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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이 예전엔 이런 곳이었군요? [기사]

  • 작성자: Home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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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1771
  • 2017.11.26

도깨비 다시 보고싶네요~~^^

90년대까진 ‘억압의 상징’ 광화문광장, 요즘엔 인증샷 명소! 


광화문 앞 세종로는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는 권위와 억압의 상징이었다. 왕복 16차로의 넓은 도로에는 횡단보도 하나 없이 시민들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았다.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를 시작으로 광화문 일대는 점차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이에 따라 광화문 일대는 드라마와 연극에서도 한국을 상징하는 명소 이미지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티브이엔( tvN )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오른쪽·김신 역)과 김고은(지은탁 역)이 광화문에서 만나는 모습. 티브이엔 제공 몇십년을 훑어보면 광복 이후 광화문네거리와 세종로의 풍경은 몇번에 걸쳐 크게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첫번째는 시민회관이 서고 그 맞은편에 현재 미국 대사관 건물이 들어섰던 1960년대 전반기이다. 북한산 아래 경복궁을 막아선 권위적이고 화려한 중앙청과는 전혀 다른 두 건물, 불필요한 장식을 다 떨어내버리고 실용적·합리적인 직선을 시원시원하게 드러내 보인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선 것만으로도 그곳의 분위기는 바뀌었다. 서유럽으로 대표되는 근대 초기의 이미지를 벗어나 미국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이미지를 세종로에 만들어냈다. 두번째는 1968년 이순신 동상으로 시작해 콘크리트조 광화문, 1978년 세종문화회관 준공으로 완결되는 박정희 시대 후기의 풍경 변화이다. 1960년대 전반기의 미국적인 모던함과 실용성의 이미지를 벗어나, 열주와 기와지붕, 갑옷을 입은 거대한 동상까지 국가주의·민족주의의 권위를 한껏 드러낸 모습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다시 한 번 이곳의 풍경이 크게 변화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70년 <사상계>에 담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반공법으로 구속되고 잡지까지 폐간에 이르게 되는 엄청난 필화사건을 겪은 김지하는 바로 다음해에 단막 희곡 <구리 이순신>(<다리> 1971년 11월호)을 발표했다. 이미 그해 봄에 서울대 문리대 연극반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5월에 서울대에 휴업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공연은 무산되고 지면으로만 발표된 것이다. <구리 이순신>은 광화문네거리에 선 이순신 동상과 그 앞을 지나던 가난한 엿장수의 대화로 이루어진 간단한 구조의 작품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구리로 뒤덮여 답답해진 이순신이 엿장수에게 구리를 벗겨 자신을 해방시켜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행복한 왕자>에서는 제비가 금을 벗겨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왕자와 제비는 이승에서 초라하게 사라지지만 천사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가는 해피엔딩으로 끝맺는다. 하지만 <구리 이순신>에서 세상에 대한 넋두리를 하는 거지 시인은 술 취해 잠들어버리고, 이순신이 답답하다고 벗어준 구리 투구와 갑옷을 받은 엿장수는 절도죄로 잡혀간다. 투구와 갑옷은 다시 이순신에게 덮어씌워지고 답답한 이순신은 몸부림치다가 “제비야! 너는 왜 오지 않는 거냐?”고 외친다. 이 제비는 <행복한 왕자>의 제비이기도 하고, 봄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군사정권 때 세종로는 위압 지대
서울역~광화문 2.2㎞ 넓은 길에
횡단보도 하나 없이 차량만 통행
당시엔 ‘이순신 동상’도 조롱거리


광화문광장은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소가 됐다. 티브이엔 제공 박정희 시대 비판한 작품 <구리 이순신>

박정희 대통령의 이순신 사랑은 매우 각별했다. 사당인 현충사 성역화나 <난중일기>의 국보 지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군인이라는 동질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데다가 일제강점기 후반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들이 공유하는 ‘문약한 문신들이 망해먹은 조선’이라는 역사인식, 멸사봉공의 태도나 죽음의 비장미에 대한 호감 등이 겹쳐졌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지식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한일 수교로 그의 모토인 ‘민족적 민주주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인 이순신을 중앙청 앞 세종로 거리에 세워놓겠다는 발상은 자신이 추진한 대일 외교가 학생·지식인이 비판하듯 ‘굴욕적 한일 수교’가 결코 아니었음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을 보여준다.

