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사랑이다!’
한국 고고미술사 학계의 일부 연구자들은 고대 왕조 백제를 일컫는 화두로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한다. 백제가 고대 한반도의 삼국 가운데 가장 우아하고 섬세한 예술문화를 빚어냈다는 건 익히 알려진 평가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사랑 타령일까.
“더러는 죽어서도 죽지 않는 목숨이여/ 내게 평안 있으니 그대들 또한 평안하라/ 황금의 하트 하늘빛 곡옥의 음성 다만 눈이 부셔 두 눈을 감을 뿐이네”
낭송을 마친 작가는 말했다. “왕의 존재는 삼엄하고 살벌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부드러운 하트가 나왔을까, 놀랍니다. 부드럽고 편안한 무늬 그 자체가 왕한테 당신부터 평화와 사랑을 얻어라,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라는 장인과 백성의 축복이 아닐까요.”
온갖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암투 끝에 왕이 된 무령왕이 전쟁의 고통을 넘어 인간 사랑을, 백성을 아우르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랑의 마음을 한쪽에 담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백제인들이 유난히 하트 모양의 상징을 좋아했다는 것은 여러 토기나 장식물 등에서도 확인되는 특징이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나태주 시인의 솔깃한 분석과 다소 다르게 문화재 학계에서는 심엽형(心葉形)이란 전문용어로 흔히 부르는 하트 문양을 신앙적 상징물로 보고 있다. 고고미술사가인 이병호 공주교대 교수는 6~7세기 백제와 신라에는 심엽형 하트가 허리띠나 목걸이, 큰칼 등의 장식무늬로 유행하지만, 특히 백제인들의 하트 애호가 유난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무령왕릉의 허리띠 장식을 보면 버클 이음부에 두꺼비상이 보인다.
단언하지는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하트는 백제가 신라·고구려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이야기한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이게 백제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보인다는 점. 무령왕릉 출토 허리띠 장식의 두꺼비 장식판처럼 두꺼비의 배를 뒤집어 놓으면 하트가 되는 재미있는 문양의 얼개라든가 금공예품 곳곳에 보이는 뾰족한 첨두부가 돋보이는 하트 형태는 6~7세기 사비도읍기 백제 유물들에만 나타난다.
백제인의 하트 애호벽이 7세기 일본 유물에 종종 표현된다는 점도 재미있다.
공예사가인 한정호 동국대 교수는 이 하트 문양이 기본적으로는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보주의 일종이라고 해석한다.
http://v.daum.net/v/2022112107050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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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가져온 거니까 재미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