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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이 말하는 이문열

  • 작성자: 꼬출든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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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1207
  • 2017.09.09
디시인사이드 도서갤러리 


 

내가 이문열을 처음 만난 것은 1982년 대구에서였다.

 

당시에 고은 시인이 광주항쟁 이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연루자로서 대구교도소에서 복역중이었다.

 

사건은 별게 아니었지만 일반면회가 금지되어 있던 당시에 동료를 격려한다는 차원에서

 

문인들과 언론인, 교수 등이 어울려 대구에 몰려갔다.

 

마침 대구에는 영남대학교를 비롯해 계명대 경북대 등지에서 교수직을 하는 지인들과 문인들도 많아서

 

형식적인 재판이 끝난 뒤에 술집에 모여보니 삼십 명이 넘었다.

 

나도 광주에서 송기숙과 함께 갔었고

 

마침 석방되어 있던 김지하와 이시영 조태일 박태순 이문구 염무웅 김종철 등등 여럿이 있었다.

 

이튿날까지 술자리가 계속되었는데 오후 뒤늦게 이문열이 대구의 기자들과 함께 찾아왔다.

 

나는 그가 민음사에서 '사람의 아들'을 냈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활발한 창작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문단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술자리가 질펀해지고 있었는데 이문열 청년이 술이 올라서 김지하와 더불어 이야기를 했다.

 

이문열은 '삼국사기의 역사적 관점이 글렀다고 그러는데 문장은 고문 중에서 가장 좋다'라고 말했다.

 

무슨 얘기인지 들으면 대충 뜻을 알 만한 말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서예 얘기를 나누다가 이문열이 '이완용은 매국노였지만 당대의 명필이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듣다못하여 나도 취한 김에 '야 이 사람아 그러면 일본군 총 맞아 죽은 동학농민군 돌쇠가 죽으면서

 

이완용은 명필이다 외치고 죽겠냐' 그랬던 기억이 난다. 김지하가 '니가 서예에 대하여 뭘 아냐'고 하자

 

나는 홧김에 '니가 배웠다는 미학이 경성제대 창설 이래 가장 쓰잘데기없는 학문이라는 건 안다'고 대꾸했고

 

술자리는 파장이 되었다.

 

 

 

 

나는 이문열에게 '이제 시작하는 모양인데 모든 건 자기 선택의 문제' 라고 말했다.

 

나는 애초에 논쟁적인 사람이 아니다.

 

공격받고 오해되는 일이 있어도 그냥 흘려버리고 잊는다.

 

이문열이 80년대 이래로 치열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체제의 편에 서서 여러 가지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하여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곤 했다.

 

솔직히 게을러서 그의 작품들은 거의 읽을 인연도 없었다.

 

 

 

 

 

내가 방북하고 베를린 거쳐서 뉴욕에 체류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마도 1992년이었다.

 

어느날 이문열이 뉴욕에 왔다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외롭던 시절이고 문인이 해외에서 나를 찾은 것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그래서 부근에 사는 동창에게 천 불을 꿔가지고 맨해튼으로 나갔다.

 

아무리 망명자 신세라지만 내가 선배이니 마땅히 술은 내가 한잔 사야겠다는 허세였다.

 

술이 몇 잔 돌아간 뒤에 이문열이 언제 귀국할 거냐고 물어 왔고

 

나는 그냥 때를 보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이문열은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북한체제의 불합리성에 대해 격렬하게 얘기를 꺼냈다.

 

나는 무덤덤하게 듣고 있다가 나도 이형과 같은 생각이라고 대꾸했다.

 

북한은 사회주의의 본질에서 멀어졌고 실상 군사파시즘의 모습을 띄는 독재체제라고.

 

이문열이 물었다. 그럼 왜 방북했냐고.

 

나는 언제나처럼 '민주화와 통일은 한몸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성숙되는 것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되며 그것이 평화적 통일의 길이다' 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피차 술이 좀 취하고 나서 이문열이 문득 월북한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나에게 북한을 통해서 좀 알아봐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나는 생각한 바가 있어서 언제 뉴욕에 다시 오느냐고 물었더니 일주일 뒤에 온다고 했다.

