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녀 몰리는 칭다오 노래방 실태

1회 10만원 그것도 떼이기 일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20대 남성 박모씨는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 진출한 모 한국기업의 주재원이었다. 칭다오 유흥가엔 한글 간판을 단 주점과 노래방을 쉽게 볼 수 있다. 업주는 주로 한국인과 조선족, 탈북자들이다. 박씨는 한 노래방에 갔다가 그 곳에서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소개하는 접대부 A씨를 만났다. 그녀는 노래방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손님이 원하면 성매매도 했다. 

박씨는 A씨가 맘에 들어서 자주 그녀를 보러 노래방에 갔다. 얼마 후 두 사람은 교제를 시작했다. 서로 마음을 터놓게 되면서 A씨는 자신이 조선족이 아니라 탈북자라고 고백했다. 그녀는 함경북도 온성 출신의 탈북자로,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후 여러 차례 ‘인신매매’를 당하면서 칭다오까지 오게 됐다. 그녀는 박씨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손님 접대 기본
원하면 성매매도

업주인 탈북자는 “일을 열심히 하면 3년 후에 한국에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A씨를 데려오면서 인신매매조직에게 지불한 인민폐 3만위안(525만원)을 빚으로 지웠다. 그 외에 숙식과 공안에게 바치는 뇌물까지 사채이자로 계산해 그녀에게 떠넘겼다.

같이 일하던 탈북여성이 3년을 채웠지만 한국에 보내주지 않고 다른 지역의 유흥가에 팔아넘기는 것도 봤다. 성매매로 번 돈도 주지 않았고 A씨는 손님에게 따로 받은 봉사료만 가질 수 있었다. 아무리 일을 해도 빚을 청산할 수 없는 구조였다.

교제가 2년가량 이어지면서 박씨는 A씨를 노래방에서 구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 김모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씨는 단둥의 선교사인 또 다른 김모씨에게 A씨를 보냈다. 김씨는 선교사 신분을 감추고 단둥에서 국수공장을 운영했다.


김 선교사는 A씨에게 한국에 가는 비용을 2만위안이라고 하고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 비용을 제해 나가라고 했다. 김 선교사는 매달 1500위안씩 제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숙식비는 따로 지불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14개월가량 일하면 한국에 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숙식비는 따로 계산되기 때문에 실제론 더 오래 걸릴 것으로 보였다. 공장 일은 고됐고 언제까지 일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선교사 신분으로 한국에 가는 비용을 당당히 요구하는 김씨를 신뢰할 수 없었다. A씨는 석달을 일하다가 칭다오(靑島)의 노래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박씨는 여자친구를 구출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는 고민 끝에 한국에 들어와 한 인권단체에 호소했다. 인권단체 소속의 활동가가 직접 칭다오로 날아와 A씨를 구출해 서울로 데려왔다. 비용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한국에 정착한 A씨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우연한 기회에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했는데 출연을 계기로 유명해지자, 연인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됐고 A씨는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A씨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많은 탈북여성들이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뒤 여러 차례 인신매매를 당하면서 중국 전역을 떠돈다. 나이, 외모, 신장에 따라 가격이 책정된다. 한족과 강제결혼을 하기도 하고 조선족 남성과 동거하기도 한다. 식당에서 일하거나 화상채팅,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그나마도 보수를 받지 못하거나 폭행을 당해도 탈북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신고는커녕 어디에 호소조차 할 수 없다.

