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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알프스, 소송 나선 주민들

  • 작성자: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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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879
  • 2022.09.03

http://n.news.naver.com/mnews/article/308/0000031414?sid=104


스위스 중남부에 있는 칸더슈테크는 인구 1300여 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달력 그림에나 나올 법한 풍광 덕분에 관광지로 유명하다. 마을 위쪽에 있는 외쉬넨 호수는 주변을 둘러싼 산에서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 만들어졌다. 알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하는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호 지역이기도 하다. 마을의 주요 산업이 관광인 만큼, 영어로 된 마을 홍보 웹페이지도 있다. 첫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 문구가 나온다. “바로 그 순간 스위스 솔 향이 산 아래 호숫가에 퍼지고, 산마루에선 마르모트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은 이 광대한 자연에 감탄하면서도, 사방에 높이 치솟은 바위산에 둘러싸여 안전하고 든든하다고 느끼죠. 그것이 바로 이곳이 수세기 동안 변함없는 이유, 그리고 당신이 이곳에 머무르는 이유입니다.” 함께 올라와 있는 아름다운 사진들과 잘 어울리는 설명이다.


주민들을 위한 마을 정보 사이트도 있는데, 여기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첫 화면에 지도와 함께 독일어로 된 경고문이 뜬다. “이동 정도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하루에 약 1㎝입니다. 서쪽 사면 아래쪽 일부 지역에서는 하루에 9㎝까지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규모 낙석이나 토사 붕괴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만 그 영향은 현재 영구 출입 금지된 지역에만 미칠 것으로 예측됩니다. 아래 지도에서 지역별 위험 수준을 참고하십시오.” 이 경고문에서 말하는 ‘이동’이란 칸더슈테크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2974m 높이의 바위산 슈피처슈타인 꼭대기에서 바위들이 흔들리면서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바위 이동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기후변화다. 산꼭대기의 영구동토층이 온난화로 녹아내리고, 녹은 물이 바위틈 사이로 스며들고, 그 물이 내부 압력을 높여 바위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슈피처슈타인 산의 지질구조 때문에 낙석 현상은 늘 있었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 동안 변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게 문제다. 이 산에서 바위가 가장 빠르게 미끄러지는 부분은 1년에 6~8m씩 움직이고 있는데, 알프스 전 지역에서 이 정도로 변화가 큰 부분은 없다고 한다. 일간 〈스위스인포(Swissinfo)〉 보도에 따르면, 칸더슈테크 마을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1120만 스위스프랑(약 155억원)을 들여 최근 너비 10m의 댐을 구축했고 여기에 곧 금속 그물을 설치할 예정이다. 또 최신 기술을 이용한 관측 도구를 산에 설치해 재난 발생 48시간 전 경고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집은 버려야겠지만 주민들이 대피해 목숨을 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목숨만 구할 뿐, 다른 방비책은 없다. 쏟아지는 바위는 댐과 그물로 잡는다 해도 2차로 암설류(debris flow·풍화작용으로 바위 부스러기들이 흘러내림)가 마을을 덮치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2000만㎥ 정도의 암석과 흙이 쏟아져내릴 수도 있다. 이는 피라미드 8개에 맞먹는, 마을을 집어삼킬 수도 있는 양이다.


사정을 알고 나면 영어로 된 마을 홍보 웹페이지의 ‘안전’ ‘든든’ ‘수세기 동안 변함없는’ 같은 수식어가 사기처럼 느껴진다. 주민이나 마을 정부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마을에 산사태 위험 경고는 치명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위기를 도외시할 명분은 못 된다. 재해는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칸더슈테크 관광객은 산사태 위험을 숨기려는 마을 정부에 항의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자연재해가 예견될 때 정부의 역할과 의무는 어디까지일까.


관광 수익 얻으려 위험 감추나



이와 관련해 5년 전 일어난 재해를 참고할 수 있다. 본도(Bondo) 마을에서 발생했던, 지난 한 세기 동안 스위스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산사태다. 스위스 동남부의 본도 마을은 알프스산맥의 본다스카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2017년 8월 이곳 피츠챙갈로(Piz Cengalo) 산에서 400만㎥에 달하는 바위와 토사가 부서져 마을로 쏟아졌다. 건물 99채가 부서지고 이 중 절반은 완전히 파괴됐다. 손해액은 4100만 스위스프랑(약 568억원). 이 사고로 스위스인 2명, 독일인 4명, 오스트리아인 2명 등 등산객 8명이 실종되고 시신을 찾지 못했다. 그나마 2012년에 이 마을이 유사한 산사태를 겪으면서 자동 경보 시스템을 장착한 덕분에 미리 대피할 수 있어 인명 피해가 이 정도에 그쳤다. 피츠챙갈로 산이 부서져 내린 주요 이유 역시 기후 온난화로 인해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린 점이 꼽힌다.


