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행복한 가정’ 딸의 비혼 이유
아빠 때문에 속 썩었던 엄마
어버이날 1천만원 현상금 걸어
“아빠 같은 남자 만날까봐 안 해”
두 딸의 반격에도 꾸준한 강권
모든 것 기혼에 맞춰 세팅된 사회
“구출 필요해 결혼할 순 없잖아”
엄마가 뜬금없이 현상금(?)을 내걸었다. 올해 어버이날 선물을 묻자 엄마는 다 필요 없으니 제발 저축이나 하라고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더니, 너는 남자친구도 없냐며 남자 데려오는 딸에게 1천만원을 줘야겠다고 현상금을 내건 것이다. 서른이 넘은 딸을 둘이나 둔 엄마는 평소엔 결혼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가도 이렇듯 특별한 날이 되면 “얼마나 못났으면 여태 남자도 없냐”며 구박을 베이스로 한 잔소리를 시작한다. 옆집, 뒷집 이웃들이 “딸들은 아직도 소식 없어?”라고 걱정 섞인 참견을 하거나, 자식들을 모두 시집, 장가 보내고 손주를 본 친척들과 통화를 한 날일수록 잔소리는 강도가 높아진다.
잊고 살다가 가끔 생각날 때마다 결혼을 독려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 나와 여동생은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생각한다. 엄만 결혼해서 행복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러지? 우리 자매는 배려심 깊은 효녀들이 아닌지라 입 밖으로 이 말을 내뱉을 때도 있다. “아빠 같은 남자 만날까 봐 결혼 안 해. 엄만 결혼 뭐 좋지도 않았으면서 우리보고 왜 하래?” 그럼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응수한다. “너넨 좋은 남자 만나면 되지, 니들 능력 없는 걸 왜 엄마 탓을 해?” 엄마 가슴에 칼침을 쑤셔 박은 게 뻔할 이런 가시 돋친 말도 자주 하다 보니 이젠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만성이 되어 만담 듀오처럼 우스갯소리로 주고받는다.
남자 보는 눈 제일 없는 게 엄마인데
그렇다. 나는 엄마에게 가끔 이렇게 말한다. “닭띠 중에 남자 보는 눈 제일 없는 게 엄마일걸?” 사흘이 멀다 하고 잔뜩 취해 귀가하고, 주폭이 되어 세간을 때려 부수기 일쑤. 가끔은 경찰서에서 “아버님 모셔가세요”라고 전화가 오거나 그마저도 없으면 불안해 길에 쓰러져 있는 아빠를 찾아 엄마와 밤길을 뒤지던 기억이 나에겐 아직도 생생하다. 집을 떠나 스무살에 상경한 뒤 혼자 사는 집에서 내가 제일 먼저 느꼈던 것은 늦은 밤에 쿵쾅거리며 문을 발길질하는 아빠의 주정을 듣고 깰 필요가 없다는 데서 오는 안정감이었다.
불행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이혼하지 않았다. 부모의 결혼생활 목격자인 우리가 “이 결혼은 실패”라고 판결을 내렸음에도 엄마는 우리에게 결혼을 적극 권유한다. 행복한 부부에 대한 롤모델이 없는 우리 자매는 어릴 때부터 결혼을 불신하게 되었다. 엄마 역시 내가 서른을 갓 넘겼을 때까지만 해도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엄마는 주변에 비해 뒤처진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지역은 수도권에 비해 자녀들의 혼인 연령대가 더 낮은 편이라 엄마 주변에서 이제 결혼 안 한 애들은 나와 동생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자랑거리였던 두 딸은 이제 ‘서른 넘어 결혼도 못하는 모질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엄마 봐라. 결혼해서 행복하잖아”를 예시로 들 수가 없는 엄마는 결혼을 강권하기 위해 각종 사례를 든다.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홀로 사는 노인이 나오면 “저 봐라, 자식이 없으니 저렇게 쓸쓸하지. 아픈데 보호자도 없으면 어떡할 거야.” 심지어 내가 평생을 달고 산 생리통 때문에 누워 있다고 하면 엄마는 “그게 다 결혼을 안 해서 호르몬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지적한다. “엄마, 나 중학생 때부터 생리통 심했어”라고 하면 “그러니까 문제야. 원래 나이 들수록 없어지는 건데 네가 결혼을 안 해서…(블라블라).” 직장이나 집 문제로 불안해해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했으면 신혼부부대출을 받아서 안정적으로 이사할 텐데…. 결혼을 했으면 둘이 함께 알뜰하게 돈 모아서 남들처럼 살 텐데…. 결혼을 했으면 이런저런 혜택을 봤을 텐데….’ 나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가 마치 내가 비혼의, 혼자 사는 여자라서 생기는 문제라고 어른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사실 엄마의 이런 예시들이 영 틀린 것만도 아니다. 보증금 때문에 대출을 신청할 때, 국가나 시에서 제공하는 주택 관련 혜택들을 알아볼 때, 하다못해 5월마다 돌아오는 종합소득세신고 때에도 나는 느낀다. 한국 사회는 보편적인 제도나 혜택이 결혼 후 혼인신고라는 과정을 거쳐 남녀가 함께 살며 아이를 하나 이상 낳아 부모를 봉양하는 ‘정상 가족’ 형태를 위해 만들어져 있음을. 주택공사에서 시행하는 임대주택 공고만 찾아봐도 명확해진다. 신청서 작성 시에 신혼부부일수록, 아이가 더 많을수록,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가산점이 더 올라간다. 1인 가구는 모든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 ‘이런 혜택 줄 수 없지롱∼’ 놀리는 것 같다.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비혼 여성이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 틈새를 찾아볼수록 결론은… 역시 계약결혼뿐인가. “가짜 남자친구를 데려가서 엄마에게 천만원을 받아내는 거야!” 물론 나는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주인공이 아니므로 나의 계획에 응해줄 남성을 찾아 계약결혼을 하고 함께 임대주택신청서를 쓰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451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