유흥가서 일하는 탈북여성들 늘어
빚으로 묶여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

산둥성(山東省) 칭다오는 우리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고 시 예산에서 한국기업이 내는 세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중국의 타 지역에 비해 탈북자에게 관대하다고 알려졌다. 그러한 이유로 칭다오시엔 탈북자들이 많이 머무르고 있다. 한 조선족은 “한국인들이 칭다오 유흥가에서 돈을 잘 쓰고 현지처를 두고 흥청망청한다는 안 좋은 인식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곳 유흥가의 한글 간판을 단 술집이나 한국식 노래방에선 탈북여성 도우미를 흔히 볼 수 있다. 국내 인권단체는 칭다오시 노래방 10여개 업소에 약 200여명의 탈북여성이 일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앞서 밝혔듯 업주도 탈북자나 조선족이다. 특히 국내 ‘탈북인권단체’ 간부가 업주인 곳도 있다는 제보가 있어 충격적이다. 이들 탈북인권단체는 정부로부터 각종 보조금과 지원금을 받고 있고 전 세계로 다니면서 북한정권을 비판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북제재, 북한인권법 제정, 대북전단,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활동 등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같은 탈북동포를 “한국에 보내주겠다”고 꾀어 성매매에 내몰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와 이들을 돕는 한국인 활동가들은 “탈북자가 운영하는 노래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이들은 외국에서 같은 동포를 이용해 ‘돈벌이’에 나선 것을 자기들의 ‘치부’라고 여긴 듯 했다.

한국 갈 비용
북에 송금하려

탈북여성들은 낮엔 숙소에서 자고 밤에 일한다.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하거나 한국에 갈 비용을 모으려고 노래방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에 입국한 전체 탈북자 2만9000여명의 70%가 여성인데, 중국에서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탈북여성들이 약 ‘20만명’인 것으로 인권구호단체는 추산하고 있다. 여성들은 노래방에서 손님들을 접대한 후 손님이 원하면 근처 민박집에서 성매매를 한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여성도 부지기수다. 탈북자라고 해서 처음부터 남한행을 목표로 북한을 탈출한 것은 아니다. 보통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도강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탈북을 하면 중국 도시의 환한 불빛을 보고 깜짝 놀란다고 한다. 중국의 번영과 풍요로움에 압도되는 것이다. 처음 며칠은 신세계에 놀라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한국을 더 잘 산다고 여기는 걸 보고 다시 한 번 충격을 받는다. 이렇게 중국에서 살면서 TV와 인터넷 등을 접한 후 북한체제의 허구와 기만성을 깨닫고 남한행을 결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고된 생활이 반복되고 브로커에게 지불할 돈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들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1990년대 중반 이전엔 월경 및 탈북이 중범죄였다. 탈북을 했다가 체포되면 무시무시한 처벌이 뒤따랐다.
 

요즘은 1∼2주간의 조사를 통해 한국인과의 접촉 여부, 기독교 등의 종교를 접했는지 여부를 추궁한다. 별다른 혐의가 발견되지 않으면 몇 개월 감금 후 석방을 시킨다. 이렇게 처벌수위가 낮기 때문에 처벌을 감수하고 북한의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여성들도 있다. 무사히 한국에 온다고 해도 북한에 남겨진 가족에게 송금하거나 가족을 데려오는 브로커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여성들이 부지기수다.

한국기업 직원들이 단골손님
서로 눈맞아 교제하다 구출도

한편 지난 2011년에도 중국 칭다오에서 탈북여성들을 감금하고 성매매를 시킨 업주가 국내 경찰에 의해 검거, 재판에 넘겨진 예가 있다. 업주도 10년 전 탈북한 여성이었다.

업주 김모(40)씨는 인신매매한 탈북여성 70여명을 감금하고 성매매를 강요했다. 피해여성들은 1회당 10만원을 받고 성매매에 나섰으며 김씨는 이중 20%의 수익을 빼앗았다. 또한 성매매 실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여성들을 폭행하고, 업소를 탈출한 A씨를 찾아가 수십만원의 돈을 빼앗기도 했다.

김씨는 “한국에 가게 해주겠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유혹해 자신이 운영하는 중국 칭다오의 보도방으로 피해 여성들을 유인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탈북여성들을 도와주려고 한 것뿐”이라며 “갈 곳 없는 애들을 내가 보호해주지 않았나”라며 범행을 부인했다. 그녀는 중국 공안당국의 수사를 피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체포됐다.

