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극장가 흥행작은 모두 '속편'이었다. 팬데믹 이후 최초로 1000만을 넘긴 '범죄도시2'(1269만 명), 톰 크루즈 출연작 최고 매출을 경신한 '탑건: 매버릭'(816만 명), 한국 극장가 역대 최다 관객을 불러 모은 '명량'의 후속작 '한산: 용의 출현'(725만 명), 다니엘 헤니와 진선규의 합류로 재등장한 '공조2: 인터내셔날'(608만 명), 배네딕트 컴버배치의 두 번째 마블 솔로무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588만 명)까지 박스오피스 1~5위에 오른 작품 뒤에는 모두 관객의 큰 사랑을 받은 '전편'이 있었다.
이건 관객들이 극장으로 나설 때 '가장 안전한 선택지'를 골랐다는 의미다. 전편에서 만족했던 경험이 떠올라 속편의 재미도 어느 정도 기대할 만하다고 판단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영화표를 구입했다.
이런 현상을 뒤집어보면, 관객이 사전에 재미의 종류와 정도를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은 외면했다는 의미도 된다. 특히 국내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주려는 무언가가 '어설프고 불분명하다' 싶으면 스타 캐스팅도, 스타 감독에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재난드라마 '비상선언'은 후반부의 신파가 아쉬움으로 지목되면서 흥행에 참패했고, SF사극 '외계+인'은 세계관이 지나치게 혼란스럽다는 평가 끝에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전 세계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이 같은 현상의 이유를 이미 지겹도록 많이 들었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막강한 위상을 발휘하고 있는 OTT의 등장과, '영화나 한 편 볼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다가가기엔 부담스러워진 영화표 값 등이 모두 요소로 꼽혔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북미에서도 대개 영화표값이 2만 원을 웃돈다.
그렇다고 '속편'만 만들어야 하는 지극히 안정 추구형 시장이 된 걸까.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런 와중에도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작품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첩보액션물 '헌트'(434만 명)와 군대코믹물 '육사오(6/45)'(195만 명)가 기대 이상으로 흥행했고, 북미에서는 음악 영화 '엘비스'(1억 5094만 달러)와 조던 필 감독의 SF스릴러 '놉'(1억 2117만 달러)이 좋은 성적을 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속편 없이 성공한 새로운 영화들이다. 공통점은 각자의 장르와 콘셉트를 분명히 하고 그에 걸맞은 볼거리를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액션이면 액션, 코미디면 코미디, 음악이면 음악처럼 자신들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에 걸맞은 형태를 골라 그 재미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를 고려하면 관객은 단순히 '아는 재미'만을 찾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뭘 보여줄 지를 정확히 아는 이들의 영화'를 택한 거라고 봐야 한다.
돈 아까운 영화는 극장에서 안 보는 시대라지만, 그럼에도 극장 영화 생존의 묘는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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