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문학박태환수영장. 2014 인천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100m 메달 수상자들의 공식 기자회견 자리였다. 이날 박태환(25)은 48초75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따냈다. 앞서 동메달만 4개 따낸 그의 이번 대회 첫 은메달이었다. 금메달은 닝쩌타오(21,중국), 동메달은 시오우라 신리(23,일본)에게 각각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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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이 시작하자마자 무섭게 한 외신 기자의 질문이 나왔다. 중국 유력매체에 근무하는 체육부 기자였다. 첫 번째 질문 대상자는 박태환. 특이한 점은 1위를 차지한 자국 선수가 아닌 박태환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점이었다. 이 기자는 영어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서 최고의 수영 선수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한수영연맹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쇼트트랙 올림픽 챔피언' 안현수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그는 빅토르 안으로 이름을 바꿨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박태환이었다. 통역이 한국어로 번역을 하기 전, '수영연맹과의 관계'라는 말에 박태환의 표정은 미묘하게 흔들렸다. 묘한 웃음이었다. 뒤이어 '안현수'라는 말이 나오자 박태환은 두 손을 모은 뒤 진지하게 경청을 하기 시작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이었다. 다음은 박태환의 대답.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연맹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선발전도 한국에서 뛰었다. 연맹과의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선발전에서도 좋은 기록이 나왔다. 이번 대회에서 비록 200m와 400m에서 좋은 기록을 얻지 못했지만 100m에서 값진 은메달을 땄다.
물론,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불화설 같은 것은 뒤로 하고 훈련에만 매진했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연맹이) 저를 많이 뒷받침 해줬다. 팬퍼시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도 준비를 잘할 수 있게 도와줬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이 도와 줄 거라 믿는다. 훈련을 열심히 하면 좋은 기록도 나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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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외신 기자는 뜬금없이 대한수영연맹을 거론했을까. 또 직전에 은메달을 딴 박태환을 앞에 두고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를 언급했을까.
사실, 박태환과 수연연맹과의 갈등은 지난해까지도 계속돼 왔다. 감독 선임, 훈련 방식, 관리와 지원 문제 등을 놓고 선수 측과 소속 단체와의 주도권 다툼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괘씸죄 적용'이라는 의혹과 함께 런던 올림픽 포상금 5천만원도 뒤늦게 지급됐다. 이런 사실은 당시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됐다.
이 외신 기자 역시 이런 사실을 다 꿰고 있었다. 2010 광저우 대회와 2012 런던 올림픽, 소치 동계 올림픽을 직접 현장 취재했다고 밝힌 이 체육 기자는 "박태환은 2006 도하 대회와 2010 광저우 대회 때 3관왕을 달성한 선수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박태환은 아직까지도 스폰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 이 대회를 마친 뒤에도 호주에서 또 개인 비용으로 훈련을 하는 것이냐"고 오히려 되물은 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국의 경우 한 선수를 향해 스폰서는 물론, 팬들과 정부가 온힘을 다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쑨양 같은 선수가 대표적이다"고 이야기했다. 이 기자의 표정에는 박태환을 향한 안쓰러움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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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AFPBBNews=뉴스1
지난 2월 안현수는 빅토르 안으로 러시아에 3개의 금메달을 안겼다. 당시,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파벌이 심했다'는 귀화 이유를 밝히며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에 경종을 울렸다. 당시 누리꾼들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마저 대한민국에서는 푸대접을 받는 게 한국 체육계의 현실"이라며 개탄했다.
세계를 호령했던 박태환. 하지만 예전만큼 나오지 않는 기록. 뒤로 밀리는 순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요즘 미디어 앞에 설 때마다 오히려 더 자주 웃는다. '마음을 비웠다'고 말한다. 또 '힘에 부치는 것 같다'고 한다. '미안하다'고 한다.
이날 한 외국 기자가 던진 질문 하나가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기자회견 초반 밝았던 표정도 굳어진 채…. 질문에 대한 답을 마친 박태환은 손을 입에 갖다 댄 뒤 경기장 내 상황을 볼 수 있는 모니터만을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원문--
대한민국은 정말 특이한 나라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특출난 선수가 나오면 일단 시기한다. 키워주고 좀더 잘 할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줘야되는데 오히려 방해만 한다. 그리고 힘들다고 하면 역시 니가 그렇지 뭐. 그럴줄 알고 안 도와준거야. 이질알을 한다. 수영연맹만 그러겠냐? 대한민국 체육연맹 모두가 지 실속 챙기가 바쁘니 선수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겠냐?
수영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훌륭한 선수가 나왔는데, 여전히 스폰도 지원도 훈련할 여건도 마련해주지 않는다.
이번 대회가 끝나면 스폰도 지원도 여건도 마련되어서 다음 대회에서는 이번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길 바란다. (물론 이번대회도 정말 훌륭한 성적이다. 실망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