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미 캘리포니아주 교과 과정에 '위안부 합의 포함' 로비..결국 '일본 입장' 대변해 준 박근혜 정부

김찬호 기자 입력 2019. 8. 14. 06:00 수정 2019. 8. 1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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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3년 전 시민단체 ‘일본군 위안부 역사’ 포함 결정 이끌어
ㆍ일본 측 되레 ‘한·일 위안부 합의’ 끼워넣기 집요하게 로비
ㆍ현지 교육 관료 “일본과 한국 정부 모두가 압박했다” 증언

2016년 7월1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교육부 청사에서 열린 ‘2016 교육과정 지침 개정 공청회’에 참석한 위안부정의연대, 위안부행동 소속 활동가들.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이 배제되고 밀실에서 체결됐다는 비판을 받은 ‘2015 한·일 위안부 합의(이하 위안부 합의)’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육과정에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에 불리한 내용도 미국 고교생들이 수업 시간에 배우게 된 것이다. 이런 내용이 미국의 교과과정에 포함된 데는 당시 박근혜 정부의 ‘노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일본 측 입장 반영한 교과과정

13일 미국에서 활동 중인 시민단체 ‘위안부행동’(대표 김현정, 옛 가주한미포럼)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교육부는 올해 초 ‘위안부’ 수업용 자료집 초안을 만들었다. 이 자료집은 교사들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다.

‘전쟁과 관련된 한국인 위안부의 경험은 어땠나?’라는 제목의 자료집 첫 장에는 “2015년 12월28일 한·일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다”는 내용이 소개돼 있다. 총 20장의 자료집 중 9장에 ‘위안부 합의’가 설명됐다.

자료집은 학생들에게 직접 ‘위안부 합의’ 문구를 분석하도록 권장한다. 예컨대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에 대한 합의문을 학생들이 읽으면, 교사가 ‘한국 정부는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고 있다’고 알려주는 식이다.

일본 정부의 로비 정황도 곳곳에 드러나 있다. 특히 위안부 동원 당시 조선의 ‘여성에 대한 차별’, ‘조선인 업자의 역할’ 등이 부각됐다. “(위안부 여성은) 나이가 어리고, 교육 수준이 낮았다”는 식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사라 소 교수의 <THE COMFORT WOMEN>이라는 책도 인용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일본이 위안부 역사를 왜곡하는 데 이용하는 대표적인 저작물이다. 실제로 미국 뉴욕주재 일본영사관은 로비업체에 사라 소 교수의 책을 2~3장 분량으로 요약해줄 것을 요청한 바도 있다.

1944년 만들어진 미군의 포로 심문보고서도 있었다. 20명의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와 2명의 일본인을 심문한 결과였다. 해당 보고서를 소개하며 ‘위안부는 매춘부에 지나지 않는다’(A ‘comfort girl’ is nothing more than a prostitute)는 표현도 나온다.

김현정 대표는 “일본이 악용하는 문서들을 충분한 설명도 제공하지 않고 인용했다”며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넣기 위해 노력할 때, 일본 정부는 위안부가 성노예제였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 활동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사라 소(한국명 소정희)교수의 책 ‘THE COMFORT WOMEN’.

■ 박근혜 정부 외교부의 헛발질

2016년 7월14일, 캘리포니아주 교육부 청사에서 ‘교육과정 지침 개정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주요 안건은 ‘캘리포니아 공립학교의 역사-사회과학 교과과정 지침 개정안’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포함시킬지 여부였다.

주 교육위원회의 투표 결과는 만장일치 통과였다. 교육과정 개정은 수업 방향과 교과서 집필 기준이 돼 위안부 역사를 미국에 알릴 수 있는 기회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날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개정안 표결 직전 캘리포니아주 부교육감 톰 애덤스는 “교과과정에 ‘위안부 합의’를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공청회나 주민 의견수렴 단계에서 ‘위안부 합의’는 논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위안부 합의’에 비판적이었던 활동가들은 곧바로 부교육감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그해 8월23일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교육부 청사에서 애덤스 부교육감과 위안부정의연대 릴리안 싱 공동의장, 주디스 머킨슨 회장, 위안부행동 김현정 대표가 마주 앉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머킨슨 회장은 “부교육감은 ‘일본과 한국 정부 모두에서 위안부 합의를 교과과정에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고, 우리가 항의하자 부교육감은 ‘당신들은 내가 받는 압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소리쳤다”고 전했다.

김현정 대표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교과과정에 넣어달라고 한 것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재미 활동가들은 데이비스 추 미 하원의원 등과 연대해 한국 정부의 로비활동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위안부행동과 위안부정의연대가 협력해 자료집의 문제점을 수정한 대안자료를 만들어 교육부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타국 교과과정은 ‘민감한 문제’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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