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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인공지능 컴퓨터 프로그램에 '불과한' 알파고가 세계 바둑 최고수로 꼽히는 이세돌 9단을 연거푸 물리쳤기 때문이다. 이세돌의 승리를 확신했던 바둑계는 물론 반신반의했던 IT(정보기술)인들조차 알파고의 실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벌써 언론과 SNS 전문가들은 이번 대결의 의미를 분석하느라 바쁘고, 한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와 인류에 미칠 파장을 따지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우려는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을까하는 공포, 이른바 '인공지능(A.I) 포비아(공포증)'다.

때마침 지난해 11월 <한겨레> 기자인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이 쓴 <로봇 시대, 인간의 일>(어크로스)이란 책이 다시 관심을 끄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알파고보다 진화한 로봇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이 맞닥뜨릴 현실적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었기 때문이다. 과연 인공지능 시대, 어떤 일자리가 사라지고 살아남을까? 구본권 소장의 책 내용을 토대로 <오마이팩트>에서 다시 짚어봤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인간의 일자리는 없어질까? 

10일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5번기 두번째 대국을 마친 이세돌 9단이 혼자서 대국을 복기하고 있다. 이 9단은 이날 전날 1국에 이어 연거푸 알파고에 불계패했다.
 10일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5번기 두번째 대국을 마친 이세돌 9단이 혼자서 대국을 복기하고 있다. 이 9단은 이날 전날 1국에 이어 연거푸 알파고에 불계패했다.
ⓒ 구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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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알파고'는 구글 자회사인 영국 인공지능 회사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컴퓨터 프로그램이지만 '진짜' 인공지능으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사람의 두뇌를 모방한 인공 신경망 구조에 바탕을 둔 알고리즘을 적용해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고도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간을 이긴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 1997년 5월 IBM 슈퍼컴퓨터인 '딥 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벌인 체스 대결에서 승리했고, 지난 2011년 2월엔 역시 IBM 슈퍼컴퓨터 '왓슨'이 퀴즈쇼 <제퍼디 쇼>에 출전해 인간 퀴즈왕들을 모두 꺾었다. 알파고도 이미 지난해 10월 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 2단에게 5대 0 완승한 것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세돌 9단의 패배가 충격적인 건, 19×19판인 바둑은 8×8판인 체스나 퀴즈 게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우의 수가 많고 인간의 창의적인 직관이 많이 개입해 난공불락일 거라는 환상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알파고는 수많은 기보 분석과 모의 대국을 통해 가장 승률이 높은 곳에 바둑돌을 두도록 프로그램 됐을 뿐이지만 엄밀히 말해 바둑 기사는 아니다.

지난 1국과 2국이 끝난 뒤 이세돌 9단은 대국장에서 혼자 복기했다. 알파고가 진짜 인간이거나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갖춘 인공지능이었다면 대국이 끝난 뒤 함께 복기를 하며, 왜 그때 이 수를 뒀는지 이세돌 9단에게 설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세돌 9단 맞은편에 앉았던 딥마인드 과학자 아자 황은 어디까지나 알파고가 지시한 곳에 돌을 놓았을 뿐이다.

텔레마케터, 세무대리인 로봇 대체 1순위, 의사-법률가도 위험

이 책에선 인공지능을 기능과 정의에 따라 크게 2가지로 구분했다. 사람 못지않은 지능과 자의식을 모두 갖춘 '강한 인공지능'과 미리 정해진 특정 유형의 문제를 해결하는 '약한 인공지능'이다. 알파고를 포함해 지금까지 선보인 건 아직 '약한 인공지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머지않아 강한 인공지능도 등장하겠지만 지금 수준의 '약한 인공지능'도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물론 앞서 '딥 블루'나 '알파고'가 체스 선수나 바둑 기사의 일자리까지 빼앗지는 못한다. 체스나 바둑, 퀴즈 대결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인간이 맞붙어서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만약 단점이나 실수가 전혀 없고, 완벽하게 계산된 수만 두는 진짜 로봇 바둑 기사가 등장한다면 바둑 대국의 묘미도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업무 알고리즘이 비교적 단순해 자동화가 가능한 일자리다. 대표적인 게 의사나 법률가, 회계사, 세무사 등이다. 앞서 인간 퀴즈왕을 꺾은 왓슨도 로봇 의사 훈련을 받고 있고, 이미 사람 손으로 하기 어려운 미세한 외과 수술을 하는 수술용 로봇도 등장했다. 아직은 인간 의사를 보조하는 단계지만 머지않아 진료 과목에 따라 독자적인 진단이나 시술까지 가능할 전망이다.

