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커브에 양의지가 식빵을 굽는다

조회수 2024. 4. 1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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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수비’의 추억을 떠올리며

2-0이던 6회 말이다. 원정팀이 앞서간다. 뒤진 홈 팀은 반전을 노린다. 타순이 좋다. 1번부터 출발이다. (11일 잠실, 한화 이글스-두산 베어스)

김태근(1번)은 중견수 플라이로 잡았다. 2번 허경민 차례다. 2구째 체인지업에 타이밍을 뺏겼다. 배트에 맞았지만 힘없는 타구다. 우익수 방향 평범한 뜬공이다.

그런데 웬걸. 요나단 페라자가 수상하다. 따라가는 것부터 엉거주춤하다. 아니나 다를까. 글러브 속에 들어갔던 공이 튀어나온다. 그 보기 어렵다는(?) 외야수의 포구 실책이다.

갑자기 분위기 싸늘해진다. 3루 쪽 응원석에서 탄식이 터진다. 덕아웃은 어이없는 표정이다. 당사자도 어쩔 줄 모른다. 민망함에 시선을 돌린다. 애꿎은 마우스 피스만 씹을 뿐이다.

왜 아니겠나. 개막 초반 상승세는 모두 까먹었다. 악몽 같은 5연패 중이다. 몸을 던져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엄중한 시국에 공을 떨어트리다니. 2-0 점수도 살얼음처럼 불안해진다.

마운드 위 투수는 오죽하겠나. 12년 만의 복귀가 실감 나는 순간이다. ‘행복 수비’에 만감이 교차한다. “그때는 솔직히 표정 관리가 어렵더라. 중심 타선으로 이어지는 점도 신경이 쓰였다. 더 집중해야 한다고 스스로 신경을 많이 썼다.” (류현진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어지러운 마음이 곧바로 현실로 나타난다. 다음 공이 포수 뒤로 빠진다. 폭투다. 1루 주자는 편하게 득점권으로 이동한다. 앞선 경기의 나쁜 기억이 오버랩 된다. 중반 고비에 와르르 무너진 악몽들이다.

사우나에서 만난 코치에게

그러나 그가 누군가. 소년 가장 출신이다.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그냥 넘기는 정도가 아니다. 추가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실책 당사자에 대한 펑고 레슨이다. 나머지 타구를 모두 그곳으로 보낸다. 우익수 플라이 2개로 이닝을 끝냈다.

물론 페라자의 수업 태도는 180도 달라진다. 건방진(?) 한 손 캐치는 사라졌다. 공손하게 두 손을 모은다. 잠시 후 덕아웃에서 마주친다. 한숨 돌린 일타 강사, 미안함에 주춤거리는 수강생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준다.

괴물이 돌아왔다. 초반 방황을 끝내고 시즌 첫 승을 올렸다. 6이닝 무실점의 깔끔한 피칭이다. 피안타는 1개가 전부다. 삼진을 8개나 빼냈다. 2012년 9월 25일(당시도 베어스전) 이후 4216일 만의 승리다.

“오늘 게임 전에 호텔 사우나에서 수석 코치님(정경배)과 마주쳤다. ‘내 등판부터 시작된 5연패를 내가 꼭 끊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동안 첫 승이 너무 늦어서 죄송한 마음이 컸다. 그래도 오늘은 잘 넘긴 것 같다. 계속 관중석을 가득 채워주신 팬들의 응원에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류현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최원호 감독은 칭찬에 침이 마른다. “안치홍이 필요한 순간 좋은 타격을 보여줬다. 불펜 투수들도 효과적으로 후반을 막아냈다. 무엇보다 류현진이 완벽한 투구로 상대 타선을 막아냈다. 덕분에 연패를 끝낼 수 있었다. 정말 노련한 피칭이었다.”

국민 타자가 직접 배팅볼도 던져줬지만

상대 감독은 국민타자 출신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함께 금메달도 땄다. 좋은 투수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경기 전에도 걱정이 많았다. 선수들에게 직접 배팅볼을 던져 주기도 했다.

“류현진은 워낙 좋은 투수다. 아직 승리는 없지만, 강약 조절이 워낙 뛰어나다. ABS 존을 공략하는 것도 무척 영리하더라. 빠른 볼도 있고, 느린 커브도 잘 던진다. 당연히 대한민국 좌완 투수 중 최고의 자원이 아니겠나.” (경기 전 이승엽 감독)

이 말은 현실이 됐다. 그야말로 최고 레벨의 정확성과 현란함이 경기를 지배했다. 게다가 이날은 모질기까지 했다. 이를 악물고 던지는 모습이다. “내가 시작한 연패”라는 자책이 내내 그를 괴롭혔다. 최고 구속 148㎞, 평균 145㎞. 평소보다 날카로운 패스트볼은 우연이 아니었다.

여기에 주무기도 살아났다. “한국에 와서 체인지업이 말썽이었다. 이전 경기에서 많이 공략당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변화를 줬다. 잡는 그립은 같지만, 팔 스윙을 빠르게 했다. 각도도 직구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게 괜찮았던 것 같다.”

이날 가장 많은 배합은 직구-체인지업이었다. 각각 32개, 31개를 사용했다. 베어스 타자들의 많은 헛스윙이 여기서 나왔다. 땅볼이나 뜬공의 범타 유도도 마찬가지다.

예전 스승의 경고 “바보가 될 각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상차림은 훨씬 다채롭다. 직구, 체인지업은 메인 메뉴다. 풍부한 전채 요리(애피타이저)와 디저트도 제공된다. 커터(12개)와 커브(19개)다.

예리한 커터 하나를 안쪽에 붙인다. 타자는 움찔하기 마련이다. 건드린다고 해도, 파울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다음에 체인지업을 바깥쪽으로 흘린다. 휘어져 나가며, 심지어 떨어진다. 훨씬 더 멀어 보인다. 타석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방식이다.

커브는 조금 다르다. 그야말로 완급 조절의 절정이다. 상대는 예상하기 어렵다. 그걸로 1~2구에 존을 공략한다. 유리한 카운트는 다양성을 빛낼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백미를 이룬 장면이 있었다. 4회 양의지의 두 번째 타석이다. 초구는 112㎞짜리 커브다. 높이 솟구치더니 급격히 떨어진다. 그렇게 존을 통과한다. 중계하던 SPOTV 이대형 해설위원이 감탄한다. “(카메라) 앵글에서 공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그 다음 2구째다. 투수가 포수 사인에 3번이나 고개를 젓는다. 도대체 무슨 공을 던지려고? 그 순간이다. 또다시 커브(116㎞)다. 이번에는 타자도 반응한다. 강력한 스윙을 돌려본다. 마치 ‘내가 그럴 줄 알았지’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턱도 없다. 타이밍, 각도 뭐 하나 맞는 게 없다. 완전히 빗맞은 파울이다. 카운트만 0-2로 불리해졌다. 타자는 부아가 치민다. 휘청하며 참을 수 없는 애드립 하나가 튀어나온다. 입 모양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오~, 식빵.”

그 소리에 마운드의 투수도 빵 터진다. 글러브로 입을 가리며 키득거린다. 타자도 민망한지 함께 웃는다. 동갑내기(37세) 친구에게 찾아온 뜻밖의 화기애애함이다.

예전 다저스 시절이다. 릭 허니컷 투수코치의 말이 떠오른다. “Ryu를 상대한다는 건 타자들에게 피곤한 일이다. 4가지 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때문이다. 다음 공을 예측한다는 게 무의미하다. 만약 그런다면 바보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커브에 당한 뒤 서로 웃음 짓는 양의지와 류현진 SPOTV 중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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