경찰이 타국에서 북한인을 대상으로 벌어진 범죄에 대해 수사를 진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헌법상 북한인도 자국민으로 보고 있다”며 “특이한 경우이긴 하지만 수십 명의 탈북여성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업차 칭다오에 간 한국인 사업가의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해 업주를 체포하고 피해여성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

중 업소 종사 
탈북녀 20만명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탈북여성들이 비자발적으로 인신매매에 의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문제가 돼 왔으나 중국과의 외교 마찰이 일어날 수 있어서 실태 파악에 나서는 등 전문적으로 조사하기가 어려웠다”면서 “중국 측은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불법입국자로 보고 북한에 송환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국제사회와 공조해 중국 정부에게 강제송환하지 말고 국제규범을 준수하라고 꾸준히 요구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난민 지위를 부여해 한국에 오게 하긴 어렵지만 탈북자가 입국을 원하면 언제든 전원수용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고 답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경기도 도농복합지역 탈북자 티켓다방 성업


중국 뿐 아니라 국내에도 탈북여성을 고용한 유흥업소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커피 배달과 성매매를 알선하는 소위 ‘티켓다방’이 경기도 안성, 화성, 평택, 용인, 안산 등지에서 불법영업 중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이 탈북자로 알려져 있다. 업주도 같은 탈북자다. 

업주는 평소 알고 지내거나 지인에게 소개받은 탈북여성 4∼8명을 고용해 다방 내에서 술을 판매하고 접대토록 하고 있다. 시간당 2만∼5만원 상당의 티켓을 끊고 받은 돈은 업주와 반씩 나누는데, 매월 평균 3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업주들은 종업원들에게 결근비와 지각비 등의 명목으로 수시로 벌금을 걷었다. 여성들은 30대 중반∼40대 중반으로, 주로 지역의 50∼70대 장·노년층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한 탈북자단체장이 용인과 이천에 노래방을 소유하고 있다는 제보도 받았다. 이 노래방은 티켓다방과 마찬가지로 속칭 ‘2차’(성매매)가 가능한 곳으로 역시 탈북여성들을 고용해 불법영업 중이다. 이 단체장은 종편방송 등에 자주 출연했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탈북자다.

또 용인시 백암면 지역 티켓다방에도 탈북남성이 탈북여성을 고용해 불법영업 중이라는 제보가 나왔다. 백암면 지역엔 약 40여개의 티켓다방이 있는데 다방마다 평균 5명씩을 고용해 약 200여명의 탈북여성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대부분 탈북동포가 운영 중이다.

한 탈북자는 “지역민들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하다고 들었다”면서 “지가가 갑자기 올라 벼락부자가 되면서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어진 지역민들이 많은데 이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한국에 와서 처음엔 식당일 등을 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먹고 살기가 어려워 티켓다방을 하게 됐다”며 “한국사람들도 다 불법영업을 하는데 왜 탈북자만 단속하느냐”고 항의했다.

탈북자마다 전담 경찰관이 있지만 경찰 1명당 평균 수십 명을 관리하다 보니 한명 한명 세심하게 신경 쓰기가 어렵다. 탈북자들이 모이는 사이트에선 담당 경찰에 대한 불만과 평가가 올라와 있다.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있고 모르는 것을 잘 가르쳐 준다는 의견이 다수이나 “담당 경찰관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고 누구인지 모른다” “귀찮게 한다” “가르치려 든다” “간섭이 심하다” 등의 의견도 눈에 띄었다.