 

그럼 그때 연락하라고 일어둔 뒤 뉴욕 UN으로 파견된 북한대표부에 전화를 걸어

 

이문열 부친의 월북 시기와 인적사항을 적어서 팩스를 넣었다.

 

좀 기다려보라더니 사흘 뒤에 답변하는 팩스와 전화가 차례로 왔다.

 

팩스에는 이문열 부친의 간단한 이력과 가족관계가 적혀 있었고 생존해 있는 현주소도 나와 있었다.

 

일주일 후에 이문열이 뉴욕에 왔을 때 그 팩스를 보여 주었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이문열의 부친 이원철은 북한에 가서 전공을 농업경제사가 아닌 수리공학으로 바꿨다.

 

그는 남로당에 대한 숙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정도로 대단히 유능한 지식인이었다.

 

원산의 어느 공업대학에 직을 얻었고 재혼하여 오 남매를 두었다.

 

종이에는 이문열의 배 다른 아우들 이름과 직업과 나이가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던 이문열은 고개를 돌리더니 갑자기 무너지듯이 허리를 굽히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처절한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여 고개를 돌리고 눈시울을 닦았다.

 

한참 뒤에 격정의 파도가 가라앉고 이문열은 술 한 잔을 넘기고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영감쟁이, 우리 어머니는 진작 당신이 재혼할 줄 알고 있습디다'

 

나는 베이징 북한대사관에 오면 아버지와 통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의 낚시일 수도 있다.

 

라고 말해주었다.

 

이문열은 힐난조로 '황선생, 그러다가 어떻게 귀국하려고 그럽니까. 왜 월북 권유를 하고 다니쇼?'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일도 없고 그럴 사람도 아니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이 모든 분단의 억압에서 놓여나고 싶었다.

 

문학에 대한 노심초사도 벗어버리고 익명의 망명자로 살아가고픈 생각도 들었다.

 

그때까지 나는 미국의 망명 권유를 마다하고 무국적자로 체류하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 이문열의 모든 상처와 그늘은 내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누가 의도적으로 이문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게 물으면 나는 대답했다.

 

'그는 전쟁 때 폭격으로 불바다가 된 거리에서 손을 놓친 아우 같다' 라고.

 

아, 그리고 나는 뉴욕에서 이문열과 헤어지기 전에 말했다.

 

이제는 당신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그때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뻘이었고 훨씬 미숙했던 젊은이었다고.

 

 

 

 

 

 

내가 한국에 와서 구속되었을 때 이문열은 나의 석방 촉구 성명서에 서명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집회에 나와 연설하는 일에도 흔쾌히 나서 주었다.

 

이문열이 그러한 종류의 일에 동참한 것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이문열은 면회 올 때마다 자신의 책들을 한 아름씩 들여주고 갔었다.

 

그래서 나는 그제서야 이문열의 작품들을 읽었다.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영웅 시대 등.

 

 

 

 

 

 

내가 석방된 뒤에 이문열은 논객이 되어 좌충우돌 논쟁을 벌이고 홍위병 사건으로 그의 책들이 화형대에 오르기도 했다.

 

나는 분노하여 반문화적 처사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그래도 이문열에게 전화를 걸어 정치 칼럼은 그만 쓰고 소설만 쓰자고 했다.

 

언제부턴가 언론에서는 진보 보수를 갈라서 선정적으로 이문열과 나를 나란히 올려서 상징화했다.

 

나는 그것이 불편했고 이문열과 정치적인 맞수로 취급당하는 게 싫었다.

 

나는 이문열이 그놈의 물귀신 같은 '이념의 덫'에서 놓여나 자유롭게 휴머니즘의 대 벽화를 완성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나름대로 한 시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우리가 누린 모든 영욕도 그들이 준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문열의 관념 과잉인 듯한 계열의 작품들보다는 그의 자전적 요소가 엿보이는 '하구'같은 성장소설에 끌린다.

 

솔직하고 풋풋하며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소설의 '인생파'다운 수수함이 여운을 길게 남긴다.

 

언제나 그러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순정하고 비틀리지 않은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읽고 싶다.

 

이문열은 원래 그런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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