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전철역인 ‘동묘(東廟)’ 역에는 이상한 건축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보물 제142호인 동묘라는 건물인데, 전철역을 오가는 행인들에게 “동묘가 어떤 곳인지 아느냐?”하고 물으면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인근에서 장사를 오래한 사람들만이 동묘가 누구의 사당인지 알고 있을 뿐이다.
사당 묘(廟)자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분명 동묘는 누군가를 모신 사당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동묘는 과연 누구의 사당일까? 동묘는 중국 촉한의 장수인 관우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사당 묘(廟)자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분명 동묘는 누군가를 모신 사당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동묘는 과연 누구의 사당일까? 동묘는 중국 촉한의 장수인 관우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 민간에서 싹튼 관우신앙이 명나라 때 정치적으로 활용되면서 집집마다 관우를 모실 정도로 활성화되어, 공자의 사당을 문묘(文廟)라고 하듯이 관우의 사당을 무묘(武廟)라 하여 관우를 전쟁의 신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전까지 동양의 군신(軍神)으로 모셔졌던 치우천왕이 동이족이기 때문에, 이를 관우로 대처하기 위해 소설 삼국연의를 썼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이다.
관제묘가 처음 세워진 사연은 명나라 군대가 임진왜란에 출전해 승리한 원인을 관우의 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관제묘는 명나라 방방곡곡에 세워지고, 나아가 속국인 조선에도 여러 곳에 세워졌다. 관왕묘가 조선에 최초로 세워진 것은 1598년(선조 31) 명나라 장수 진린이 울산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서울 남대문 밖에서 요양을 하면서 후원에 사당을 설치한 남관왕묘(南關王廟)가 그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관제묘가 처음 세워진 사연은 명나라 군대가 임진왜란에 출전해 승리한 원인을 관우의 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관제묘는 명나라 방방곡곡에 세워지고, 나아가 속국인 조선에도 여러 곳에 세워졌다. 관왕묘가 조선에 최초로 세워진 것은 1598년(선조 31) 명나라 장수 진린이 울산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서울 남대문 밖에서 요양을 하면서 후원에 사당을 설치한 남관왕묘(南關王廟)가 그 기원이라 할 수 있다.
몰랐던 분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