그 지점에서 이순신 동상 건립은 삐딱한 지식인들의 심사를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구리 이순신>은 이를 선명히 보여준다. 엿장수는 이순신 앞에서 ‘어느 높으신 양반 하나가 왜놈 하나를 비밀 요릿집에 모셔놓고 왜놈들 군가를 불렀다’고 분개하며, 이순신은 “나라 동강 나고, 왜구는 또다시 쇠를 달구어 칼을 벼리는데 백성은 서로를 믿지 않고, 목자는 백성을 형벌로만 다스리”는 이 세상에서 자신은 ‘무섭게 생긴 얼굴을 허세처럼 덮어쓴 채 꼼짝 못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특히 동상의 외양에 대한 비판은 꽤 신랄하다. “씩씩하고 늠름하고 으스스하다 못해 무시무시하고 골이 잔뜩 난 모습”이어서 “누구를 내리누르겠다는 겐가?”라고 반문한다. 동상 건립이 일본에 대한 경계라기보다는 국민에 대한 억압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고 작가는 느끼고 있는 것이다.

1971년은 박정희가 3선개헌을 통해 얻어진 세번째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였다. 부정선거 규탄 시위, 교련반대 데모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고, 결국 이러한 집단적 저항에 밀린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유신으로 삼권분립이나 국민의 기본권 등을 포기한 강압적 종신집권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희곡에서는 엿장수와 거지 시인이 이순신 동상을 어루만지며 대화를 나누나, 현실은 이보다 훨씬 경직되어 있었다.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의 시대가 열리면서 청계천 복개와 고가도로 건설 등 서울의 외양이 대대적으로 변화한다. 1967년 광화문네거리와 태평로, 서울시청 옆 개풍빌딩 앞 등에 일제히 지하도를 건설한다. 이로써 서울역에서부터 광화문까지 무려 2.2㎞의 도로가 보행자용 횡단보도가 하나도 없는 자동차만을 위한 도로가 되었다.(2009년 서울역사박물관 특별기획 ‘광화문 연가-시계를 되돌리다’ 도록 참조) 즉 교통경찰이나 동상 관리자를 제외하고는 이순신 동상에는 사람이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구리 이순신>이 발표된 1971년에 세종로 거리의 풍경을 바꾸는 또 하나의 구조물이 세워진다. 동아일보사 사옥(현 일민미술관)부터 국제극장 앞을 잇는 거대한 아치이다. 그 아치에는 정부의 캠페인 문구, 경축일이나 대통령 해외순방 등을 경축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오로지 자동차만 달릴 수 있는 긴 직선도로를 남쪽에서 북쪽 중앙청을 향해 서면 정부의 선전 문구를 적은 아치를 거쳐 그 뒤로 이순신 동상, 다시 그 뒤로 콘크리트조 광화문과 중앙청이 일렬로 보이게 된다. 비주얼부터 국가주의 그 자체이다. 이 아치는 1982년에 철거됐다.

2009년 8월에 완공된 광화문광장은 비록 차도에 갇힌 섬이긴 해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소로 떠올랐다. 사진은 지난해 11월26일 제5차 촛불집회 때 100만명이 훨씬 넘는 시민들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YS 의 총독부 건물 해체로 변화 시작

세종로의 풍경이 다시 한 번 크게 바뀐 것은 광화문광장이 생기고 광화문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2009~2010년이다. 그 전에도 약간씩의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1년에 교보빌딩이 광화문네거리 비각 뒤편을 차지하고 우뚝 섰고, 맞은편에 1984년 현대건설 사옥(현재 현대해상 사옥)이 섰을 때 이곳의 풍경이 한 번 더 달라지기는 했다. 하지만 역사적 의미를 지닌 대대적 변화라고는 하기 힘들다. 교보빌딩은 건축주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주일 미국대사관 건물을 모방한 거대한 ‘짝퉁 건물’이었다. 세련됐으나 개운하지 않고 덩치만 큰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뒤이어 건조하고 투박한 모습으로 세워진 현대건설 사옥과 함께 주변 건물들과의 맥락이 별로 고려되지 않은 채 그저 서울이라는 현대적 도시의 대기업 빌딩의 풍경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1980년대까지 세종로의 풍경은 여전히 선진국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국민은 아랑곳없이 그저 크고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드러낸다.

