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앞에서 ‘도원결의’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전문 이야기꾼들의 창작임을 밝혔다. 도원결의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면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결의형제를 비롯해 누가 형이고 누가 아우냐 하는 이야기는 그들의 나이를 판명해 줄 믿을만한 증빙자료가 되지 못한다. 오직 사적( 史 籍 )만이 그들의 연령을 추단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관우의 나이는 사적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다만 청대 강희(
康
熙
) 연간에 관우의 고향 마을에서 출토된 ‘관후조묘비기(
關
候
祖
墓
碑
記
)’의 기재를 근거로 해서 산출해보면 관우는 한나라 환제 연희 3년(서기160년) 6월 24일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가여림(
柯
汝
霖
)의 『관공연보(
關
公
年
譜
)』와 전정방(
錢
靜
方
)의 『소설총고(
小
說
叢
考
)』를 보면 ‘관우가 실제로는 유비보다 한살 더 많다.’고 하는 것이다.
『삼국지ㆍ관우전』에 의하면 관우는 건안(
建
安
) 24년(서기219년)에 죽었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60세가 맞는데 『삼국지연의』에서는 오히려 58세로 적고 있다. 이는 관우를 유비의 아우로 만들기 위한 착안에서 그리한 것이다. 왜냐하면 유비가 죽은 해를 근거로 할 때, 관우가 죽은 해의 유비는 59세였으므로 아우가 된 관우는 아무리 많아도 58세를 초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의 사실을 근거로 중평 원년 세 사람이 처음 모였을 때의 나이를 계산해보면, 관우 25세, 유비 24세 그리고 장비가 20세였으니, 세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관우이지 유비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관우와 장비가 모두 유비를 형님으로 대접했을까?
전정방은 『소설총고ㆍ삼국연의고』에서 ‘나이로만 따진다면 관우가 유비보다 한 살 위이고, 장비는 유비보다 네 살이 아래였다. 두 사람이 유비를 형으로 인정한 것은 당시 유비가 한 치의 땅도 없는 상태였으므로 관우, 장비가 비록 섬길 주인을 얻었지만 아직 군신의 신분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의도는 이미 임금으로 모신 것이다.’라고 했는데, 나름대로 일리 있는 견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