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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이야기를 방송했던 MBC 서프라이즈. 민족 반역자 빌리모프스키.

  • 작성자: Del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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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59510
  • 2015.11.24

 

 

 

1939년 9월 1일,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는 폴란드를 침공,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는 당시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독일 대표팀과 폴란드간의 축구경기를 개최하게 된다. 

나치 독일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점령한 후, 세계 축구계를 휘어 잡고 있던 축구 실력으로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알려 폴란드 지배를 정당화시키려고 독일과 폴란드 간의 축구경기를 열기로 하였다.

 

드디어 경기 날, 폴란드 선수들이 독일을 멋지게 꺾어주기를 바라는 수많은 폴란드 국민들이 경기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폴란드 선수들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다. 선수들은 경기장 입장 직전에 독일 장교로부터 만약 경기에서 이길 경우 선수들 전원 총살형이라는 협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선수들은 운동장 주변에 무장하고 있는 수백 명의 독일 병사들을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폴란드!'를 외치는 관중들의 함성 속에 경기기 시작되었다. 자신감에 넘친 독일 선수들은 종횡무진 운동장을 누비며 폴란드를 제압하였다. 연이어 독일이 두 골을 넣자 경기장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승리!'그것은 곧 죽음'이라는 생각이 폴란드 선수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한 폴란드 선수가 골문으로 무섭게 돌진해 나갔다. 그의 머릿속엔 '폴란드는 죽음보다 강하다'라는 생각이 가득차 있었다. 골문 근처에서 그는 힘껏 공을 차넣었다. '출렁'하고 그물이 흔들렸고 폴란드는 한 점을 만회하였다. 한 선수의 투지는 폴란드 선수 모두에게 전해져 후반전 경기는 더욱 격렬해졌다. 경기 종료 1분 전, 2대 2 동점인 상황에서 한 폴란드 선수가 공을 몰고 독일 선수를 제치며 달렸다. 옆에서 함께 달리던 동료 선수를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러자 그 선수도 함께 따라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경기장은 함성으로 떠나갈 듯 했다. 폴란드 선수가 승리점을 올려놓은 것이다. 감격에 젖은 얼굴로 운동장에 그대로 서 있던 선수들은 한발자욱씩 다가오는 독일 병사들을 당당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관중들의 함성에 파묻혀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선수들은 하나 둘씩 운동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1942년도에도 디나모키예프선수들도 나치와 축구경기를 했었는데, 위와 같은 결과가 나와, 모두 처형당했다.

 

-MBC서프라이즈,관련서적들 참조

 

 

 

 

 

 

 

그런데 서프라이즈 게시판에서 이런 글이 올라왔었습니다.

 

 

1939년 9월 1일,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는 폴란드를 침공,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습니다.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는 당시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독일 대표팀과 폴란드간의 축구경기를 개최하게
됩니다. 이 경기의 의도는 당시 폴란드 최고의 스포츠인 축구 시합에서 독일이 승리함으로써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폴란드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경기 전에 폴란드 선수들에게는
일부러 져주라는 협박을 한 뒤였습니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폴란드 선수들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0 - 2로 뒤진 채 전반전을 마치게 됩니다. 경기장의 폴란드 국민들은 자국 선수들의 무기력한 플레이에 실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한 폴란드 선수가 독일 진영으로 공을 몰고 돌진하는 모습과 동시에 폴란드 국민들은 환호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 선수가 찬 공은 자신의 나라를 짓밟은 나치 독일의 골문을 가르고 맙니다. 이 선수가 바로 1년 전인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폴란드 돌풍'을 일으키고 브라질전에서 4골을 넣으며 세계적인 선수로 떠오른 빌리코프스키였습니다.
그 동안 나치의 협박에 못 이겨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던 폴란드 선수들에게 빌리코프스키의 이
한 골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심어주게 됩니다. 이때부터 폴란드 선수들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결국 폴란드는 독일에 3 - 2로 역전승을 거두지만, 빌리코프스키를 비롯한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총살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용기와 희생은 폴란드 국민들의 희망이 되었으며, 폴란드 사람들에게 축구를 축구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이런 이야길 어렸을 적 만화로 본 것 같은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더 나이를 먹고 들어보니,'윗 글대로 당시 독일이 세계 최강의 전력(이것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이고 민족의 우수성을 인식시키려 경기를 열었다면 굳이 협박을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폴란드 선수들에게 위협하면서까지 패배를 종용할 필요가 있었겠느냐(기록을 살피다가 알게 된 것이지만 독일은 30년대들어 폴란드와 치룬 다섯번의 경기중 네번을 승리하고 한번을 비겼더군요.) '와 같은 의문이 들면서 그 신빙성이 의심스러워지더군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사실여부를 제 나름대로 확인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몇가지 오류가 드러나더군요.

