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죠. 손해 보고 나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인데, 이 속담은 다양한 변형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작가 이외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들을 비웃지 말라.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변형의 특징은 보통 소 보다는 외양간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언제 고치느냐의 문제죠.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못 고치는 이유는 손해보기 싫은 욕심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소는 안 도망갈 것 같은데, 괜히 고치는 비용 들어가면 아깝죠. 사람은 누구나 손해보기 싫어합니다. 외양간 고치는건 웬만한 의지 없으면 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르죠. 외양간을 고치면 돈은 들어도 소는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외양간을 못 고치면 어떻게 될까요. 소는 도망갑니다. 제가 아는 사람중에 이걸 잘 못해서 몇 억씩 손해 예정인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사과는 참 잘합니다. 그런데 사과에 꼭 필요한 요소인 "손해"는 절대 보지 않으려 합니다. 예전에 언급드렸다시피 사람은 사과하는 사람이 손해를 봐야 기분이 풀린다고 봅니다. 물론 그 손해는 나에겐 이득으로 다가와야하죠. 결국 이분의 외양간은 고쳐지지 않았고 업체들은 도망갈 예정입니다. 손해 보기 싫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갈라버린 겁니다. 제가 이분에게 해 드릴 수 있는 단 한마디, "이제라도 외양간 고치세요. 소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근데 얘기해도 절대 안할겁니다. 본성이 그런 사람들은 말 해봤자 안바뀐다는걸 아니까요.
저는 친구관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외양간을 못고치면 울타리의 소들은 분명 떠나갈 겁니다. 돈 몇푼 때문에 사람 신용과 가치가 하락하죠. 아마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런 사람들의 비율은 더 높아질거고(제가 나이를 언급할 정도의 연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쪽은 좋은 평가를 받게 될겁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손해를 봅니다. 이런 손해를 공돈 날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인생은 정말 불편해집니다. 지출이 먼저냐 이득이 먼저냐에 따라 기분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손해가 아니라 당연히 써야될 지출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결국 조금 손해보는게 이득입니다. 펌프질을 할 때는 마중물 넣는 걸 아끼지 않습니다. 손해가 컸다면 이를 마중물로 여기고 이득을 엄청 크게 만드는 노력을 조금씩 해봅시다. 인생은 정신승리니까요.
출처:디젤매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