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2002’… 기적적인 월드컵 16강 진출에 하나된 “대∼한민국!” [2022 카타르 월드컵]

유지혜 2022. 12. 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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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우와아아아!”

황희찬의 오른발 슈팅이 포르투갈의 골망을 흔든 지난 3일 오전 1시47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술집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뒤흔들렸다. 일행들과 삼삼오오 앉아있던 시민들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옆 테이블 사람들과 얼싸안았다. “우리가 포르투갈을 이긴다니”, “우리 진짜 16강 가는 거야?” 등 기쁨이 담긴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난 2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최종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 포르투갈을 꺾고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한국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환호는 잠시. “우루과이가 가나를 2점 차로 이기고 있어요!”라는 소리와 함께 TV 화면은 가나와 우루과이의 경기로 뒤바뀌었다. 우루과이가 가나를 3점 차로 이기면 16강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 시민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가나”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경기가 추가시간을 넘어 계속되자 “끝내라!” “(휘슬) 불어!” 고함이 터져 나왔다. 마침내 16강 진출이 확정된 순간 이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다시 한 번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마지막 조별예선 포르투갈전이 열린 3일 오전 서울 시내 곳곳은 시민들의 응원 열기로 달아올랐다.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 대형 스크린 앞에는 체감온도 영하 3.5℃의 한파 속에도 ‘붉은악마’ 8000여명이 모여들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국민들의 간절한 응원에 힘입어 한국 축구 대표팀은 2-1 역전승을 거두며 극적으로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기적적인 16강 진출의 감동은 주말 내내 이어졌다. 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아직 감동이 가시지 않아 하이라이트를 돌려 보고 있다”, “브라질과 16강전을 응원하기 위해 ‘본방 사수’하겠다”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들이 올린 관련 영상의 조회 수가 급증하고, 실시간 공유도 이어졌다. 직장인 이모(29)씨는 “주말 내내 흥분 상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스포츠 게시판만 새로고침하며 글들을 보고 있다”며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렵다고 예상한 16강에 진출했는데 그 과정이 극적이었다. 스포츠의 묘미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때에 있는데 10% 미만으로 예상됐던 확률을 뛰어넘은 결과가 주는 반전효과가 컸다”며 “이제까지는 ‘어떻게 하면 이길까’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하고 한국 축구가 바뀌니 보는 관점도 달라지면서 국민도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 자체를 즐기게 됐다”고 이번 월드컵 16강 진출이 갖는 의미를 평가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최종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 결승골을 성공시킨 황희찬이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후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외신들도 일제히 찬사를 보냈다. AP통신은 “한국이 타이 브레이커(다득점에 우위를 주는 규정)로 우루과이를 조 3위(탈락)로 밀어낸 것은 월드컵 92년 역사에서 가장 격정적으로 마무리된 조별리그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AFP통신도 경기 종료 후 한국 선수들이 경기장 한복판에서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를 휴대폰으로 지켜보며 16강 진출 확정을 기다리는 초조한 모습을 역사적 명승부의 상징으로 자세히 소개했다.

영국 BBC방송은 한국이 “나쁜 스타트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았다”며 극적인 역전승을 낚아낸 한국 선수들의 투혼을 주목했다. 한국은 포르투갈과의 경기 시작 5분 만에 골을 내줬지만 1-1로 따라붙은 뒤 후반 추가시간에 손흥민과 황희찬의 80m 전력질주 벼락골로 2-1 역전승을 거뒀다. BBC는 “경기 종료 후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가 끝난 뒤 한국팀은 ‘진짜 파티’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경기장 한쪽에서 기쁨의 눈물을 쏟을 때 16강이 좌절된 우루과이는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상반된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글로벌 축구팬들에게 숨 막히는 명승부를 선사한 한국 선수들의 표정과 저력도 소개했다. AFP통신은 “손흥민이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며 손흥민이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멋진 도움을 기록했다”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 역시 “손흥민은 이번 월드컵에서 아직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팀인 한국이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16강에 진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손흥민은 한국이 4강에 올랐던 2002년 월드컵 정신을 소환했다”며 “한국인 특유의 끈질긴 에너지로 유감없는 경기를 펼쳤다”고 평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12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한 축구 대표팀을 격려했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파울루 벤투 감독, 주장 손흥민과 전화 통화를 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월드컵 16강전에 진출한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 및 손흥민 선수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먼저 벤투 감독에게 “우리 팀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며 “선수들 인터뷰를 보니 감독님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감독님의 리더십이 선수들을 단결시켜 이런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주셔서 영광이고, 대통령께서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윤 대통령은 주장 손흥민과도 별도로 통화하고 “얼굴은 괜찮은가. 손흥민 선수가 혹시라도 더 다치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했다”며 “손흥민 선수가 주장으로 동료들과 후배들을 잘 리드해서 경기를 보는데 뿌듯했다”고 격려했다. 손흥민은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잘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나란히 16강에 진출한 한국과 일본이 모두 승리를 거둬야 볼 수 있는 ‘8강 한일전’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기하라 세이지(木原誠二) 일본 관방부장관은 월드컵 8강에서 한국과 일본 대표팀이 맞붙기를 바란다고 4일 밝혔다. 기하라 부장관은 이날 일본 민영방송 후지TV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과 일본이 16강전에서 강호를 꺾고 승리하는 것을 전제로 “‘베스트 4’를 걸고 싸우는 한일전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만약 한국이 브라질을, 일본이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모두 이기면 오는 10일 오전 0시 사상 최초의 월드컵 본선 한일전이 펼쳐진다.

유지혜·김병관·장한서·이우중·이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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