윗 글 앞부분을 보면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는 당시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독일 대표팀과
폴란드간의 축구경기를 개최하게 됩니다."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에서부터 오류가 드러납니다.
독일축구협회 홈페이지를 뒤져본 결과,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후부터 종전시까지 독일과 폴란드
국가대표는 단 한차례도 경기를 치룬적이 없습니다. 개전 직전 치뤘던 마지막 경기가 1938년 9월 18일 Chemnitz 에서 벌어졌을 뿐이지요. (당시 독일이 4:1로 승, 빌리모프스키 출전)

또, 일부러 지라는 협박을 듣지않아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폴란드 돌풍' 을 일으키고 브라질전에서 4골을 넣으며 세계적인 선수로 떠오른 빌리코프스키를 비롯한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총살당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건 확실히 거짓말입니다.

윗 글에서 '빌리코프스키'라고 나오는 선수의 정확한 이름은 '빌리모프스키(Ernest Otton Wilimowski)'로 1938년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폴란드 대표로 22경기 21골, 독일 대표로 8경기 13골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지요. 이 선수는 1916년 6월 23일 태어나 1997년 8월 30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총살당했다는 선수가 1997년까지 살아있었다니? 게다가 빌리모프스키는
독일 대표경력도 있네요. 이러면 답이 나오죠. 빌리모프스키는 총살 당한게 아니라 폴란드가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된 이후 독일 대표가 되었다는 겁니다. 빌리모프스키는 독일 대표로 42년 11월 22일 슬로바키아전까지 뛰었는데 이후 전쟁이 격화되는 바람에 더이상 국가대표 경력을 쌓지 못했죠.(독일은 43년부터 49년까지 국가대표 경기를 갖지 않았음)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볼때, 이 이야기는 어떤 목적을 노린 사람이 없던 이야기를 지어낸 것 내지 이와 비슷했던 사건이 50년이 넘는 그동안의 세월을 거듭해오며 전해져내려오는 과정에서의 왜곡 혹은 변형의 결과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에 사는 우리로선 알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한가지 확실하고 분명한 건, 빌리모프스키가 관련된 위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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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BC 서프라이즈에 방영된 폴란드와 독일의 축구 


서프라이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법한 그리고 서프라이즈를 좋아하지 않아도 축구 팬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경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 경기는 폴란드와 나치 독일의 일명 '데스매치'입니다.

 

MBC의 유명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는 이 데스매치를 이렇게 방송했습니다.

 

"나치는 폴란드 선수들에게 일부러 경기에서 패배하라고 협박했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폴란드 선수단은 협박 때문에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그런데 후반전을 시작하면서 폴란드의 빌리모프스키가 골을 넣으며 폴란드 선수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고, 빌리모프스키의 골을 시작으로 폴란드는 나치에게 3-2로 승리한다. 이 경기 후 나치는 자신들이 폴란드 선수들에게 한 협박처럼 빌리모프스키를 비롯해 당시 폴란드의 선수들을 총살했다."

(MBC 서프라이즈에 방송된 것들을 요약했습니다)

 

다들 한 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꾸며낸 거짓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프라이즈 측에서 방영한 이야기 중 단 하나만 빼고 전부 맞지 않습니다.

 

그 단 하나는 빌리모프스키라는 선수가 존재했다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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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계대전 이전의 폴란드는? 

 

 

1.jpg

 

 

 

(1938년 폴란드 선수단)

 

일단 세계대전 이전의 폴란드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1930년대 폴란드는 강력한 팀이였습니다.

 

1938년 월드컵에서 레오니다스가 존재하는 브라질을 벼랑 끝까지 몰아 넣은 적이 있었던 팀이였습니다.

