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세, 이번 이야기는 '서구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입니다. 명절로 인한 스트레스 증상을 뜻하는 '명절증후군'은 서구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이를 '명절 우울증'(holiday blues)'이라고 하는데요.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조어가 아니라 미국 최대 심리학 연구단체인 미국심리학회(APA)도 사용하는 정식 심리학 용어입니다.
APA의 조사에 따르면 추수감사절에 요리를 하느냐는 질문에 여성의 66%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은 35%에 그쳤습니다. 장을 보는 것도 여성(52%)이 남성(32%)보다 많았고, 설거지 역시 대부분 여성(70%)들의 몫이었습니다. '명절 기간 동안 평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여성은 44%로 남성(31%)보다 13%포인트 더 많았습니다. APA는 "여성들이 명절 때 큰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급격히 많은 집안일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명절 때 미국 여성들은 주로 어떤 일들을 할까요? 한국에서 명절 집안일의 대명사가 '전 부치기'라면 미국에선 '카드 부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명절을 맞으면 수많은 친구와 친척들, 직장 동료들에게 명절 카드와 선물을 보내는데 이 일은 대부분 여성들에게 떠넘겨집니다. 심지어 남편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아내들이 챙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게는 100여 장에 달하는 편지를 일일이 손으로 써서 보내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명절 전후엔 우체국에 사람들이 몰려서 우표를 한 장 사려고 해도 긴 줄을 서야 하고요. 명절용 우표는 명절 시즌에만 팔기 때문에 미리 사둘 수도 없습니다. 카드를 부치는 시점도 문제입니다. 영국 텔레그래프지에 따르면 "카드를 너무 빨리 보내면 없어 보이고, 너무 늦게 보내면 제때 도착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하네요. 카드와 우표 가격도 만만찮습니다. 카드값에 우표값, 우편료 등을 더하면 한 장을 보내는 데만도 우리 돈으로 만 원이 넘어요. 그런 걸 100장 보낸다고 생각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요.
밥하는 여자, 축구 보는 남자
엘리자베스 브라운, 잡지 리즌 에디터. [링크드인 캡처]
엘리자베스 브라운, 잡지 리즌 에디터. [링크드인 캡처]
명절 당일 집안의 풍경도 한국과 미국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미국 월간지 리즌의 에디터인 엘리자베스 브라운(사진)은 지난 2011년 기고문에서 "미국의 많은 집안에서 추수감사절에 하는 활동은 성별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다"며 그날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우리 엄마와 이모 네 명은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 계획을 마련하고, 장을 보고, 요리부터 상차림까지 전부 도맡아서 해요. 심지어 이분들 모두가 정규직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인데도 말이에요."
"저 같은 손자·손녀들은 나이가 스물이 넘었고 40이 다 되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애들'이라고 불리면서 설거지 같은 잔심부름을 하고, 손녀들은 상 차리는 걸 돕기도 하죠. 그러는 사이 남자 '어른'들은 뭘 하느냐고요? TV 앞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서 축구를 본답니다."
브라운은 자기 세대가 명절 행사를 주관하게 되면 여성이 주로 일하고 남성은 쉬는 명절 문화를 바꾸고 싶다고 말하지만, 스스로도 자신은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우리 세대의 성 평등 의식은 지난 세대보다 진보적임에도 아직까진 어른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하고 있어요. 이대로 나이를 먹고 명절을 주관하게 되면, 우리도 아버지 세대처럼 행동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원래 명절이 이런 거지'라고 하면서요."
http://www.joongang.co.kr/amparticle/21990518
서양 명절은 어떤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여자만 힘든 건 비슷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