본도 산사태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이 마을이 속한 그라우뷘덴주를 고소했다. 자연재해가 예견된 것이었는데도 필수적인 안전 경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유가족의 변호사는 공영방송 SRF 인터뷰에서 “사고 2주 전에 이미 피츠챙갈로에서 바위들이 불안정한 상태였다는 것이 알려졌고 전문가들이 몇 주 혹은 몇 달 이내에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런데도 지방정부가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라우뷘덴주 지방법원에 낸 소송에서 패하자 스위스 연방법원에 상고를 했고, 연방법원은 올해 2월 그라우뷘덴 주정부의 과실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는 것이다. 현재 검찰이 주정부의 과실에 대해 재조사 중이다.


본도 산사태 재조사는 이례적인 일이다. 실제로는 정부가 예방 조치는커녕 위험 사실을 알리는 것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산업화 이전에 비해 현재 스위스 기온은 평균 2℃ 정도 올랐다. 전 세계 평균 상승치의 두 배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중에서도 알프스의 나라인 스위스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산사태, 이류(격렬하게 이동하는 진흙의 흐름), 낙석 등이다. 1946년 이후 지금까지 169명이 스위스에서 산사태 등으로 사망했다. 현재 스위스 산악 지역의 총 336곳이 재해 감시 대상이고 이 중 일부는 레이더나 GPS 센서 등을 이용해 24시간 감시 중인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수백 곳이 재해 감시 중이라는 사실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다가 2018년 11월 두 일요 신문(〈르마탱디망슈〉 〈존탁스차이퉁〉)에 의해 드러났다는 점이다. 감시가 필요할 정도로 위험한 지역이라면 주민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감시 현황을 공유하는 게 상식이다. 왜 굳이 숨긴 걸까. 감시의 주체인 스위스 각 주정부들의 입장에 따르면, ‘공포를 조장하고 싶지 않아서’ ‘귀중한 감시 장비가 일반인에 의해 망가질 수 있어서’ 등이 그 이유다. 이것은 변명일 뿐이다. 실제로는 관광, 부동산, 건축 등 지역산업 이익과 시민의 생명권이 부딪치는 상황이다.


산사태, 홍수, 폭염 등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 때문에 개인의 안전과 생명이 위기에 처하는 일이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다. 이 상황에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나 하나라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정도에 만족하거나,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기후위기에 무지한 대중과 정치인들을 일깨우거나, 그도 아니면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이라며 포기한다. 그런데 이와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이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헌법적 의무임을 주장하며 그 의무를 저버린 정부를 고소한 사람들이다. ‘스위스기후여성노인연대(Der Verein Schweizer Klimaseniorinnen, 이하 여성노인연대)’ 얘기다.


64세 이상 스위스 여성 약 2000명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2020년 12월 유럽인권법원에 스위스 정부를 과실 혐의로 고소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집단은 여성 노인인데, 스위스 정부가 충분한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아 자신들의 생명권이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이다. 법원은 2021년 5월26일 사건을 맡겠다고 밝혔다. 유럽인권법원에서 다루는 사상 두 번째 기후위기 관련 소송이다. 유럽인권법원에 제기되는 소송은 많지만 실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극소수라, 법원에서 이 건이 다뤄지는 것만으로도 반쯤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기후위기 무대응은 생명권 침해”



어쩌다 스위스 여성 노인들의 주장이 유럽인권법원까지 가게 됐을까. 불씨는 네덜란드에서 시작됐다. 2013년 네덜란드 환경단체인 우르겐다 재단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정부를 고소했다. 네덜란드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40%까지 줄이는 조치를 취하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헤이그 지방법원은 2015년 6월24일 우르겐다 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이 국가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라고 판결한 세계 최초의 사례다. 당시 이 판결 과정을 유심히 본 사람이 있었다. 스위스 베른 시의회 의원(녹색당) 안네 마러였다. 마러는 스위스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내고 싶었고, 소송을 위해 여성노인연대를 창립한다. 폭염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이 여성 노인 인구라는 과학적 사실을 소송에 이용하기 위해서다.


여성노인연대는 2016년 11월 스위스 정부에 ‘2020년까지 탄소 배출을 25% 줄이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청원을 제출했지만 기각됐다. 같은 청원을 2017년 연방행정법원에 냈지만 역시 기각됐다. ‘64세 이상 여성만 기후위기에 영향을 받는 게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그러자 여성노인연대는 2019년 이를 스위스 연방대법원으로 가져간다. 여기서는 ‘사법부가 이 문제에 관여하기엔 너무 이르다. 기후위기는 법적 소송이 아닌 정치 채널을 통해 해결하라’는 대답을 듣는다. 마러가 보기에 스위스의 판사들은 “기후위기와 관련된 인간의 기본권 이슈를 다룰 용기가 없었다”(2020년 12월4일 〈스위스인포〉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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