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스타 이서진이 자신의 출연료를 전액 기부하며 환경운동에 동참했다.
14일 오후 3시부터 도쿄의 일본재단 본부에서 이서진과 사회복지 활동을 하는 공익 단체인 일본재단이 공동으로 창설한 환경기금 '렛츠 트리(Let's Tree)'의 출범에 즈음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서진을 비롯해 일본재단의
사사카와 요헤이(笹川陽平) 회장
, 기금운영위원인 컬러 핑크 재팬(Color Pink Japan)의 전영선(全映宣) 회장, 그리고 제네시스(GENESIS) 그룹의 윤홍근(尹洪根) 회장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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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참고
일본 극우 정치인 사사카와 료이치와 '일본재단'
사사카와 료이치 (1899-1995 )
○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국수 광산’, ‘일본 광업’ 등의 주식을 매점하여 엄청난 부를 모으고
‘국수의용항공대’를 창설하여 ‘1인 1기 1함 격멸주의’라는 구호를 내걸었는데 차후에
이 구호가 ‘카미가제(神風) 특공대’의 창설로 이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국수의용항공대’를 창설하여 ‘1인 1기 1함 격멸주의’라는 구호를 내걸었는데 차후에
이 구호가 ‘카미가제(神風) 특공대’의 창설로 이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1945년 12월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 스가모 형무소에 투옥되었는데 사사카와는
미 통합 참모본부가 맥아더 사령관에게 내린 전범 용의자 체포 명령 중에서
‘초국가주의적, 폭력적 결사 및 애국적 비밀 결사의 주요 인물’로 체포・투옥되었다.
즉 이 사람은 한마디로 일본국수주의를 위해서라면 폭력과 테러도 불사할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미 통합 참모본부가 맥아더 사령관에게 내린 전범 용의자 체포 명령 중에서
‘초국가주의적, 폭력적 결사 및 애국적 비밀 결사의 주요 인물’로 체포・투옥되었다.
즉 이 사람은 한마디로 일본국수주의를 위해서라면 폭력과 테러도 불사할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세운
일본 재단
은 원래 일본선박진흥회에서 비롯되어서 명칭을 바꾸었는데 사사카와는 이 재단을
비롯한 각종 단체를 설립했는데 이 재단의 임원진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세력중에는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일본 교과서 왜곡의 주범 그룹 들이 대거 자리를 맡고 있다.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일본 교과서 왜곡의 주범 그룹 들이 대거 자리를 맡고 있다.
특히 이 재단들은 하바드나 예일등 유명 대학에 연구 기금을 제공하고 일본의 위상을 높이거나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서 친일적인 인사로 만들거나 일본의 역사를 왜곡시키거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삼을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바드나 예일은 이 재단 자금 거부)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서 친일적인 인사로 만들거나 일본의 역사를 왜곡시키거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삼을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바드나 예일은 이 재단 자금 거부)
일본 재단의 자금으로 연구와 활동을 하는 친일파 인물과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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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아시아 연구기금'
1995년 연세대는 ' 한일협력기금' 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재단으로 자금을 받을려고 하는데 이 자금이
사사카와의 자금이라는 것을 알고 박영재 역사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엄청난 반대를 했다. 그런데 이 반대는 그 당시 송자 총장등의 친일 세력등의 말도 안되는 논리에 묻혀서 결국 연세대는 '아시아연구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이 자금을 각종 연구 기금으로 학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연구 및 학술행사를 펼쳤다.
1995년 연세대는 ' 한일협력기금' 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재단으로 자금을 받을려고 하는데 이 자금이
사사카와의 자금이라는 것을 알고 박영재 역사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엄청난 반대를 했다. 그런데 이 반대는 그 당시 송자 총장등의 친일 세력등의 말도 안되는 논리에 묻혀서 결국 연세대는 '아시아연구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이 자금을 각종 연구 기금으로 학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연구 및 학술행사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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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안병직 서울대 교수 '토요타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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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책대학원 '사사카와 평화재단'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이 일본재단의 출연금으로 세운 ‘사사카와평화재단’으로부터 연구기금을 받아 동북아시아 안전보장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었는데 국제정책대학원의 담당자가 한 말이 더욱 웃기다.
“사사카와평화재단 쪽에서 먼저 기금 지원을 제안했고, 재단의 성격과 상관없이 순수한 학술지원이라고 판단해 기금을 받기로 했다”며 “대학원에서는 사무국 역할만 맡을 뿐 연구는 외부 연구자들이 독립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이 일본재단의 출연금으로 세운 ‘사사카와평화재단’으로부터 연구기금을 받아 동북아시아 안전보장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었는데 국제정책대학원의 담당자가 한 말이 더욱 웃기다.
“사사카와평화재단 쪽에서 먼저 기금 지원을 제안했고, 재단의 성격과 상관없이 순수한 학술지원이라고 판단해 기금을 받기로 했다”며 “대학원에서는 사무국 역할만 맡을 뿐 연구는 외부 연구자들이 독립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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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이서진 '일본 재단'
사사카와 요헤이 회장은 바로 사사카와 료이치의 아들이다.
사사카와 요헤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받은 인물로 그의 인터뷰 기사 어디를 봐도 일본의 침략이나
수탈에 대한 사죄나 반성은 커녕 오히려 그 시대의 역사적 흐름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여러차례했고
또한 아직도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 의 핵심멤버들을 일본 재단의 임원으로 임명하고 있다
수탈에 대한 사죄나 반성은 커녕 오히려 그 시대의 역사적 흐름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여러차례했고
또한 아직도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 의 핵심멤버들을 일본 재단의 임원으로 임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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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선생 가문은 경술국치 다음해인 1911년부터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을 하셨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살아서 해방후을 맞은 후손들도 이승만이에 의해 빨갱이로 몰렸고 월세금이 없어 학교에서 쫒겨나고
고아원에 보내지기도 하는등.. 처참하게 살았습니다.
고아원에 보내지기도 하는등.. 처참하게 살았습니다.
이서진은 고성 이씨 탑동파 16대손입니다.
이서진의 할아버지 이보형( 1912 - 2001)은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조선저축은행에 입행해
인사부장 검사부장 등 요직을 거쳤고 이후 서울은행장과 한국은행 감독부장, 제일은행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연배가 비슷한 이상룡선생의 손자 이병희선생이 풍찬노숙과 일제의 고문을 감내하며 독립운동을 할때
이보형선생은 일제식산은행의 돈줄 역할을 하던 조선저축은행에서 요직을 거쳤죠.
이것을 보면 두 집안은 고성 이씨라는 것만 같을 뿐 파도 다르고
가는길도 전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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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여서 퍼온다고 줄였는데...
그래도 기네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