꼭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아니더라도 이미 정보기술(IT)과 컴퓨터, 인터넷의 발달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 책에선 한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고도의 전문직이었지만 위성항법장치(GPS) 등장으로 순식간에 사라진 비행기 항법사를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이밖에 무인 카메라나 경비 로봇에 밀려난 건물 경비원이나 교통 단속원, 하이패스 단말기에 밀려난 고속도로 요금징수원 등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당장 모바일 콜택시 앱인 '카카오택시'나 각종 배달 앱 같은 O2O(온-오프라인 연결) 서비스도 많은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은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이란 책에서 인공지능 시대 대처법을 소개하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은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이란 책에서 인공지능 시대 대처법을 소개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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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영라디오 방송 NPR은 지난해 5월 20년 이내 로봇 때문에 사라질 위험이 가장 높은 직종으로 텔레마케터와 세무대리인, 은행원 등을 꼽았다. 이밖에 스포츠경기 심판, 신용분석가, 운전기사, 패션모델, 회계담당자 등도 90% 이상의 로봇 대체율을 기록했다. 판사도 40% 정도로 높은 편이었다. 반면 사회복지상담사, 초등학교 교사, 의사 등은 로봇 대체 가능성이 0%에 가까웠다.

일본 <닛케이 비즈니스>도 지난 2013년 8월 로봇 대체가 불가능한 직업군 네 가지를 뽑았는데, 이 가운데는 영화감독이나 예술가, 작가 같은 창조적인 직업이나 바둑기사나 체스선수, 운동선수 같이 굳이 자동화할 필요가 없는 직업, 로봇 개발자, 컴퓨터 프로그래머처럼 로봇이나 인공지능 개발과 관계된 직업뿐 아니라 의사, 간호사, 미용사처럼 로봇이 할 순 있지만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좋아하지 않을 의료나 돌봄 서비스도 포함됐다.

인공지능보다 인간의 물리적 움직임을 극복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각종 육체적 노동도 로봇으로 대체하기가 더 어렵다. 필자도 꼭 로봇으로 대체하기 어렵다고 해서 유망하거나 선호 직종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시대 살아남는 법, '기본 소득' 논의도 활발

필자가 미래 일자리 경쟁에서 살아남는 팁도 눈여겨볼 만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인공지능, 로봇 같은 최신 기술을 두려워하거나 무조건 거부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해 자신이 업무 영역에 접목시킬 방법을 찾으라는 조언이다.

앞서 '로봇 의사'처럼 정확성과 신속성이 필요한 수술은 로봇에게 맡기고 의사는 환자를 상대하거나 좀 더 창조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인간 기자들도 단순한 스포츠 중계나 증권 시황 기사는 로봇 기자에게 맡기고 칼럼이나 심층 기사에 더 몰두할 수 있다.

여기에 평생학습자로서의 태도와 주위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덕성과 신뢰를 갖추는 건 기본적이면서도 로봇이나 인공지능은 범접할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면모다. 알파고가 대국에서 질 것 같으면 돌을 던질 수도 있는 '겸양'까지 갖췄다고 추켜세우지만, 그건 어디까지는 더는 승산이 없다는 기계적 계산의 결과지,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패자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 로봇 시대가 언제가 될지 예측할 순 없지만, 머지 않아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할 경우 지금 일자리 가운데 상당수가 사라질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현실'이다. <오마이팩트>도 인공지능이 결국 인간의 일자리를 없앤다는 건 '대체로 진실'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이 때문에 부의 쏠림 현상이 더 심화되고 지금보다 실직자가 더 늘어날 거라는 부정적 전망도 있지만 과거 컴퓨터나 인터넷이 처음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가 생기고 여가도 더 늘어날 거라는 긍정적 전망이 교차한다. 한편에선 부정적인 상황에 대비해 일자리가 없더라도 사회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 소득'과 같은 사회적 안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이세돌 9단과의 대결 결과를 떠나 알파고의 등장은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미리 알리고 인류 스스로 대비하게 만드는 좋은 계기임에 틀림없다.


태그:#인공지능, #알파고, #로봇, #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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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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