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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MLB] 사인훔치기 가해자와 피해자들

2020.01.14. 오후 01:35

해외야구 김형준 MBC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마이크 파이어스(오클랜드)의 폭로에서 시작된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불법적인 사인훔치기 사건(쓰레기통 스캔들)의 징계 결과가 발표됐다.

휴스턴은 제프 루나우(53) 단장과 A J 힌치(45) 감독이 1년 자격 정지를 받았으며 500만 달러의 벌금과 함께 2020년과 2021년 드래프트의 1,2라운드 지명권이 박탈됐다. 뒤이어 짐 크레인 휴스턴 구단주가 루나우와 힌치의 해고를 발표하면서 둘은 메이저리그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사진. 사인훔치기의 두 주역? 카를로스 벨트란과 제프 루나우).

사무국은 2017년 휴스턴의 벤치코치로서 사인훔치기의 주동적인 역할을 했으며 2018년 보스턴으로 건너가 역시 불법적인 사인훔치기를 한 보스턴 알렉스 코라(44) 감독에게도 징계를 내릴 전망이다.

야구에서는 사인훔치기가 늘 시도된다. 2루에 주자가 나가면 포수가 사인을 복잡하게 내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사례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불법 장비를 동원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인훔치기를 한 팀은 이 둘 만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2017년 휴스턴과 2018년 보스턴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이 월드시리즈 우승 팀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배리 본즈, 로저 클레멘스, 마크 맥과이어, 라파엘 팔메이로,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이빗 오티스, 매니 라미레스, 라이언 브론, 로빈슨 카노 같은 선수들이 금지약물 사용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것과 같다.

2년에 걸친 사인 스캔들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알아봤다.

[가해자]

제프 루나우 & 2017 휴스턴

제프 루나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고의 단장으로 평가 받았던 인물. 멕시코 출신으로 스페인어에 능통한 루나우는 경영대학원 졸업 후 매킨지 경영 컨설턴트를 거쳐 야구계에 투신했다. 테오 엡스타인(보스턴 & 시카고 컵스) 존 다니엘스(텍사스) 앤드류 프리드먼(탬파베이 & LA 다저스)의 뒤를 잇는 비선수 출신 엘리트형 단장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였다.

루나우의 성공 가도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시작됐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드래프트를 주관하는 스카우팅 디렉터로서 드래프트 대박을 터뜨린 것. 루나우의 세인트루이스는 2005-2007년 드래프트에서 24명을 데뷔시켰는데 같은 기간 휴스턴은 더 좋은 지명권을 가지고도 네 명에 그쳤다. 2013년에는 메이저리그 개막전 로스터 572명 중 21명이 루나우 지명선수이기도 했다.

2011년 12월 휴스턴의 단장이 된 루나우는 유례없었던 강도 높은 리빌딩을 통해 '탱킹'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2011~2014년 승률이 0.358(232승416패)로 메이저리그 꼴찌였던 휴스턴은 2015~2019년 승률이 0.594(481승329패)로 0.598인 LA 다저스(485승326패)에 이어 2위에 오르는 대반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2017년 다저스를 꺾음으로써 1962년 창단 후 최초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이너리거인 조지 스프링어에게 7년 2300만 달러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메이저리그에 올리지 않겠다고 협박한 것, 2014년 브래디 에이켄 전체 1순위 지명 논란, 토론토에서 심각한 수준의 가정폭력으로 75경기 출장정지를 받은 상태에 있었던 로베르토 오수나를 트레이드로 데려오는 등의 구설수에 휩싸이며 성적을 위해서는 과정을 무시하는 성적지상주의 면도 보여줬다.

루나우의 휴스턴은 타자는 길러쓰고(호세 알투베, 조지 스프링어, 카를로스 코레아, 알렉스 브레그먼) 투수는 영입하는(찰리 모튼, 저스틴 벌랜더, 게릿 콜, 잭 그레인키) 테오 엡스타인의 시카고 컵스 우승 모델을 따랐다. 그 과정에서 놀라웠던 것은 한때 공갈포 타선이었던 휴스턴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장타와 삼진 회피라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튀는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휴스턴 타선의 장타율 변화

