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 못 잡았다니”…신체접촉 핑계에 뒷북대응한 경찰

입력
수정2019.10.20. 오후 5:50
기사원문
조효석 기자
TALK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대진연, 수사 경찰관 연락처 공개하고 “항의전화 해달라”
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방위비분담금 협상 관련 기습 농성을 하기 위해 담벼락을 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중구 미국 대사관저에 지난 18일 시위대가 무단침입한 사건을 두고 경찰의 안일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시위대가 철제 사다리를 들고와 대사관저 담을 넘을 때까지 사실상 방치한데다 관저 안에서 버티는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바로 퇴거조치를 하지 않고 내버려뒀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18일 오후 3시쯤 미 대사관저 담을 넘어 침입했다. 먼저 시위대 19명 중 남성 2명이 의무경찰을 막아서고 나머지 17명이 미리 준비해온 철제 사다리 2개를 타고 기습적으로 담을 넘었다. 19명 중 여성이 11명, 남성은 8명이었다. 담을 넘은 17명은 마당을 가로질러 관저 현관에 도착해 “주한미군은 점령군”이라고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미 대사관의 허락을 받은 뒤 관저로 진입해 현장에 있던 시위대 중 남성 6명을 모두 체포했지만 여성 11명은 체포하지 않고 여성 경찰관 병력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남성 경찰관들이 체포를 시도했다가 신체접촉에 따라 자칫 시비가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 사이 시위대는 시위 영상을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다. 무단침입으로 목적했던 바를 달성한 셈이다.

이 때문에 경찰이 성별을 핑계로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강력사건이 벌어질 때도 현행범이 여성일 경우 범행을 방치해야 하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찰 관계자는 20일 “시위 진압시 성별 신체접촉에 따른 시비는 경찰에게 민감한 문제”라며 “현장에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여성 시위자를 여성 경관이 제압하는 게 불문율로 정착됐다”고 말했다. 또 “생명이 위급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다른 문제를 일으킬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여성 경찰을 기다렸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당시 대사관을 경비하던 인력 30여명 중에는 시위대를 제압할 여성 경찰관 인력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국 경찰은 채용 때부터 남녀를 구분해 뽑고 업무를 배정할 때도 위험도에 따라 달리 배치한다”며 “여성 경관 비율도 15%에 못 미쳐 언제든 비슷한 문제가 일어날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애초 사다리를 두 개씩이나 들고 접근해도 제지 못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면서 “안일하게 대처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체포된 19명 가운데 여성 2명, 남성 7명 총 9명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9명 중 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은 7명의 영장실질심사를 21일 열 예정이다.

대진연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남대문서 A경위의 소속과 이름, 전화번호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항의전화를 해달라’는 글을 남겼다. 대진연은 “남대문서에서 주동자를 찾는다며 면회를 금지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들은 경찰의 ‘유치인 접견 금지 요청’ 공문도 그대로 올렸다.

서울경찰청은 대사관저 경비 강화 등 뒷북대응에 나섰다. 경찰은 미 대사관과 협의해 기존 대사관저를 경비하는 경찰 병력인 의경 2개 소대에 경찰관 1개 중대를 추가하기로 했다. 또 미 대사관과 핫라인을 구축하고 경찰 병력투입 절차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또 체포한 피의자 외 공범이나 배후 지시자 여부를 수사하는 한편 기습시위 징후 조기 감지를 위한 경찰내부 체계를 구축하고 사다리나 밧줄 등 월담 수단별 차단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국민일보 채널 구독하기]
[취향저격 뉴스는 여기] [의뢰하세요 취재대행소 왱]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