 

브라질과 폴란드의 경기는 1938년 월드컵 16강에서 열렸는데, 그 경기의 최종 스코어는 6-5 브라질의 승리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한 브라질의 레오니다스보다 더 주목받던 선수가 하나 있었는데, 그 선수가 무려 4골을 넣었던 폴란드의 빌리모프스키였습니다.

 

당시 폴란드를 대표하는 공격수였던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는 1938년 폴란드 대표팀으로 월드컵에 출전합니다.

 

그 대회에서 빌리모프스키는 4골을 넣었고, 득점 3위로 월드컵 브론즈슈에 오릅니다.

 

당시 폴란드는 빌리모프스키를 주축으로 프리드릭 쉐프케, 레너드 피온테크 등이 존재했던 강력한 팀이였습니다.

 

 

2.jpg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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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월드컵 이후


월드컵 이후 폴란드의 위상은 달라졌습니다.

 

유럽에서도 강호로 인정받고 시작했으며, 특히나 빌리모프스키 같은 주전 선수들은 뛰어난 선수로 인정받기 시작했죠.

 

이후 빌리모프스키를 주축으로 한 폴란드 대표팀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나치에 침공당하기 전인 8월 26일 헝가리와 경기를 치루었고, 이 경기는 빌리모프스키의 헤트트릭으로 4-2 폴란드가 승리합니다.

 

그 이후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했고, 폴란드의 암흑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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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거짓과 진실 그리고 빌리모프스키 


일단 거짓부터 이야기 하자면 독일과 폴란드는 데스매치를 치룬적이 없습니다.

 

즉, 독일과 폴란드는 죽음의 경기를 치룬적이 없고, 그 경기에서 전원 사살당한 적도 없습니다.

 

더불어 빌리모프스키의 골로 폴란드 의 선수들이 용기를 얻었다는 것 역시 거짓이죠.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하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근거는 정말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골을 넣었다는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는 1940년대에 사망한게 아니라 1997년 8월 30일날 사망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망한 곳은 독일의 칼스루헤입니다.

 

그렇다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

 

다 거짓이야기가 세상에 퍼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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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빌리모프스키의 이후 행보


3.jpg

 


(독일 유니폼을 입은 빌리모프스키)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빌리모프스키는 1997년 8월 30일 독일의 칼스루헤에서 사망합니다.

 

왜 폴란드인인 빌리모프스키는 독일에서 사망한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빌리모프스키는 민족 반역자였기 때문이죠.

 

다들 아시는 것처럼 나치는 폴란드를 점령합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하죠.

 

나치가 한창 사람들을 죽일 당시 나치는 폴란드 선수단 역시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는 생각보다 축구를 좋아했던 사람이였고, 한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시 히틀러는 독일을 최고의 축구 강국으로 만들길 원했고, 폴란드를 비롯해서 이후 자신들이 점령하는 모든 나라의 유명 선수들을

 

독일 사람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당시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빌리모프스키와 폴란드 선수들 역시 나치의 레이더망에 포착됩니다.

 

나치는 하나 둘 선수들을 잡아가기 시작했고, 자신들에게 굴복하지 않는 선수들은 죽입니다.

 

그런데 폴란드의 축구영웅인 빌리모프스키는 자신이 하고싶은 축구를 계속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독일의 획득합니다.

 

그리고 축구를 하면서 독일 경찰로 복무하기도 합니다.

 

독일 국적을 가지게 된 빌리모프스키는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독일 대표로 뛰기 시작합니다.

 

이후 빌리모프스키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서 독일의 축구 영웅이자 독일 최고의 슈퍼스타로 등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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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민족 반역자 빌리모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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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굴복한 빌리모프스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전쟁은 나치의 패배로 끝나게 됩니다.

 

민족 반역자이던 빌리모프스키는 전쟁 중에 나치의 선수로 열심히 뛰다가 나치가 패배하니 폴란드로 돌아갈 생각을 가집니다.

 

그런데 폴란드 정부에서는 빌리모프스키를 추방했고, '배신자', '반역자'라는 타이틀을 그에게 달아 줍니다.