2014 [SLG] 0.383 (ML 15위)
2015 [SLG] 0.437 (ML 2위)
2016 [SLG] 0.417 (ML 15위)
2017 [SLG] 0.478 (ML 1위)
2018 [SLG] 0.425 (ML 8위)
2019 [SLG] 0.495 (ML 1위)

휴스턴의 최소 삼진율 변화

2014 [삼진] 23.8% (ML 29위)
2015 [삼진] 22.9% (ML 29위)
2016 [삼진] 23.4% (ML 29위)
2017 [삼진] 17.3% (ML 1위)
2018 [삼진] 19.5% (ML 2위)
2019 [삼진] 18.2% (ML 1위)

2014 [SLG] 15위 [삼진] 29위
2015 [SLG] 02위 [삼진] 29위
2016 [SLG] 15위 [삼진] 29위
2017 [SLG] 01위 [삼진] 01위
2018 [SLG] 08위 [삼진] 02위
2019 [SLG] 01위 [삼진] 01위

보스턴 양키스 다저스를 차례대로 꺾고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한 2017년. 휴스턴 타선은 나머지 29팀과 다른 차원의 공격력을 자랑했다(wRC+ 121). 지난 시즌에는 100이 평균인 조정득점생산력(wRC+)에서 125를 기록함으로써 전설의 1927년 뉴욕 양키스(126)에 이어 역대 2위에 올랐다.

물론 휴스턴은 삼진율이 높은 타자를 선구안이 좋은 타자로 바꾸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하지만 사인훔치기가 사실이었음이 밝혀진 이상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특히 홈경기에서의 부정행위가 확인된 휴스턴은 2017년 포스트시즌 홈 9경기에서 8승1패 18홈런(0.273) 원정 9경기에서 3승6패 9홈런(0.208)을 기록했다.

루나우는 본인은 몰랐던 일이라고 끝까지 발뺌했다. 그러나 구단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단장이었던 만큼 이 모든 사태의 본원으로 지목 받게 됐다. 또한 애리조나 감독 시절의 실패(2009년 58승75패, 2010년 31승48패)를 멋지게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A J 힌치 감독 역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알렉스 코라 & 2018 보스턴

알렉스 코라는 2017년 휴스턴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2018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감독이 됐다. 그리고 휴스턴에서의 비리를 보스턴에 도입했다. 보스턴은 비디오 분석실에서 상대 팀의 사인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주자의 움직임을 통해 타자에게 알렸다. 이제 와서 궁금증이 풀리는 점은 2018년 ALCS에서 친정팀 휴스턴을 만난 코라가 경기 감독관에게 휴스턴 직원이 우리 덕아웃을 촬영하고 있다고 항의하는 등 휴스턴의 행동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이다(사진. 알렉스 코라).


2018년 보스턴은 메이저리그 득점 1위에 오르며 1901년 창단 후 팀 역대 최다인 108승을 올렸다. 포스트시즌 때는 사무국 직원이 비디오 분석실을 감시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것으로 2018년 우승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리고 휴스턴과 보스턴에 모두 몸을 담았으며 사인훔치기의 주역으로 지목된 코라 역시 퇴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피해자]

LA 다저스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준우승에 그침으로써 2017년 휴스턴과 2018년 보스턴에게 패해 월드시리즈 진출이 무산된 뉴욕 양키스와 함께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팀.

특히 7차전 끝에 패한 2017년의 경우 3차전에서 1.2이닝 6피안타 4실점 패전, 7차전에서 1.2이닝 5실점 4자책 패전으로 월드시리즈 역대 최악의 투수가 된 다르빗슈 유(현 시카고 컵스)는 카를로스 벨트란(현 뉴욕 메츠 감독)이 알아낸 티핑이 아니라 사인훔치기의 희생양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르빗슈는 휴스턴의 징계 결과가 발표되자 "다저스가 우승 퍼레이드를 하게 되면 내 유니폼도 준비해 줄 거냐"는 농담을 했다. 또한 2017년 홈 1차전에서 7이닝 11K 1실점(3안타 무볼넷) 대활약을 하고 원정 5차전에서 4.2이닝 6실점(4안타 3볼넷)으로 무너진 클레이튼 커쇼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면 다저스는 '투자를 하지 않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대해 적어도 2017년과 2018년은 비켜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다저스는 양키스와 마찬가지로 휴스턴(그리고 추후 징계를 받을 보스턴)의 드래프트 지명권을 가지고 온다고 하는 등의 직접적인 보상은 얻을 수 없을 전망이다.

