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플까 봐 겁부터 난다”
충남 서천군 시초면 봉선리는 전체 주민이 95명인 자그마한 동네였다. 20~39살 여성인구 수를 65살 이상 인구 수로 나눈 소멸위험지수는 1.0 이하면 쇠퇴위험이 있다는 뜻인데, 이 동네 소멸위험지수는 기준치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0.09로 소멸고위험 기준인 0.2보다도 낮다. 주민 가운데 60대 이상이 52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40~50대 23명, 20~30대는 11명, 10대 이하는 9명뿐이었다.
사람이 줄기 시작한 지는 얼추 40년은 됐단다. 백 이장은 “그때는 처녀들이 가발공장에 많이 취직했거든. 짝 없는데 총각들이 뭐 하러 시골에서 농사짓겄어. 너도나도 보따리를 쌌지”라고 했다.
고향을 뜨는 이가 많아질수록 남는 이들이 겪는 불편은 커져만 간다. 동네 중학생 둘과 고등학생 셋은 하루 세번 오는 버스를 타고 10㎞가량 떨어진 서천읍내로 통학한다. 그나마 유일한 초등학생은 스쿨버스를 타고 2㎞ 거리 시초초등학교를 다닌다. 없는 것 빼곤 다 팔던 ‘점방’은 10여년 전에 문을 닫았고, 휴지나 식용유 같은 생활필수품을 사려면 시초면 슈퍼나 옆 동네인 문산면 농협마트까지 가야 한다.
노인들에게 병원이 멀다는 점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몸이 이상해 정밀검사라도 받으려면 도 경계를 넘어 전북 익산까지 가야 한다. 부인이 초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전임 노인회장 박성규(85)씨는 “아플까 봐 겁부터 난다”고 말했다. 땅에 의지해 걱정 없이 살기 좋은 동네에 살고 있지만, 치매 치료차 서울까지 병원에 다녀야 하는 일상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2009년 서천공주고속도로 개통으로 마을이 쪼개지면서 불꽃놀이나 풍물을 할 사람이 차츰 사라져 대보름맞이 동네 축제도 해마다 규모를 줄여가고 있다. 축제를 이끌어온 최규훈(68)씨는 “봉선저수지를 생태관광지로 개발하면 동네를 되살릴 수 있지 않겠냐”면서도 “숙박시설, 음식점, 편의시설 등이 있어야지, (생태관광) 체험학습센터만 만들면 무슨 소용이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 영화 촬영지, 머물지 않는 사람들
서천 봉선리에서 동쪽으로 250㎞가량 떨어진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해발 637m 조림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3개 마을이 형성돼 오랜 세월 사람들이 살아온 동네다.
연휴였던 지난 4일 화본1리 화본역 근처에 다다르자 밀려든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눈길을 돌려 바라본 ‘역전슈퍼’는 기념품을 고르는 손님들로 북적였고, 역 앞 국숫집에는 ‘주말, 공휴일 대기시간은 2시간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로 유명해지면서 2~3년 전부터 주말이면 관광객이 넘쳐난단다.
하지만 마을 안쪽으로 차를 돌리자, 여느 농촌처럼 한적하기만 한 풍경이 펼쳐졌다.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이종준(63)씨는 “사람이 빠지기 시작한 지는 20년 정도 된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이 아이들 공부시킨다고 대구로 많이 나갔다. 나이 든 어르신들은 점점 돌아가시니까 빈집도 점점 많아진다”며 “관광지가 되면서 사람이 많아서 좋긴 한데, 워낙 외진 곳이라 귀촌 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했다.
이 동네 인구구성도 심한 가분수형이었다. 면사무소와 화본역이 있는 ‘대처’인 화본1리에는 297명이 사는데, 60대 이상이 187명으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40~50대는 68명, 20~30대 29명, 10대 이하는 13명뿐이었다. 소멸위험지수 0.04. 관광지가 된 덕분에 드나드는 이는 많지만, 공동체 지속가능성에는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마을회관 건너편 산성초등학교는 9년 전 폐교됐고, 이씨가 사는 화본2리에는 스무살 미만 주민은 한명도 없다고 했다.
이곳 또한 ‘아플 때’가 문제였다. 보건지소에서는 독감 예방접종 정도만 가능할 뿐, 긴급상황이 발생하거나 만성질환을 앓는 이는 누군가가 모시고 군위읍내 또는 차로 1시간 거리인 대구까지 나가야 한다. 이씨는 “어르신들이 (혼자) 병원 가는 건 엄두를 못 낸다. 긴급 환자가 생겨서 119를 부르면 경북 칠곡까지 간다. 어떤 때는 영천, 대구까지 갈 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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