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핵심공정 공개 안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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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7.28. 오전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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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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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행정심판委 결정

'일부 인용'으로 삼성 의견 수용
작업환경 보고서 전면공개 제동
고용부 결정 넉달 만에 뒤집혀

고용부 '헛발질'에 핵심기술 中에 넘어갈 뻔

"행정소송 남았지만 뒤집힐 가능성 낮아"


[ 노경목 기자 ]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그룹 주요 전자계열사의 작업환경보고서를 외부에 적극 공개하겠다던 고용노동부의 결정이 4개월 만에 뒤집히게 됐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27일 핵심 기술을 제외하고 공개하도록 결정한 데 따른 결과다. 국가 핵심 기술 유출 논란을 낳았던 ‘보고서 전면 공개’ 시도가 사실상 철회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행정심판위는 이날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등이 청구한 ‘작업환경보고서 정보공개 결정 취소청구’ 사건을 심리해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행정심판위 관계자는 “일부 인용은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결정 자체를 취소하지는 않지만 핵심 정보는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라며 “국가 핵심 기술로 인정된 내용과 그에 준하는 비밀은 비공개해도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상은 △삼성전자 기흥·화성·평택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온양 반도체 후공정 공장 △삼성전자 구미 스마트폰 공장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공장 △삼성SDI 천안 배터리 공장 등의 작업환경보고서다.

법조계와 전자업계에서는 행정심판위가 사실상 삼성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판단했다. 삼성이 관련 문제가 불거진 지난 3월부터 “산업재해 입증에 필요한 자료는 공개하되 공정 핵심 기술 관련 내용은 지키게 해달라”고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지는 2~3주 뒤 행정심판위가 당사자에게 전달할 재결서에 담긴다. 삼성전자는 “재결서 내용을 검토한 뒤 공식 입장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행정심판위는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내린 행정 결정에 문제가 있는지를 행정부 내부에서 심리·의결하는 기관이다.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여부는 법원의 행정소송을 통해 최종 가려진다.

행정소송에서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일부 인용’ 결정이 뒤집히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실상 행정부 스스로 작업환경보고서 전면 공개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업환경보고서에는 근로자에게 해를 끼치는 유해물질의 사용 현황과 빈도, 공정 관리 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사업장별로 담겨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6개월마다 해당 사업체가 고용부에 제출해야 한다. 고용부는 지난 3월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등의 공장에 대한 작업환경보고서를 외부에 적극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근로자가 사업장 내 유해물질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고용부 발표가 나오자 당장 산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보고서를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되면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와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 제조 기술이 경쟁 업체에 낱낱이 공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업환경보고서에는 생산라인 구조와 배치 순서, 공정에 활용되는 화학제품 이름 등도 담겨 있다. 중국 등 경쟁 업체로 유출되면 공장별 설비 배치와 장비 대수, 구체적인 화학제품 사용 내역 등이 알려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정부 내에서도 이 같은 우려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4월 “반도체 핵심 기술 공개는 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부 산하 산업기술보호위원회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술에 대해 각각 전문위원회를 열어 “작업환경보고서에 국가 핵심 기술이 포함돼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부와 고용부 간의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청와대가 나서서 산업부의 손을 들어줬다”며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도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로 핵심 산업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올바른 결정이 내려졌다”고 환영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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