한 탈북자단체장은 이들이 꿈에 그리던 남한행을 이뤘음에도 불법적인 일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차별과 편견 때문에 탈북자들이 조직생활을 하기가 어렵다”면서 “어렵게 취직을 해도 조금 다니다가 그만 두곤 한다. 탈북남성들의 경우 여성보다 더 그런 편견에 노출돼 있어 대부분 직장을 다니지 못하는데 그러다 보니 그런 일을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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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오픈런 관전 포인트 ‘셋’

22대 국회 오픈런 관전 포인트 ‘셋’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최근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지만 꽁꽁 얼어붙은 정국은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여야의 날 선 공방이 22대 국회를 겨냥하면서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도 첩첩산중이다. 개원과 동시에 300명의 숨 가쁜 레이스가 시작될 예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1대 국회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결국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은 끝내 벗지 못했다. 21대 국회 후반기부터 시작된 여야의 특검법 공방과 용산의 거부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탓이다. 상임위 줄다리기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이하 채 상병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삼권분립에 따라 해당 법안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9일, 윤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서 밝힌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진행 중인 수사와 사법 절차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로 돌아간 채 상병 특검법은 오는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서 재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서 18표 이상의 이탈표가 필요한 만큼 여권 내에서는 가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22대 국회 개원 즉시 1호 법안으로 재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만큼 해당 법안은 다음 달 이내로 재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쌍특검’도 수면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민주당은 기존 법안에 포함됐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더해 22대 국회 개원 즉시 재발의하겠다고 예고해 왔다. 이 밖에도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특검법’ ‘한동훈 특검법’ 등을 쏟아내면서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서 “야당이 특검법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끝까지 추진될 법안은 극소수일 것”이라며 “특검 하나를 위해 드는 돈과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실제 특검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 단어만으로도 무게가 있기 때문에 효과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특검 정국을 예고한 만큼 주요 상임위 배분이 앞으로의 정국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원구성 여부가 22대 국회의 첫 번째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검법-거부권 무한 도돌이표 야 ‘법사위·운영위’ 싹쓸이? 민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와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 위원장 자리를 싹쓸이하겠다며 강경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국민의힘이 견제에 나서면서 상임위 쟁탈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동안 법사위는 다수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원내 2당이 가져가는 게 관례였다. 운영위는 대통령실을 상대로 국정감사를 진행하거나 예산안 등을 심사할 수 있어 여당의 몫으로 여겼다. 하지만 민주당은 21대 국회 후반기에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 국회가 제대로 일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4·10 총선 민의를 받들어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 두 상임위를 민주당이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그동안 지켜온 여야 간의 견제와 균형을 깨트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회 운영위원장은 1988년 13대 국회부터 집권당이 맡아왔다”며 “운영위와 법사위까지 독식하겠다는 민주당의 발상은 입법 독재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여야 원내대표가 오찬 회동을 통해 원 구성을 논의 테이블로 올렸지만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빈손으로 돌아섰다. 22대 국회 첫 본회의는 내달 5일 열릴 예정으로 원구성은 내달 7일까지 협상을 마쳐야 한다. 그러나 양당 모두 협상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해당 논의는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큰 걸음 내딛을까? 두 번째 쟁점은 개헌이다. 이전부터 정치권에선 37년째 그대로인 ‘87년 헌법’을 손보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정부와 야당의 이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만큼 개헌 논의는 흐지부지 끝나기 일쑤였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향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22대 국회 전반기에 걸쳐 개헌 요구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4년 중임제에 불을 붙인 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이다. 