 

이후 일설에 의하면, 1974년 독일 월드컵 기간에 빌리모프스키는 폴란드 대표팀을 만나려고 했으나 폴란드에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빌리모프스키는 평생을 나치 독일에 굴복한 폴란드인으로 살았고, 1997년 8월 30일 독일 칼스루헤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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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루자와 빌리모프스키

1938년 파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유일한 남미 참가국 브라질은 “승리를 위해 왔다”고 호언장담을 할 정도로 막강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비록 당시에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그늘에 가려 ‘넘버 3’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불참을 선언한 제3회 파리 월드컵에서 내심 우승을 기대하고 있었다.

브라질로서는 첫 경기를 유럽의 변방 폴란드와 치렀다. 폴란드는 국제 대회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팀이었다. 1924년 올림픽에서 헝가리에게 0-5로 패하며 국제무대에 선을 보인 폴란드는 칼루자(Józef Kałuża)라는 뛰어난 감독의 지휘 하에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하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술버릇으로 폴란드축구협회에 의해서 대표팀에서 제외당한 폴란드 최고의 스트라이커 빌리모프스키(Ernest Otton Wilimowski, 1916-1997)가 그 대회에 참가했었다면 금메달도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폴란드의 축구 역사상 초창기의 가장 위대한 선수로 인정받는 빌리모프스키는 1916년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지방에 있는 실레지엔에서 태어났다. 그는 17세의 나이로 국제대회에 처음 출전하였으며, 뛰어난 골감각을 높이 평가한 칼루자 감독에게 발탁되어 국가대표가 되어 폴란드 축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뛰어난 공헌을 하였다.

폴란드와 빌리모프스키 

빌리모프스키가 세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대회는 1938년 파리 월드컵이었고, 경기는 브라질과의 경기였다. 그의 화려한 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폴란드가 패한 경기였다.

브라질은 월드컵 첫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힘겨운 승리 끝에 6-5로 간신히 승리하였다. 브라질로서는 혼쭐이 난 경기였고, 폴란드로서는 아쉬운 한판이었다. 이 경기에서 폴란드의 빌리모프스키는 혼자서 네 골을 기록하였고, 나머지 한 골도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 빌리모프스키의 폴란드는 비록 한 경기만 치르고 탈락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인상적인 경기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월드컵이 끝나고 폴란드는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으며 꾸준히 실력 향상에 힘썼다. 그 와중에 벌어진 국제경기를 통해서 빌리모프스키는 팀이 승리할 때나 패할 때를 상관하지 않고 꾸준히 득점을 올리는 뛰어난 득점감각을 보여주었다.

죽기 전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스완송’에 맞게, 폴란드는 1939년 독일에 의해서 침공당하기 전인 8월 26일에, 마지막 국제경기를 헝가리와 치르게 되는데, 이 경기는 폴란드가 그 동안 보여준 수많은 국제경기 중에서 가장 화려한 경기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폴란드의 축구영웅 빌리모프스키가 2-0으로 뒤지던 경기를 4-2로 역전시킨 경기로 유명한 데, 이 경기에서 빌리모프스키는 세 골을 넣고 한 골의 페널티킥을 유도하였다.

이 경기를 끝으로 폴란드는 더 이상 국제경기를 치를 수 없게 되었다. 독일과 소련에 의해서 분할 점령된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지구상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독일과 빌리모프스키

독일은 폴란드가 일체의 국제경기에 참가하는 것을 금지시켰는데, 폴란드의 축구 영웅 빌리모프스키는 축구를 위해서 자신의 조국을 떠나 독일의 시민권을 획득하고, 독일의 경찰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빌리모프스키는 1941년 6월 1일, 독일 대표가 되어 루마니아와 첫 경기를 치렀는데, 두 골을 넣으며 4-1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 이후 10월 5일에 핀란드와의 경기에서도 그는 세 골을 넣으며 6-0의 승리에 뛰어난 공헌을 하였다. 1942년 10월 18일, 베른에서 스위스를 맞아 독일은 5-3으로 승리했는데, 빌리모프스키는 다섯 골 중에 네 골을 기록하였다. 폴란드의 축구 영웅이 적대국 독일의 축구 영웅으로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빌리모프스키는 조국 폴란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독일에 남게 되었다. 그는 폴란드 정부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고향인 실레지인 방문이 금지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1974년 독일 월드컵 기간에 폴란드 국가대표를 만나려는 그의 시도도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는 1997년 독일의 칼루스에(Karlsruhe)에서 네 명의 딸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근거 없이 지어낸 이야기 

