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은 중국서 반포, 한자 발음기호" 황당한 검정고시 교재

송주상 기자 입력 2021. 10. 19. 01:13 수정 2021. 10. 1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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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2021 외솔한글한마당'이 열리는 울산시 중구 문화의 거리에 대형 훈민정음 모형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한 출판사가 내놓은 독학사 교양 국어 교재에 “훈민정음은 한자의 발음기호”라며 “한국어를 표기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라는 내용이 담긴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독학사는 대학교 검정고시인 독학학위제로 받을 수 있는 학위다.

이어 교재는 “훈민정음은 고려 때부터 사용하던 언문”이라며 “중국에 반포했다”라고 했다.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지자 출판사는 “구매한 도서는 무상 교환 및 환불 보상하며 재고 도서는 전량 폐기하겠다”라고 사과했다.

1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훈민정음 역사 왜곡한 출판사 신고한 후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A씨는 최근 논란이 된 한 출판사를 국민신문고에 신고를 했고 결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 황당한 교재 내용 “훈민정음은 한자의 발음기호, 중국에 반포”···출판사 즉시 사과

논란은 지난 10일 한 네티즌이 출판사 S사의 독학사 교양 국어 교재에 훈민정음에 관한 이상한 내용을 봤다는 글을 올리며 시작됐다. 이 네티즌이 올린 사진에 따르면 해당 교재는 ‘훈민정음과 한자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훈민정음은 한자의 발음기호”라고 했다.

이어 “훈민정음은 중국어(문자)를 통일하기 위해 만들었다”라며 ”한국어를 표기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자(한자)의 발음을 쉽게 표기함으로써 자음을 정립해 중국어를 통일하는 것이 훈민정음의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한 네티즌이 "교재 내용이 이상하다"라며 올린 내용의 일부. 훈민정음에 관한 황당한 주장이 나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교재는 “훈민정음은 언문(한글)으로 만들었다”라며 “지금 한글이라 부르는 것은 언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언문은 최소 고려 때부터 사용했다”라고 했다. 또 “훈민정음은 중국에 반포했다”라며 “이두를 대체해 사용, 한문서적을 언해(諺解), 한자의 발음을 표기 등 3가지 정책은 모두 중국에서 시행했다”라고 밝혔다.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S사는 잘못을 인정하며 “해당 도서의 판매를 즉시 중단한다”라고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또 “재고도서는 전량 폐기하며, 해당 도서로 학습 중인 독자에게 수정한 도서로 무상 교환 및 환불 보상하겠다”라고 했다.

◆ 분노한 네티즌들, 행동 나섰다···“일종의 동북공정” 주장도

이러한 상황을 본 A씨는 “최근 우리나라 문화 곳곳에서 동북공정이 이뤄진다”라며 “심각성을 전하고자 일부러 외교부에 신고했다”라고 신고 배경을 밝혔다. 해당 신고는 독학학위제를 담당하는 교육부 산하 국가평생교육진흥원(국평원)으로 이전돼 처리됐다.

A씨가 첨부한 국민신문고 처리 결과에 따르면 국평원은 “민간 출판사에서 출판한 특정교재의 역사 왜곡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민간 출판사를 관리·감독할 권한이 없다”라면서 “신고내용이 심각해 해당 출판사에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고 처리 경과를 확인, 요구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해당 출판사는 다음 주(10월 넷째주) 중 재출판한 교재를 발간한다”라며 “출판사의 사과문대로 처리될 것이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확인을 받았다”라고 했다.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한 교재에 관해 국민신문고로 신고한 네티즌이 받은 답변. /온라인 커뮤니티

이를 본 네티즌들은 “독학사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역사 왜곡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 “최초로 교재 작성한 사람을 공개해야 한다”, “가짜 뉴스만 지적할 일이 아니다”, “지금(16일)은 사과문이 보이지 않는다”, “일부 국가가 주장하는 역사 왜곡은 국가 차원에서 막아야 한다” 등의 반응을 남겼다.

또 다른 네티즌들도 출판사, 국평원을 비롯해 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역사 왜곡, 막아야 한다”라는 취지의 민원을 넣었다고 밝혔다.

◆ 국평원·문체부 “미리 확인할 법적 권한 없다”

이번 역사 왜곡 논란에 관해 국평원과 문화체육관광부는 교재 내용을 미리 검토할 법적 권한이 없다며 재발 가능성을 지적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라 유해간행물은 국가 체재 전복 활동 고무, 음란한 내용, 폭력 등으로 제한됐다”라며 “이번 건은 황당한 내용이지만 법적으로 미리 검토하고 제재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국평원 관계자도 비슷한 대답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국평원은 독학학위제를 담당한다”라며 “시험 범위를 제공하고 시험을 내는 역할이지, 민간 출판사의 교재 내용을 모두 확인하지 않는다. 권한도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례도 출판사가 협조하지 않았다면 기관 차원에서 강제로 수정을 할 수 없다”라며 “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한편 독학사는 국평원이 담당하는 독학학위제로 취득할 수 있는 학위의 명칭이다. 총 4번의 시험을 모두 통과하면 교육부장관이 수여하는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독학사 전체 지원자는 약 3만명이며 합격률은 3%내외로 알려졌다.

이번에 한 출판사의 역사 왜곡으로 논란된 교양 국어는 독학사 첫번째 시험 과목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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