군인 출신 대통령의 시대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서야 이제 이곳은 ‘복원’이라는 이름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비틀린 역사의 흔적에 대한 성찰이 가능해진 것이다. 1995년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해체됐고, 2006년에 광화문 복원이 시작됐다. 남산의 일본 신사를 향하도록 근정전에서 각도를 비틀어 조선총독부를 세웠는데 남산 일본 신사를 향해 있던 콘크리트조 광화문의 각도도 바로잡아, 복원된 광화문은 원래대로 관악산을 향하도록 세워졌다. 이보다 몇년 전인 2005년부터 광화문네거리에 보행자를 위한 횡단보도가 생겼고, 2010년 광화문 복원 준공으로 이러한 변화는 일단락지어졌다. 광화문광장(2009년 완공)이 ‘사방이 차도로 막힌 섬’, ‘거대한 중앙분리대’라는 조소 어린 표현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나, 어쨌든 이로써 세종로 한복판이 매일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채워질 수 있게 된 것만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중앙청, 콘크리트조 광화문, 이순신 동상, 대형 아치까지 늘어서고 자동차만 다니던 1970년대 풍경은 이로써 완전히 청산되었고, 복원된 경복궁과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이순신 동상이 일렬로 서 있고 그 사이를 시민들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게 된 것이 2010년대의 풍경이 됐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영화와 티브이( TV ) 드라마에서는 세종로가 ‘대한민국 서울의 연인들’이 만나는 장소로 자주 등장했다.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곽재용 감독, 2004)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세종로에서 촬영되었다. 경찰관 경진(전지현 분)이 자신의 검거작전에 휘말려 죽은 애인 명우(장혁 분)를 꿈속에서 다시 만나는 장소가 바로 광화문네거리이다. 죽은 애인 명우는 은행잎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그곳에서 경진에게 ‘명우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라’며 77번 버스를 타고 떠나가 버린다. 그날은 명우가 죽은 지 7·7일 즉 49일째 되는 날이었다. 아직 네거리의 횡단보도도 광화문광장도 만들어지지 않아 그저 일민미술관과 광화문우체국 부근만 비춰졌지만, 시공간이 다른 곳에서 ‘현재의 이곳’으로 날아온 사람이 광화문네거리에 등장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가장 중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2005년 세종로 횡단보도 이어
2009년 광화문광장 신설 개방
관광명소·민주주의 무대로 변신
영화·드라마 배경으로 큰 인기


<도깨비>에도 광화문 장면 등장

광화문 복원이 이루어진 뒤의 작품에서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주인공들은 여지없이 이곳에 ‘인증 샷’을 찍듯 멋진 장면을 하나씩 보여주었다. 티브이 드라마에서 가장 멋진 장면을 보여준 것은 <인현왕후의 남자>(티브이엔, 송재정·김윤주 극본, 김병수 연출, 2012)이다. 시간여행 소재가 이제 막 뜨고 있던 시점에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숙종 때의 홍문관 교리 김붕도(지현우 분)가 폐위된 인현왕후의 암살사건을 막으려다 시간을 뛰어넘게 된다. 말을 탄 채로 경복궁 담을 뛰어넘고 보니 2012년의 광화문광장이었다. 휘황한 조명으로 치장한 21세기 광화문을 배경으로 버스와 승용차들이 지나가는 한가운데에 말을 탄 김붕도와 21세기의 여배우 최희진(유인나 분)이 만나는 그 장면은 이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시각적으로 멋진 장면이다. 이후 과거와 현재를 몇번 오가는 김붕도는 광화문광장의 ‘역사 물길’ 앞에 앉아 자신이 살던 시대를 손으로 더듬는다. 세종로에 켜켜이 쌓인 수백년의 육조거리 유적이 발굴되고 광화문이 복원되었으니 가능해진 장면이다. 이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는 티브이 드라마다운 형상화였다.

이후 이런 설정은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했다. 히트 제조기 김은숙 작가와 아름다운 화면을 잘 만들기로 유명한 이응복 연출이 만든 <도깨비>(티브이엔, 2016)의 초반부, 두 주인공 김신(공유 분)과 지은탁(김고은 분)이 ‘단풍국’ 캐나다에서 바로 공간을 뛰어넘어 나타난 곳도 광화문 앞이다. <인현왕후의 남자>처럼 꼭 광화문일 필요가 없었지만, 캐나다가 아닌 대한민국으로 날아왔음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하고 멋진 장소는 역시 광화문 앞이었을 것이다. <시카고 타자기>(티브이엔, 진수완 극본, 김철규 연출, 2017)에서도 1930년대에 죽어 타자기 유령이 되어버린 유진오(고경표 분)가 가장 와 보고 싶어 한 곳이 조선총독부가 사라진 광화문 앞이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1930년대의 청춘 3명이 2010년대에 환생하여 광화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제 이곳은 서울 관광의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드라마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 관광을 선택한 외국 젊은이들은 세종로 부근의 한복 대여점에서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화려한 퓨전 한복을 빌려 입고 광화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한때 그토록 억압적으로 보였던 ‘구리 이순신’ 앞도 이제 색색의 분수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관광지 ‘포토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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