애런 저지 & 마이크 트라웃

2017년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는 52홈런 114타점 9도루(.284 .442 .627)를 기록하고도 24홈런 81타점 32도루의 호세 알투베(.346 .410 .547)에게 밀려 MVP 2위에 그쳤다. 승리기여도는 레퍼런스 버전이 8.1로 같았으며, 팬그래프 버전은 저지가 8.3으로 알투베의 7.6을 적지 않은 차이로 앞섰다. 그러나 투표는 박빙이 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알투베가 1위 표 27장을 가져감으로써 두 장에 그친 저지를 완벽하게 제쳤다(나머지 한 장은 클리블랜드 호세 라미레스).

첫 세 시즌의 홈런수가 7개 5개 7개였던 알투베는 벌크업 없이도 2015년 15개와 2016년 2017년 각각 24개 그리고 지난해는 31개를 기록함으로써 키 5피트6인치(168cm) 이하 타자로는 핵 윌슨에 이어 역대 두번째 30홈런을 달성했다.

물론 알투베의 놀라운 활약(통산 .315 .364 .463)에 사인훔치기가 얼만큼 도움을 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게 사실이라면 2017년 저지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다. 약물선수인 알렉스 로드리게스(2005 2007)를 제외할 경우 양키스의 마지막 리그 MVP는 1985년 돈 매팅리다.

이는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과 무키 베츠(보스턴)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2018년 베츠(.346 .438 .640 32홈런 80타점 30도루)는 트라웃(.312 .460 .628 39홈런 79타점 24도루)을 1위 표 28대1로 제치고(나머지 한 장은 제이디 마르티네스) 아메리칸리그 MVP가 됐다. 반면 트라웃은 2012-2013년(미겔 카브레라)과 2015년(조시 도널슨)에 이어 통산 네 번째 2위에 그쳤다.

베츠는 레퍼런스(베츠 10.9 트라웃 10.2)와 팬그래프(베츠 10.4 트라웃 9.8) 승리기여도에서 모두 앞섰으며 포스트시즌 진출 팀 선수였다. 때문에 베츠의 2018년 수상은 알투베의 2017년 수상에 비하면 훨씬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시즌 베츠는 2018년보다 크게 떨어지는 성적을 냄으로써 사인훔치기 덕분이 아니었냐는 의심을 사게 됐다.

조정득점생산력 비교

2014 [베츠] 129 [트라웃] 167
2015 [베츠] 120 [트라웃] 171
2016 [베츠] 136 [트라웃] 170
2017 [베츠] 107 [트라웃] 180
2018 [베츠] 185 [트라웃] 190
2019 [베츠] 135 [트라웃] 180

필자가 2018년 베츠에 대해 가장 놀랐던 장면은 7월13일 토론토 J A 햅(현 뉴욕 양키스)와의 대결이었다. 당시 베츠는 7구와 8구 체인지업을 포함해 햅이 구석 구석 찌른 공들을 모두 파울로 만들어낸 끝에 햅이 완벽하게 무릎 쪽으로 꽂아넣은 몸쪽 낮은 95.2마일 패스트볼을 담장 밖으로 넘겨 만루홈런을 만들어냈다. 말 그대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만약 베츠가 2018년에 버금가는 시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베츠의 2018년에 대한 의심을 거둬들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흘러간 약물의 시대가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밝혀진 선수들 외 다른 선수들까지 의심하게 된 것이다(다저스의 비트라이터인 켄 거닉 기자는 이러한 이유로 약물시대 모든 선수들에게 명예의전당 표를 던지지 않겠다고 한 바 있다). 이번 사태의 진정한 피해자 역시 보스턴과 휴스턴 팬들까지 포함해 세상에 만연한 비리를 정정당당한 스포츠의 세계에서까지 목도한 메이저리그 팬들이 될 것이다.

2017년 휴스턴과 2018년 보스턴은 사인훔치기 없이 우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백한 부정이 드러났고 더 이상은 박수를 보낼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사인훔치기의 수혜를 누렸지만 징계를 피한 타자들의 고통스런 증명 과정이 남게 됐다.


[네이버TV]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로다, 류현진은?

기사제공 김형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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