빌리모프스키가 폴란드 초기 축구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1939년 9월 1일,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는 폴란드를 침공,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습니다.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는 당시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독일 대표팀과 폴란드간의 축구경기를 개최하게 됩니다. 이 경기의 의도는 당시 폴란드 최고의 스포츠인 축구 시합에서 독일이 승리함으로써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폴란드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경기 전에 폴란드 선수들에게는 일부러 져주라는 협박을 한 뒤였습니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폴란드 선수들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0-2로 뒤진 채 전반전을 마치게 됩니다. 경기장의 폴란드 국민들은 자국 선수들의 무기력한 플레이에 실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한 폴란드 선수가 독일 진영으로 공을 몰고 돌진하는 모습과 동시에 폴란드 국민들은 환호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 선수가 찬 공은 자신의 나라를 짓밟은 나치 독일의 골문을 가르고 맙니다. 

이 선수가 바로 1년 전인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폴란드 돌풍' 을 일으키고 브라질전에서 4골을 넣으며 세계적인 선수로 떠오른 빌리모프스키였습니다. 그 동안 나치의 협박에 못 이겨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던 폴란드 선수들에게 빌리모프스키의 이 한 골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심어주게 됩니다. 

이때부터 폴란드 선수들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결국 폴란드는 독일에 3-2로 역전승을 거두지만, 빌리모프스키를 비롯한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총살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용기와 희생은 폴란드 국민들의 희망이 되었으며, 폴란드 사람들에게 축구를 축구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네이버 지식 검색).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MBC의 ‘서프라이즈’라는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 의해 지어진 이야기로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독일은 세계 최강이 아니었고, 그러한 경기가 열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왜곡된 인생, 왜곡된 이야기 

빌리모프스키는 1930년대에서 4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 유럽에서 활약한 수많은 축구 선수 중 단연 뛰어난 선수였다. 그의 존재는 만약 제2차 세계대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1942년 월드컵이 개최되었을 것이고) 폴란드가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축구 선수인 그는 역사적으로 조국 폴란드가 독일에게 합병당하면서 왜곡된 인생으로 접어들었다. 그는 독일인이 되어 독일을 위해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가 되면서 조국 폴란드를 외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조국 폴란드가 독립을 다시 이루었을 때, 반대로 조국 폴란드가 그를 외면하였다. 그는 조국 폴란드의 죽음을 외면하였다는 오명을 죽을 때까지 벗지 못하였다.

1930년대를 주름잡았던 유럽의 한 축구 선수는 이렇게 기억 속에 왜곡된 이미지로 혼란스럽게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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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모프스키, 독일나치vs폴란드 축구 유명한 일화, 독일 폴란드 축구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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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피로엔박카스님의 댓글

  • 쓰레빠  피로엔박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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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헐.......... 그동안 진짜 스토린줄 알았다.........
0

당근빳떼루님의 댓글

  • 쓰레빠  당근빳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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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때 만화로 봤던 기억이 나는데 이게 모두 사기라니...
0

검은지평선님의 댓글

  • 쓰레빠  검은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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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전골을 멋진 발리킥으로 넣었던 기억이 나는데
0

bravo810117님의 댓글

  • 쓰레빠  bravo8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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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프라이즈보다 만화로 먼저 봤던 기억이 나는 내용인데 저놈도 매국노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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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마오님의 댓글

  • 쓰레빠  하지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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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보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진짜 충격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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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지말자님의 댓글

  • 쓰레빠  화내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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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만 조사했어도 거짓이었다는걸 알텐데 서프라이즈도 너무 허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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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짱님의 댓글

  • 쓰레빠  필립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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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헐 대박... 나름 감동을 받았던 내용인데 거짓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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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047145님의 댓글

  • 쓰레빠  k04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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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국노가 영웅이 되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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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x님의 댓글

  • 쓰레빠  si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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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어렸을때 만화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제목이 뭐였드라.... 암튼 나름 재미있게 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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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건빚뿐님의 댓글

  • 쓰레빠  남은건빚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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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교과서가 이렇게 나온다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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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날아보자님의 댓글

  • 쓰레빠  한번날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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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격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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