대통령의 임기를 현행 5년서 4년으로 단축해 대선과 지방선거 시기를 맞춘다면 전국 단위 선거 횟수가 줄어들고, 이에 따른 국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게 이유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포함한 세븐(7)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부마 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의 헌법 전문 수록 ▲동일가치노동, 동일수준 임금 명문화 ▲검사 영장 신청권 삭제 ▲사회권 강화 일반 조항 신설 ▲‘수도는 법률로 정한다’ 조항 신설 ▲토지 공개념 강화 등을 요구했다. 개혁신당 역시 궤를 같이하며 4년 중임제에 군불을 때고 있지만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해당 문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다만 혁신당이 앞서 주장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권한 남용 제한과 무(無)당적화를 겨냥한 원(one) 포인트 개헌에 집중했다. 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입법부와 행정부의 건강한 관계를 제도화하고 정치와 국정에 헌법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 남용 제한과 무당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거부권 제안에 대해서는 채 상병 특검법을 언급하며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삼권분립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면서 남용되고 있는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한은 이제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5·18 개헌에 공감대를 보이면서도 원 포인트 개헌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원 포인트가 아닌 포괄적 개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몸 푸는 한 수습하는 이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이 같은 민주당의 주장에 “헌법 전문은 선언적 성격인데 그것만 수정하는 것으로 아쉬움이 해소될까 이런 생각이 있다”며 “이왕 개헌을 한다면 범위를 잡고 근본적 문제를 함께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 4년 중임제 등을 둘러싼 개헌 논의는 22대 국회 내내 거론된 것으로 예측된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범야권이 만장일치로 개헌안에 동의해도 총 192석에 그친다. 여당인 국민의힘서 8명의 이탈표가 나와야 하는 만큼 현실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지막은 여의도를 배경으로 한 이재명-한동훈의 파워게임이다.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서 민주당 이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앞날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온갖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한 전 비대위원장의 복귀 여부다. 총선 패배 이후 여의도를 떠났지만 사진 한 장, 말 한마디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가 되면서 전당대회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윤정부의 정책을 꼬집는 글을 게재했다.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해외 직접구매 금지 정책에 대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는 작심 발언을 한 것이다. 지난달 20일에는 ‘윤석열 배신론’이 불거지자 이를 의식한 듯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뿐”이라며 친윤(친 윤석열)계를 겨냥했다. 용산에 들이닥친 개헌 요구 한동훈-이재명 벌써 기싸움 현재 국민의힘 상황을 종합해보면 전당대회 개최 시기는 7월 말에서 8월 초로 예상된다. 비윤(비 윤석열)계까지 목소리를 얹기 시작한 만큼 어수선한 분위기 속 당심이 어느 쪽으로 흐를지 이목이 쏠린다. 반면 민주당은 이 대표의 연임론을 굳히는 모양새다. 국회의장 선거로 인해 ‘명심불패’ 공식이 깨졌다는 평이 나왔지만 당의 주요 인사들이 여론의 흐름을 꺾으면서 연임론을 다시 한번 궤도에 올렸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이 대표가 연임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사당화라고 지적을 하는데, 당 대표란 당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이가 선출되는 것 아닌가”라며 “그런 의미서 이 대표의 연임론이 제기되는 건 어떠한 이유에서든 당이 다시 한번 이재명이란 리더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장 선거의 여파로 강성 지지층이 대거 탈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민주당은 진화에 나섰다. 이 대표는 ‘당원 권리 강화’를 내세웠다. 민주당 민형배 전략기획위원장은 당선인이 한데 모인 초선 워크숍서 당원권 강화를 골자로 한 ‘당원민주주의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민주당이 당원 달래기에 나서자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이번 사태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승화시켰다고 내다봤다. 민주당 권리당원 중 대다수는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만큼 당원의 권리를 강화함으로써 당의 장악력을 높이고 자연스레 당 대표 단일 후보로 우뚝 섰다는 설명이다. 이로써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8월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 전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에 출마하고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22대 국회는 지난 총선에 이어 한-이 갈등 제2라운드로 들어서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는 만큼 22대 국회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초반부터 군기 바짝 21대 정국을 집어삼킨 현안은 고스란히 22대 국회로 넘어왔다. 민주당이 1호 민생 법안으로 내놓은 ‘전국민 25만원 지원금’과 연금개혁 논란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다. 결국 21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라는 꼬리표를 잘라내지 못했다. 최근에는 민주당 초선을 중심으로 한 집단행동이 몸집을 키우면서 여권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22대 국회 역시 강대강으로 흘러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4·10총선 유세 현장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외쳐대던 ‘일하는 국회’가 실현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