빠  작두탄무당
  • SNS 보내기
  • 개인적으로 현재 앙겔라 메리켈 총리의 반성과 책임감이 더 뛰어난 리더십이라고 봅니다.
0

니키타랑님의 댓글

  • 쓰레빠  니키타랑
  • SNS 보내기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리더십을 인정하지만 그 또한 독일인들의 분노를 건드린 리더십이라 결국에는 한계에 봉착했죠.
0

socialman님의 댓글

  • 쓰레빠  socialman
  • SNS 보내기
  • 저 탁월한 리더십으로 자신의 욕망이 아닌 나라발전에 기여했다면? 아마 독일이 현재의 미국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0

우는바위님의 댓글

  • 쓰레빠  우는바위
  • SNS 보내기
  • 집권당시에도 거대자본을 유대인에게 뺏긴 독일인들을 자극시키기에 유대인 말살정책이 들어맞았지만 시대가 그걸 용납하지 못했죠.
0

조나단G님의 댓글

  • 쓰레빠  조나단G
  • SNS 보내기
  • 결국 자신의 욕망으로 망한 케이스
0

AnaKonDa님의 댓글

  • 쓰레빠  AnaKonDa
  • SNS 보내기
  • 리더십 하나만 따진다면 역대급 리더십
0

THE나쁜남자님의 댓글

  • 쓰레빠  THE나쁜남자
  • SNS 보내기
  • 좋은글 잘 봤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저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지구 종말이 올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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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비행소녀님의 댓글

  • 쓰레빠  고공비행소녀
  • SNS 보내기
  • 히틀러는 국민을 모으는 리더십이 있었다면 현재 독일총리는 역사적 과오에 대한 책임있는 리더십을 보여주네요.
0

happyvirus님의 댓글

  • 쓰레빠  happyvirus
  • SNS 보내기
  • 잘 봤습니다. 독일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캐치해서 실행에 옮기는 리더십은 대단한거 같네요.
0

닝네임없다님의 댓글

  • 쓰레빠  닝네임없다
  • SNS 보내기
  • 저런 리더십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사용했기에 지금도 독일인들은 역사적 과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0

justicegirl님의 댓글

  • 쓰레빠  justicegirl
  • SNS 보내기
  • 근현대사에서 저정도로 영토를 확장한 인물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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